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OpenAccess일제시대 열녀 담론의 향방: 독립운동가 아내의 ‘순종(殉終)’과 그 맥락 = The Direction of the Discourse of Virtuous Wive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The “Sacrificial Suicide” of the Wife of an Independence Fighter and Its Context-
저자
이상경 (한국과학기술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2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발행기관 URL
수록면
413-448(36쪽)
KCI 피인용횟수
6
제공처
The present study analyzes the life and suicide note of Yun Deok-gyeong, who killed herself by taking poison 40 days after the death of her husband Jeong-geon Hyeon, an independence fighter,and contemporaries’ news coverage and commentaries on this incident to explore the semantic context of “virtuous wives”(yeollyeo) and “sacrificial suicide” (sunjong)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1910-1945).
Born into a family of upper-class scholar-officials (yangban) and married to Jeong-geon Hyeon through an arrangement between the two families, Deok-gyeong Yun in fact was not able to lead a marital life with her husband. He immediately left home and immersed himself in the anti-Japanese independence movement and, during this period, was romantically involved and lived with Gye-ok Hyeon, a former professional female entertainer (gisaeng).
Although Deok-gyeong Yun went to Shanghai in search of her husband in the early days, she was sent back to Korea, where she received modern, Westernized education and worked as a teacher at one time as well. It was only after Jeong-geon Hyeon was arrested by the Japanese police, imprisoned, and released that Deok-gyeong Yun was able finally to be together, nursing him. However,Jeong-geon Hyeon died six months later, and she committed “sacrificial suicide.” Major newspapers and magazines that hitherto had reported the romance between Gye-ok Hyeon and Jeong-geon Hyeon now covered Deok-gyeong Yun’s death extensively.
During Deok-gyeong Yun’s life, Gye-ok Hyeon was Jeong-geon Hyeon’s wife in the sphere of public discourse, and contemporary newspapers and magazines reported with ado that Deok-gyeong Yun had been Jeong-geon Hyeon’s wife only after Deok-gyeong Yun had chosen death. By thus “choosing” death, In that she was acknowledged as Jeong-geon Hyeon’s wife in the sphere of public discourse for the first time, Deok-gyeong Yun’s death can be seen as a “double suicide” (jeongsa), a form of “romantic love,” which is true to one’s own feelings, unlike the obedience of earlier times driven by “duty” (dori). In addition, nationalists who took an interest in Deok-gyeong Yun’s death at the time criticized her act as mere selfishness and argued that, with such passion, she should have lived on and become the wife and mother of the nation,continuing her husband’s work. This inversely signifies that Deok-gyeong Yun exercised self-determination neither as a virtuous wife nor as a mother of the nation but as a being outside such values of a community. It is thus that Deok-gyeong Yun’s “obedience” and tales of virtuous wives starring her came no longer to function as discourses of virtuous wives.
이 논문은 독립운동을 하던 남편 현정건(玄鼎健)이 죽은 지 40일 만에 뒤따라 음독자살한 윤덕경(尹德卿)의 삶과 그녀가 남긴 유서, 이 사건에 대한 당대인의 보도 및 논평 등을 분석하여 일제시대 상황에서 ‘열녀’와 ‘순종(殉終)’의의미 맥락을 살핀 것이다.
상층 양반집안의 딸로 태어나 현정건과 가문 결혼을 한 윤덕경은 실제로 남편과 결혼생활을 하지 못했다. 남편은 곧바로 집을 나가 독립운동에 투신했고그 기간 동안에는 기생 출신의 현계옥이란 기생과 애인이자 동지인 관계에 있었다. 초기에 윤덕경은 남편을 찾아 상해에 갔으나 남편은 윤덕경을 돌려 보내었고 돌아와서는 신식 교육을 받아 교사로 생활하기도 했다. 현정건이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고 나온 후 윤덕경은 비로소 남편 곁에서 병수발을할 수 있었다. 그러나 6개월 뒤 현정건이 죽고 윤덕경은 뒤따라 ‘순종’했다. 그동안 현계옥과 현정건의 연애담을 전했던 유수한 신문 잡지는 이번에는 윤덕경의 죽음을 크게 보도했다.
윤덕경이 살아 있는 동안 공적 담론 공간에서 현정건의 아내는 현계옥이었고 윤덕경이 죽음을 선택한 뒤에야 당시의 신문 잡지는 윤덕경이 현정건의 아내였음을 대서특필했다. 또한 당시 윤덕경의 죽음에 관심을 가졌던 민족주의자들은 윤덕경의 죽음은 이기주의에 지나지 않으며 그 열정으로 살아서 남편의 사업을 잇는 민족의 아내, 민족의 어머니가 되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이는 역으로 윤덕경이 열녀도, 민족의 어머니도 아닌 존재로, 그런 공동체의 가치에 속하지 않는 자기 결정권을 행사한 것임을 의미한다. 이렇게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윤덕경은 공적 담론 공간에서 처음으로 현정건의 아내임을 인정받게 되었다는 점에서 윤덕경의 죽음은 ‘도리(道理)’에 내어 몰린 이전 시대의순종’과는 달리 자기의 감정에 충실한 ‘낭만적 사랑’의 한 형태인 ‘정사(情死)’로 볼 수 있다. 이로써 윤덕경의 ‘순종’과 그녀를 주인공으로 하는 열녀전은 이제 더 이상 열녀 담론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않게 되었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7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5-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3-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76 | 0.76 | 0.93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8 | 0.78 | 1.791 | 0.11 |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