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 도성의 동문, 흥인지문과 주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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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연도
2016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KDC
609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79-109(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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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인지문은 지금의 서울시 종로구 종로6가에 있는 조선시대 도성에 딸린 사대문 가운데 하나로 정동에 있어서 동대문이라고 한다. 흥인지문의 명칭에 ‘之’를 넣은 이유는 서쪽 인왕산은 웅장한데 동쪽 낙산이 낮고 수구가 벌어져 이를 보충하기 위한 비보(裨補)의 수단이라 전한다. 도성의 내사산 중 낙산이 상대적으로 지세가 약하였기 때문에 풍수적 이유로 인해 한성의 성문 중 유일하게 성 밖에 옹성을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1396년 흥인지문의 성문 위에 2층 문루가 건립되었는데, 성벽의 석재는 태조, 세종, 숙종시기 축성의 특징을 모두 반영하고 있다. 1899년에는 새로운 도로 계획으로 돈의문에서 청량리 구간에 개설된 전차가 흥인지문의 홍예문과 옹성의 개구부를 통과하였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도로의 폭을 넓히고 1926년 경성운동장 건립을 위해 흥인지문 북쪽과 남쪽 성벽이 크게 철거되었다.
흥인지문 주변의 역사 유적으로는 도성의 개천 수문 오간수구와 이간수구, 임란 이후 관우를 제향하는 사당인 동관왕묘가 있다. 또한 국마를 기르던 사복시 소속의 살곶이 목장이 아차산 서쪽으로 조성되었다. 개천의 수문 위로는 성곽을 쌓아 올렸고, 성벽을 따라 조그만 길을 만들어 수문을 관리하는 군졸의 순라길이 있었다.
조선에 관왕묘가 건립된 계기는 임진왜란 명나라 장수 진린이 병사 위기에 놓이자 남관 왕묘를 세운데 이어 명나라 장수들이 왜적과 싸울 때 관왕이 현성하여 도움을 주었다고 하자 명 신종황제가 4천금을 교부하여 한양에 관왕묘를 건립하도록 하였다. 이에 흥인지문 밖 동편 영도교 옆에 터를 정하고 대신에게 공사 감독을 명하여 1602년 동관왕묘가 비로소 준공되었다. 건립 직후 선조가 한차례 배례한 이후 광해군 대에 와서 관왕묘의 치제는 국가의 小祀로 정비되었고, 숙종 대에 국왕이 친림하여 제례를 올리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수리가 이루어졌다. 이후 영조 대에는 무려 17차례 친림하여 치제하였고, 정도 대에 관왕묘의 제례를 中祀로 승격시켜 관왕묘 제례가 정립되었다. 이후 1871년 본격적인 수리가 이루어졌고, 1876년부터 1884년에 걸쳐 관우와 관련한 다양한 경전이 간행되었다.
살곶이는 한성의 동교(東郊)로, 땅이 평평하고 넓으며, 물과 풀이 매우 넉넉하여 울타리를 둘러쳐서 조선시대 국마를 기르는 목장이 조성되었다. 목장 내 주요 시설물인 화양정은 1432년(세종 14) 지었고, 『서경』의 전마(戰馬)를 풀어 화산의 남쪽으로 돌려보낸다는 평화의 메시지를 담아 편액을 달았다.
그밖에 흥인지문에 얽힌 역대 인물들의 사연이 전한다. 단종의 비 정순왕후(1440~1521)가 1457년 단종의 사망 이후 폐서인되어 낙산의 동망봉 아래 위치한 사찰에 머물며 날마다 동망봉에 올라 영월 쪽을 바라보며 애도하였다고 전한다. 1771년(영조 47)에 영조가 이 사찰 내에 정업원구기(淨業院舊基)라는 비석을 세우고, 동망봉이라는 친필 표석을 세워 단종을 애도 하였는데, 이때부터 이 절을 정업원이라 불렀다.
이수광이 그의 외고조부였던 유관(柳寬)의 초옥 옛터에 소당을 짓고 대개 풍우를 간신히 피한다는 의미로 ‘비우(庇雨)’라는 편액을 달았는데, 청렴했던 선조의 뜻을 잊지 않기 위한 것이었다. 흥인지문은 동관왕묘와 함께 중종연간 이사균과 김안로, 숙종연간 남용익과 그의 지인들의 전별 사유가 전하여 도성을 나서는 문인의 전별 장소로도 활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상에서는 조선시대 도성의 동문이었던 흥인지문에 대한 연혁과 구조적 특징을 살펴보았다. 또한 그 주변의 주요 역사 유적 및 인물들과 얽힌 이야기를 중심으로 흥인지문의 건축적 가치뿐만 아니라 과거 조선의 역사와 어우러진 한양의 상징적 랜드마크로서 그 위상을 제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Heunginjimun Gate was the great east gate of Capital city during the Joseon Dynasty. The structure was first built by King Taejo during his fifth year of reign (1398). It was renovated in 1453, and the current structure is the one rebuilt in 1869. The most unusual characteristic is its outer wall, Ongseong (jar-shaped wall). Ongseong was constructed to compensate the weakness of the target from multiple invaders. The stone wall of Heunginjimun Gate destroyed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Cheonggyecheon stream was named Gaecheon (open stream) after the first refurbishment project to construct a drainage system during the Joseon Dynasty. The work, which included dredging and bolstering the banks of the stream and building the bridges, was carried out every 2~3 years during this period from the reign of Taejong, the third king of the Joseon Dynasty. King Yeongjo especially undertook the refurbishment work as a national project.
Dongmyo is a shrine in metropolitan Seoul built in honour of 3rd century Chinese military commander, Guan Yu. The Joseon government embarked on construction in 1599 and completed the work in 1601. The Wanli Emperor of Ming provided funds for construction of shrine, along with plaque with his own calligraphy. Four shrines, Nammyo (south shrine), Dongmyo (east shrine), Seomyo (west shrine) and Bungmyo (north shrine), were actually constructed in Seoul until 1904. However, three shrines forces into Dongmyo Shrine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Salgoji royal ranch was famous for a hunting site of Kings, and it was the place to maintain royal horses. King Sejong the Great built a pavilion nearby and named it Hwayangjeong, from which its name gets the Book of Documents (Shujing) among the Five Classics.
There are many other historic sites of historic figures related Heunginjimun Gate. Donmangbong peak (a peak of longing in the direction of the east) is the place where Queen Jeongsun missed her husband in Yeongwol, after Separation at Yeongdogyo Bridge. Biudang is a thatched house that was built in memory of a classical scholar Yi, Su-gwang and his ancestor Yu Gwan who led a frugal life. Biudang means, “A house in which one can barely take shelter from rain”.
This paper is focused on the history of Heunginjimun Gate and other historic sites near the Gate, thereby raising its status as a symbolic landmark of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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