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도에 나타난 삼척과 우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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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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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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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231(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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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군은 본래 실직국(悉直國)이었는데, 신라 파사왕(婆娑王)23년(102)에 신라에 항복하였다. 그 후 지증왕(智證王) 6년(505)에 실직 군주(軍主)를 설치하고 김이사 부(金異斯夫)를 군주로 삼았다. 경덕왕(景德王)16년(757)에 삼척군으로 고쳤다. 고 려 성종(成宗)이 척주 단련사(陟州團練使)로 고쳤고, 현종(顯宗)이 현령으로 강등시 켰으며, 우왕3년(177)에는 지군사(知郡事)로 승격하였다. 조선 태조 2년(1398)에는 목조(穆祖)의 외가 고을이었으므로 삼척부로 승격하였고, 태종 13년(1413)에 삼척 도호부로 고쳤다. 독도가 우리나라의 영토가 된 것은 신라 지증왕 13년(512)에 이사부를 시켜 우 산국을 병합한 1500년 전부터이다. 삼국사기 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 지증왕 13 년(512) 여름 6월에 우산국(于山國))이 귀순 복종하여 해마다 토산물을 바치기로 했다. 우산국은 명주(溟州)(현재 강릉)의 정동쪽 바다에 있는 섬으로 울릉도라고도 한다. 그 섬의 크기는 1백 리인데, 땅이 험준하여 그곳 사람들이 이를 믿고 신라 에 복종하지 않았다. 지증왕은 이찬 이사부를 하슬라주의 군주로 삼아 우산국 사 람들을 꾀로써 굴복시키도록 하였다. 이사부는 왕명을 받고 나무 사자를 많이 만 들어서 배에 싣고 그 나라 해안에 이르러 거짓으로, ‘너희가 만약 항복하지 않으 면 이 사나운 짐승을 놓아서 너희들을 밟아 죽이겠다.’고 하니 우산국 사람들이 무서워서 곧 항복하였다. 독도는 우리나라에서 간행 된 많은 지도를 통하여 살펴 본 것처럼 512년에 신라의 영토로 편입한 이래 우산도(于山島)라는 이름으로 불리어 온 한국의 영토였 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서양의 포경선들이 출몰하여 독도를 마치 무주지인 것 처럼 오인하고 리앙쿠르 암이나 호넷트 섬 등으로 명명하여 혼란을 가져왔다. 일 본은 오랫동안 울릉도를 죽도, 독도를 송도라고 부르며 한국의 영토로 인정하였 다. 그러다가 갑자기 울릉도를 송도라고 부르고 독도는 리앙코島라고 불렀다. 1905년에는 독도를 불법적으로 그들의 영토로 편입하고는 독도를 죽도(竹島)라고 칭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많은 지도들이 증명하는 것처럼 독도는 엄연한 한국 땅이다. 일본에서 간행된 공식지도에도 독도를 한국의 영토로 인정하였으며, 19세기 들어 와 제작된 80여종의 일본지도에서도 독도는 한국 땅으로 인정하였다. 일본이 제 국주의 정책을 쓰면서부터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기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도 억지를 부르고 있다. 그 외에도 서양에서 제작된 많은 지도에서도 독도는 한국 땅 으로 인정하고 있다. 6세기부터 우산도라고 불러 온 독도는 그 명칭이 어떠하던 간에 변함없는 우리 의 영토이다.
더보기Samcheok-gun was originally Siljik-guk (“guk” means “state”) but surrendered to King Pasa of Silla Kingdom (one of the three ancient kingdoms of Korea) in year 102. After that, King Jijeung established Siljik-gunju and assigned Kim lsabu as the governor in 505. King Gyeongdeok renamed as Samcheok in 757. Goryeo’s King Seongjong renamed as Cheokju-dallyonsa and King Hyeonjong degraded as hyeollyeong and again upgraded by King Uwang (1377) as Jigunsa. In the 2nd year of King Taejo (1398) in Joseon Dynasty, Samcheok was upgraded to Samcheok-bu and King Taejong changed to Samcheok-dohobu in 1413. Dokdo became a part of Korean territory 1500 years age when Silla’s King Jijeung ordered Isabu to subjugate Usan-guk. According to the record of Samguk Sagi (History of the Three Kingdoms), Usanguk submitted to and obeyed Silla in June, the 13rd year of King Jijeung (512), so as to offer its local products. Usanguk is the island located in due east sea of Myeongju (present-day Gangneung) and also called as Ulleungdo. People of the island would not obey Silla since the size of island is 100 ri (400km) and rough. However, King Jijeung assigned Isabu as the governor of Haseula-ju (renamed from Siljik) to make Usanguk to surrender by employing a stratagem. Isabu received the King’s order and loaded a ship with wooden lions. Isabu reached to Usanguk’s coast and said, “If you do not surrender, I will let these wild beasts loose so that they may kill all of you.” Usanguk People were so scared and surrendered immediately. Dokdo, as examined from many maps published in Korea, was a part of Korean territory which had been called as Usando since its incorporation into Silla in 512. In the 20th century, with emergence of Western whaling ships, Dokdo was misunderstood as an ownerless island and was called Liancourt Rocks or Hornet Island, which has caused confusion. Japan has also called Ulleungdo as Jukdo (Bamboo Island, Takeshima in Japanese) and Dokdo as Songdo (Pine Tree Island, Matsushima in Japanese) and recognized them as Korean territory. But all of sudden, they called Ulleungdo as Songdo (Matsushima) and Dokdo as Riyangko (Japanese name for the French whaling ship “Liancourt,” that had first discovered Dokdo with Western eyes and given rise to the name “Liancourt Rocks”). By 1905, they illegally registered Dokdo as their territory and named Dokdo as Jukdo (Takeshima). However, as lots of Korean maps prove, Dokdo is clearly Korean territory. Official maps published in Japan also recognized Dokdo as Korean territory and 80 different kinds of map published in the 19th century also shows Dokdo as Korean territory. Since Japan used imperialism policy, they have insisted Dokdo as Japanese land and it continues till today. Aside from this, many Western maps also recognize Dokdo as Korean territory. Dokdo called as Usando Island from 6th century will forever Korean territory whatever the name 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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