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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안동지역 서당의 경제적 기반 = The Financial Ground of Seodang in Andong during the 16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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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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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199(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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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mid-16th century, the influence of jaejisajok increased rapidly in Andong along with the formation of Toegye School. Moreover, the disciples were appointed as the head of a region and founded seodang and seowon and also opened seodang where they lived and taught their children aggressively. As a matter of fact, 『Yeonggaji』 deals with 20 or so seodang, jeongsa, and seojae, and those who led the foundation of them were mostly Toegye’s literary persons. These Toegye’s disciples initiated the movement of founding seowon and seodang with a common educational goal and created a new educational environment after the mid-16th century. Those seodang and jeongsa were built all over as a family unit, but it is hard to figure out their financial ground concretely due to the material-related issues. However, we can assume that it should have been similar to the way of securing the financial power of seowon founded in the similar period. Yet, seowon were built through Ilhyang Sarim participating collaboratively whereas seodang were mostly founded individually as a family, village, or individual jaejisajok unit. That is why there should have been much difference in the financial grounds of the two. Regarding the way of securing economic power, however, we can assume that there was a similarity that the agents of founding seodang and seowon were the same jaejisajok. Meanwhile, seodang like Andong Pnngak Seodang that were built with the government’s support or by local officials for educational activity were equipped with the financial ground equivalent to that of initial seowon. At that time, the government either permitted or overlooked jaejisajok’s foundation of seodang using abandoned Buddhist temples just like seowon. Also, considering the status of the seodang’s founder, they allowed monks to be affiliated to them, donated rice, exempted them from taxation for their land or salves, and gave the benefits of freedom from labor. But in founding and operating seodang, the government’s provision of support seems to have been a special case, and funds to build most of the seodang must have been established autonomously by the donation of a family or Hyangchon Sarim.
더보기16세기 중반 안동지방은 퇴계학파의 형성과 함께 재지사족의 형세가 급격히 신장되었고, 이들 문도들이 지방 수령으로 나아가 서당·서원을 설립하기도 하고, 또한 각기 거주지를 중심으로 서당을 개설하여 자제교육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실제 『영가지』에 의하면 20여 개의 서당·정사·서재가 실려 있으며, 이들 설립을 주도한 인물은 퇴계의 문인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이들 퇴계문도들은 동일한 교육 목표를 가지고 서원·서당 설립 운동을 주도하면서 16세기 중반 이후의 새로운 교육환경을 만들어 나갔다. 이들 서당·정사는 문중단위로 도처에 건립되었는데, 자료상의 문제로 구체적인 경제적 기반은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건립되었던 서원의 경제력 확보방법과 유사한 점이 있었다고 본다. 하지만 서원의 건립에 일향 사림이 공동 참여한 것과는 달리 서당은 대부분 문중, 촌 단위 또는 재지사족 개인이 개별적으로 건립하였다. 그래서 양자 간의 경제적 기반은 많은 차이가 있었다고 보인다. 다만 경제력 확보 방법에 있어서는 서당·서원의 건립주체가 같은 재지사족이었다는 점에서 유사한 점이 있었다고 본다. 한편 안동 풍악서당과 같이 관의 지원을 받거나 지방관이 교육활동의 일환으로 건립한 서당의 경우에는 초기 서원 못지않은 경제적 기반을 갖추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당시 관에서는 서원과 마찬가지로 재지사족들이 폐찰을 이용하여 서당을 건립하는 것을 허가 내지 묵인하거나, 서당 건립자의 위상에 따라 승도를 소속시키거나 쌀을 기부하고, 토지와 노비에 대한 면세, 면역의 혜택을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서당 건립과 운영에 있어서 관의 지원은 특별한 경우로 보이고, 대부분의 서당은 문중 자체적으로 또는 향촌사림의 기부 등 자체적으로 마련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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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FAIL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5-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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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55 | 0.55 | 0.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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