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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요호사건과 이토 히로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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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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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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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274(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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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최근에 영인된 『伊등藤博文文書』를 토대로 운요호사건(1875 년 9월)의 기획파 공식보고서 의 초작에 이토 히로부미가 깊숙이 관여했음 을 추적하였다. 이로 히로부미는 부아소나드의 자문을 얻어 운요호사건의 마스터 플랜을 마련하였고, 사건 이후에도 원래의 의도대로 사건을 통제 하기 위해 공식보고서의 조작을 주도했다.
운요호사건은 그 때까지의 朝 日 交涉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의 접근 이었다. 운요호의 제1차 시위는 딘순한 교섭 압박용으로 외교적 맥락에서 도출되었지만 운요호사건은 일본 국내의 정략적 차원에서 고안되었다.
당시 ‘內閣分離問題’로 갈등을 겪고 있던 오쿠보〈大久保利通) 정권의 이토 히로부미 등이 시마즈 히사미츠(島津久光) 등의 수구파와 이타가키 타이스케(板垣退助) 둥 급진파를 제거하기 위해 도발한 것이다. 운요호사건은 국내정략의 일환으로 자행된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내각분리문제 로 갈등을 겪고 있던 오쿠보 정권은 운요호사건을 일으켜 내각분리문제를 동결시키고 그 주창자였던 시마즈와 이타가키를 축출하는데 성공하였다.
정적을 제거하는 1차적 목적은 달성되었지만 운요호사건은 오히려 조선측의 폭거로 역선전되어 일본 국내에서 광범위한 정한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한일관계사에서 운요호사건의 위치는 단순히 강화도조약의 1W史로 서의 의미보다 광범위한 정한논쟁을 통해 조선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가 확산되고 ‘서구문명론’에 입각한 ‘조선멸시관’이 자리잡는데 결정적 역할 을 한 점이 더 중시되어야 할 것이다.
격화된 정한론을 방치하면 軍의 동요를 일으켜 군내의 정한피-와 불평사족이 결합할 가능성이 있었다. 이 때문에 구로다(黑田淸隆) 전권사절은 問罪使를 가장하기 위해 군함과 병력을 대동해야만 했다 반면에 군함을 대동한 사절의 파견은 조선 측에게 반일감정을 고조시켜 ‘倭洋一體’ 관념 을 확신시켜주는 작용을 하였다. 이렇듯 근대의 한일관계는 처음부터 불편하게 시작되었는데 그 직접적 원인은 바로 운요호사건이었다.
This paper investigates the evidence that Ito Hirobumi became deeply involved in planning the Uny? incident (Sep 1875) and manipulating the official report, based on the recently photo-printed Ito Hirobumi document. It? Hirobumi drew up the master plan of the Unyo incident in consultation with Gustave Emil Boissonade and even after the incident, he spearheaded the fabrication of the official report in order to take control of the incident in the way that had been initially intended.
The incident was fundamentally a different approach, compared with the way that negotiations had been made between Korea and Japan. While the first demonstration by the Uny? warship was created within a diplomatic context, simply in pursuit of bargaining demands, the Uny? incident was designed as a political tactic to deal with domestic matters within Japan.
As the Okubo regime had been in trouble due to issues about separation of the ministries from the Council of State, It? Hirobumi and his supporters provoked the incident in order to get rid of both the conservatives, including Shimazu Hisamitsu, and the radicals, including Iragaki Taiske. Thus, the Unyo incident clearly indicates that it was provoked only as a political tactic. As a result, the incident made it possible for the regime to succeed in freezing the separation matter and expel its advocates, Shimazu and Itagaki.
Through the Uny? incident, the ultimate end of eliminating political opponents was successfully accomplished, but it also stirred up an extensive "subdue Korea controversy (Sei-Kan-ron)" within Japan due to the counter-propaganda that Korea provoked the incident. In the history of Korea-Japan relations, the incident needs to be further considered so as to play a crucial part in expanding distorted images against Korea through the "controversy" and establishing "View of Contempt for Korea" grounded on "A Theory of Western Civilization," rather than just be the incident occurring before the treaty of Kanghwa.
Leaving the intensified "subdue Korea controversy" unsettled, could possibly cause agitation of the Armed Forces, which might lead to the combination of "subdue Korea party" with "dissatisfied Samurai" within the military. Therefore, a Kuroda mission could possibly mobilize warships and troops to pose as envies for accusation. Meanwhile, the dispatch of envoys with warships made anti-Japanese agitation widespread within Korea, to such an extent that Korea identified Japan with the West. It was the Uny?) incident that was the direct cause of the beginning of Korea"s uneasy relationship with Japan in the modern times.
분석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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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30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한일관계사학회 -> 한일관계사연구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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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1.5 | 1.5 | 1.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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