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조선의용대의 항일전투(참가) 실적과 화북진출 문제 再論 = The Korean Volunteer Corps’ Anti-Japanese Combat Performances in China and the Problems Around her Advance to Huabei : A Critical Reexamination
저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9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179-238(60쪽)
KCI 피인용횟수
5
제공처
소장기관
The Korean Volunteer Corps(hereafter ‘KVC’) founded in 1938 as the first Korean military organization within mainland China is known to have been largely a political propaganda battalion in line with the assigned principal mission, rather than to be a counterforce combatant. However, this article proves on the ground of many report materials that the members of KVC performed the role of combat agents voluntarily by gaining maximum opportunities in four warfare districts of Middle and South China during the two years of helping Chinese troops from early 1939 to the former half of 1940.
The paper then reconsiders the controversial issues about the reasons of KVC’s advance to Huabei and about the circumstances of her entry into the anti-Japanese strategic base of the Eighth Route Army at Taihang Mountains, to reveal new facts entangled with those problems. Some of related ambiguous parts are also reexamined in various angles to be comprehensively clarified through new materials and inferences. Especially, it is confirmed that the adjusted change in the midst of KVC’s planned final direction which had been approved by the Chinese Military Commission and the path to it was due neither to political intention of nor to order from General Commander, Kim Won-bong. Rather, that change was caused by new demands and logics raised by the Chinese Communist Party(CCP) line of radial leftist members in Luoyang, a mid-term stop.
Counter-enemy activities of ‘The Huabei Detachment’ of KVC in Taihang Mountains were concentrated not on the direct combats but on the armed propaganda operations. And the originally aspired, promised and planned advance to the Northeast became to be continuously suspended because of CCP’s political considerations added to worsening of northeastern situation. At last, the meaning of KVC’s advance to Huabei was reduced and altered to close ties and joints with the CCP’s Eighth Route Army in parallel with the detachment’s development to ‘Army,’ while the main body in Chongqing had to become extinct. It may be said that those all happenings and currents belonged to really a historical irony.
중국관내 최초의 한인 군사조직으로 1938년에 창설된 조선의용대는 대적전투가 아닌 정치선전 공작을 주 임무로 부여받고 대적선전대 역할에 치중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1차 자료들을 다시 검토해보면, 조선의용대는 1939년 초부터 1940년 상반기까지 화중·화남의 4개 전구에서 중국군을 도와 선전공작을 수행하는 중에도 전투참가 기회를 최대한 얻어내며 전투요원 역할을 자진 수행하고 있었다.
1939년 가을부터 조선의용대 내부에서는 자체무장에 의한 전투부대화와 적후공작이 향후의 발전방향으로 제시되기 시작했고, 이듬해 봄에 일부 병력을 뤄양으로 보내 화북에서의 대적공작 가능성을 탐색토록 하였다. 이와 같이 추진되어간 화북행 기획은 1940년 11월 확대간부회의에서의 공식 결의로 추인되고, 1941년 상반기에 3개 지대 전체의 뤄양 집결과 황하 도하로써 실행되었다.
화북으로 건너간 의용대 병력은 중국군사위에 보고되고 승인받았던 예정진로와 다르게 태항산의 팔로군 항일기지로 들어갔다. 교차검증의 방법으로 여러 자료를 대조하며 검토해보면, 그것은 총대장 김원봉의 정치적 의사나 지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 북상 의용대의 중간 기착지 뤄양에서 중공계-급진좌파 대원들이 새로 제기하는 요구와 논리에 따라 행로조정이 기해진 때문인 것으로 추론된다. 그로부터 일부 통설의 오류와 좌·우 편향을 교정할 필요가 같이 제기된다.
태항산으로 들어간 ‘화북지대’의 대적활동은 직접전투가 아닌 무장선전 공작으로 집중되었고, 본래의 포부이고 약속이며 예정진로이던 동북진출은 계속 유예되었다. 중국공산당의 정치적 고려와 동북지역의 항일정세 악화가 같이 작용한 때문이었다. 그 결과, 조선의용대의 화북진출은 팔로군과의 밀착 및 합작으로 그 의미가 축소·변질됨과 아울러 충칭 잔류 본대의 소멸이라는 재앙적 결과를 가져왔다. 이것은 진정 하나의 역사적 아이러니였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7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6-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FAIL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5-05-20 | 학술지등록 | 한글명 : 한국독립운동사연구외국어명 : JOURNAL OF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STUDIES | KCI후보 |
2005-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3-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59 | 0.59 | 0.61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64 | 0.62 | 1.442 | 0.09 |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