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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논문 : 『고대일록』을 통해본 함양 사족층의 동향 = The local literatus class in Hamyang region with reference to Kodae Dia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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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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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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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C
15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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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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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260(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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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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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이 발발해서부터 광해군 초기까지 함양 사족의 일상을 기록한 『고대일록』을 통해서 당시 조선 사회의 모습을 재구성해 보았다. 함양은 일찍부터 사림파 군수인 김종직을 통하여 성리학을 접하게 되었고, 그 학풍을 계승한 곳이다. 성리학풍을 바탕으로 함양으로 이주한 성관에서 문과 급제를 통한 관원이나 생원진사시 입격자들이 배출되면서 함양의 재지사족으로 성장하였다. 사림파의 성리학풍을 계승한 함양 사족은 남명학파와도 맥이 닿았다. 의리지학을 배우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을 최고의 목적으로 하는 남명학파 인물들이 함양 사족으로 활동할 당시 임진왜란이 발발하였다. 함양 사족들은 그들의 배운 바를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의병활동에 참여하였다. 그들은 의병을 모집하고, 무기를 제작하였으며, 군자를 마련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활동이 임진왜란 초기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정유재란 당시 함양 역시 왜적의 피해를 입었으나, 의병 지원 활동이 계속되었다. 이것은 함양 사족이 엘리트로서 향촌 사회에 대하여 가졌던 책임의식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전란 속에서도 사족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를 유지시켜 주는 경제 기반인 토지와 노비에 대한 강한 애착을 드러냈으며, 위기 상황에서 명분보다는 실리를 위해서 상행위까지 마다하지 않는 당시 선비의 유연성까지도 가지고 있었다. 사족의 사회적 지위는 경제 기반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었다. 중종대 규정된 사족은 경제적 부로 측정된 것이 아니라, 문·무과 출신의 자제, 생원·진사, 내외 사조 내의 顯官이 있는 자로 규정되어 있다. 즉 생원진사시 혹은 문·무과의 급제 여부, 과거를 통한 관료 진출 여부가 핵심이었다. 그러므로 전란 속에서도 사족들이 과거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또한 선조 대에는 지방 유생의 상소가 공론으로 인정되는 사회였다. 중요한 사안이 있을 때 유생들은 상소를 통해 의견을 개진하였다. 일부 함양 사족은 정인홍이 주도하는 대북 계통의 유생이었기 때문에 사회 폐단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상소 이외에도 서인과의 공론 대결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정경운은 정인홍의 제자로 정치색이 뚜렷한 인물이기 때문에 일기 곳곳에서 서인에 대한 평가를 볼 수 있다. 이러한 모습 속에서 당시 지방 사족들이 정쟁에 가담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다. 전란 이후 향촌 사회의 복구에 앞장선 사족들은 향촌을 교화하고, 원악향리의 처벌을 강화하고, 사족들에 대해서도 儒罰을 내림으로써 그들 중심의 향촌 질서를 유지하였다. 이 시기 함양 내에 유력 사족 간의 갈등이 서원의 위차 문제로 표출되었다. 유력 사족의 이러한 갈등은 17세기 이후 서로 다른 정치 노선을 갖게 하는 단초가 되었다.
더보기Kodae Diaries,`` written by Kyeongwun Jeong, began in 1592 when Japanese army invaded Choseon and ended in the early Kwanghae reign. This contains detailed daily activities around the author himself as well as the pertinent persons and events. It allows us to reconstruct what the situations at the war time were like. Hamyang region where he lived had been influenced earlier than any other places by the neoconfucianism through their county magistrate, Jongjik Kim, who was a leader of the outside government or Sarim faction. The local literatus class in that region grew up from migrated families after their offsprings had begun to pass civil and military service examinations and accordingly assumed official positions in the government. They also communicated closely with the scholars of Nammyong School. Neoconfucianism emphasized actual practices rather than mere theoretical debates. This ideology enabled them actively to take part in the Anti-Japanese Righteous Volunteer Fighters, when Japanese army invaded firstly in from 1592 to 1598 and secondly in from 1597 to 1598. Their reaction clearly reflected what they felt their responsibilities about their land as the local elite class. The diary also shows that the local literatus class concerned deeply about their economic basis such as cultivation land and slavery. Moreover, they were even involved in commercial activities, too, which belonged at that time mostly to merchant class. In the reign of King Jungjong, literati were defined not by their economic wealth but by family members who were at least a public officer, a passer of local examinations, or a high officer within greatgreat grand father nodes including matrilineal line. This regulation explained the reason why they were strongly engaged in taking civil and military service examinations to maintain their status. In the reign of King Seonjo, local confucian scholars were allowed to send their written opinions to king as a public opinion. Almost of all the literatus class in this area belonged to the Splinter Group of the Easterner (or DaeBook) Faction, they tended to oppose to Westerners Faction (or Seoin). The author, who was a disciple of Inhong Jeong, was so political that he often blamed the opposite people so many times in his diary. We can observe a positive function of local literati, on one hand, to recover their society and enlighten local people. They, however, began to confront each other, on the other hand, with such issues as setting up a tablet order in the shrine of local confucian schools which facilitated, at last, to divide into a different political faction after 17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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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15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남명학연구소 -> 경남문화연구원영문명 : The Nammyonghak Study Institute -> Institute of Gyeongnam Culture | KCI등재 |
200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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