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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으로 본 가야문화의 성격 = Character of Gaya Culture in historical rec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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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우 (창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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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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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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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is not a easy task to understand culture of Gaya and predict boudaries of Gaya culture. It’s because Gaya had been divided into six countries and each Gaya country did not have local ruling system. The culture of Gaya and Silla had become distinguished from the 4th century which was considered as period of the second term of Gaya period.
However, since we have yet to know the border of each Gaya country, it is hard to set up the cultural boundary of Gaya. when we consider historical records about Gaya, we are able to predict three things. At first, political boundaries of Gaya could be predictable. Flexibility of this boundary is the second. The third one is about geographical border between Gaya and Silla is the Nakdong-river. And we would consider the region in which could not be belonged to Silla and Baekje among ByunHan region as Gaya.
It is possible to predict the border between Gaya and BaekJe by historical records about Baekje’s invasion on Gaya region and four cities in Imna. In the late 5th early and 6th century, boundary of Gaya against Baekje was a line between Gaya mountain and Dukyou mountain in north and coastal line from Jin-an to Yu-su in the south.
The culture of Gaya could be characterized by openness, regionality, creativeness and localization. From the early state of Gaya, thank to the coastal area, Gaya easily carried our cultural exchange with China and Japan by sea route.
As intermediary region, accepting advanced culture from China and giving it to Japan, exchanging with Three kingdom in korea, Gaya had flourished their own culture.
And each nation in Gaya also created their distinguishable culture.
These special cultures were well-reflected on their own earthenwares. In terms of creativeness, Gaya-gum, a musical instrument of Gaya, could be an answer.
In these respect, Gaya, known as a federation of small countries, had their own developed culture as much as three kingdoms in korea in that period.
가야에 대한 기록을 근거로 가야문화권과 가야문화 성격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가야는 여러 나라들로 나뉘어 있었고, 가야 각국들이 지방통치체제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야전기에 해당하는 변한의 문화권을 추정하기 어렵다. 가야후기에 해당하는 4세기대부터 가야와 신라의 문화권이 나눠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가야영역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문화권 설정은 어려운 상황이다. 문헌자료의 검토를 통하여 가야의 영역을 설정할 때 확인되는 것은, 첫째 뚜렷한 경계는 알 수 없지만 정치적인 가야영역을 설정할 수 있다. 둘째 가야영역은 유동적이었다. 셋째 확실한 영역 설정보다는 대체적인 윤곽밖에 설정할 수 없는데, 어느 시점에 그 유력한 경계는 낙동강이라는 것이다.
또한 백제와 신라의 영역에 포함되지 않은 지역을 가야의 영역으로 추정할 수 있다. 가야와 신라의 경우에는 어느 시기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낙동강이 경계가 되었다. 가야와 백제의 경우에는 임나4현과 백제의 가야지역 진출에 따라 경계 추정이 가능하다. 5세기 후반 혹은 6세기 전반까지의 백제와 가야의 국경선은 북쪽으로 가야산과 덕유산을 경계로 하고, 진안–임실–순창–곡성–구례–순천–여수반도를 잇는 선으로 볼 수 있다.
가야문화의 성격은 개방성, 지역성, 창의성, 토착성으로 볼 수 있다. 가야는 남해안을 끼고 있었기 때문에 바다를 통하여 중국, 일본과 교류했다. 중국의 선진문화를 받아들이고, 일본에 문화를 전파하였으며, 고구려 백제 신라와 교류하기도 했고, 가야 각국끼리의 교류를 통하여 다양한 문화가 발전할 수 있었다. 가야 각국들은 각국의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기도 했다. 가야의 각국들이 독자적으로 존재했기 때문에 각자의 특성이 드러나는 지역성이 존재했다. 이것은 토기문화 등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가야금의 제작 등에서 가야사람들의 창의성을 엿볼 수 있었다. 가야도 삼국과 마찬가지로 지역 환경에 따른 토착적 문화가 형성되고 발전하였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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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4-12-09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The Society Of Kugyol -> The Society for Kugyol Studies | KCI등재 |
2014-12-09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Journal of Kugyol Studies -> Kugyol Studies | KCI등재 |
201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5-06-17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미등록 -> Journal of Kugyol Studies | KCI등재 |
2004-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3-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1-07-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74 | 0.74 | 0.79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71 | 0.61 | 1.719 | 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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