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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 소설 속 인물들의 자기기만과 실존의 조건 = Self-Deceit of Yi Cheong-joon’s Characters and Condition of Exist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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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연도
2018
작성언어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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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337-373(37쪽)
제공처
소장기관
1960년대 중반 이후 한국사회는 반공법을 명분으로 한 지배권력에 대한 순응이 가시적, 비가시적 형태로 요구되었다. 이청준은 실존적 사유를 현실포착과 의미화의 틀로 개입시키고 있다. 이 글에서는 『존재와 무』 제2부에서 인간 의식의 보편적 특성이자 필연적 현상으로서의 ‘부정성’을 드러내는 ‘자기기만(la mauvais foi)’의 개념을 통하여 이청준 소설의 인물을 유형화하고, 작가가 실존과 자유의 문제의식을 어떤 식으로 드러내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이 때 ‘자기기만’은 신념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지는 성실성의 폭력, 자유와 선택을 스스로 거부하고 사물에 가까워지고 자 하는 죽음 지향의 유혹, 명증해 보이는 진리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회의와 부정성이라는, 불안으로부터 도피하려는 일반적 유형들을 제시한 개념이다.
『소문의 벽』의 김 박사, 『당신들의 천국』의 조백헌 대령으로 이어지는 자신의 신념에 대한 무조건적 확신을 보이는 인물들의 태도는 자기기만의 허위를 파악하지 못한 채 그것을 세상에 대한 충실한 태도라 믿는 ‘성실함의 자기기만’으로 묶어서 이해해 볼 수 있다. 이는 반공법을 명분으로 한 여러 필화, 간첩 사건이 가시화되던 시대배경과 함께 독재 심리의 내밀한 역동을 암시하고 그 폭력성을 우회적으로 비판한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한편 『씌어지지 않은 자서전』, 소문의 벽 에 있는 액자소설에서는 스스로 능동적인 선택의 기회와 그에 따른 자기 형성을 거부하며 유사 죽음의 상태를 지향하는 인물들이 나온다. 『씌어지지 않은 자서전』에서 여성 두 명을 두고 저절로 그들 사이에 선택이 이뤄지도록 하는 소설 속 소설의 주인공, 〈괴상한 버릇〉에서 낭패한 일이 생길 때마다 잠을 자거나 시체처럼 누워 있는 주인공, 〈벌거벗은 임금님〉에서 사장의 일탈을 발설하면 안 된다는 강박에 못 이겨 마침내 감시의 환상에 시달리는 주인공, 마지막 소설에서 신문관의 ‘스스로 선택한 수형’이라는 발화에 이르기까지 인물들은 모두 선택을 미루거나 변화의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고 자기를 부정함으로써 삶 그 자체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스스로 사물이 되고자 하는 유혹에 굴복하는 이들 인물은 사르트르의 자기기만 개념 중 ‘즉자화의 자기기만’이라 표현되는 유형, 혹은 이를 ‘석화(石化)작용’이라 번역하고 있는 정명환의 논의를 떠올리게 한다.
성실함의 자기기만, 혹은 사물화의 유혹에 굴복하는 자기기만의 상태를 벗어나 실존을 지향하는 인물들의 행동은 진술 거부나 소설 쓰기와 같은 언어행위, 혹은 탈출로 구체화된다. 『소문의 벽』에서 한국전쟁에서의 어느 한 진영의 선택, 특정한 문학 이념과 형상화 방식을 선택하라는 작가에 대한 요구, 자신을 정신병자로 규정하는 김 박사를 피하는 박준의 행위, 그리고 이를 모두 종합한 ‘진술 거부’라는 상황은 자신의 신념을 보편의 차원으로까지 격상시키려는 모든 종류의 확실성의 요구에 대한 소극적 저항을 의미한다. 또 『당신들의 천국』에서 섬사람들의 탈출 역시 원장들의 명분의 독점과 독단성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점에서 『당신들의 천국』은 모든 종류의 ‘명증한 진리를 거부’하는 행위 속에서 탄생될 수 있는 역설적인 진리의 순간을 강조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미래의 불안과 위험을 스스로 감내하고라도 인간으로서의 자유를 수행하겠다는 결단, 즉 긍정적 자기기만을 보이는 부분이다.
이처럼 법과 제도로서 지배 권력의 신념을 강력하게 언표하고 통제하려 했던 60~70년대의 권력과 통제사회 내 인물들의 심리적 역동을 이청준은 인간 의식의 보편적 특성인 자기기만의 사례를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이청준은 독재 체재로의 변화와 그 사회 속 지식인, 민중의 심리적 역동에 대해 깊이 있는 서사를 창안해 낼 수 있었으며, 더 나아가 실존적 자유의 개념을 암시하며 근원적인 삶의 조건에 대해 탐색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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