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사족층의 "선영경관(先塋景觀)" 조성과 그 의미 = The Joseon gentry class`s making "the ancestral tombs and their cultural environments"(先塋景觀) in the nineteenth century and its mea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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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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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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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C
15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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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KCI등재(통합)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333-373(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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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사족들은 선영경관을 조성하고 유지하는데 매우 일관된 의지를 보여 주었다. 사족(士族)에게 조상의 무덤을 수호하는 일은 사족 문화만이 갖는 독자적인 표현이었고 선영(先塋)은 사족들에 의해 형성된 종법제(宗法制)에 입각하여 나타난 가시적인 표지물(標識物)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표지는 한편으로는 자기 집안을 하나의 결합체로 통섭해주는 한편, 다른 집안이나 계층으로부터 스스로를 차별시키도록 고안된 것이기도 하였다. 조상숭배를 위한 명분은 사족뿐 아니라 전 사회계층이 공감하는 문화가 되었다. 따라서 중앙정부도 사족층의 사회적 지위를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19세기에 이르러 사족의 선영경관의 조성은 여러 가지 점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한 대표적인 현상으로 사족 인구의 자연적 증가로 인한 장지(葬地)의 부족, 공유지에 대한 사적 소유권의 정착, 사족에 대한 국가 정책의 변화, 하민의 성장을 꼽을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사회적 조건에 사족들은 어떻게 대응하였을까. 이러한 대응 양상은 당시 사족들의 사회적 조건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다. 이것을 해명하는 것이 이 논문의 궁극적인 목적이기도 하다. 이 문제를 해명하기 위하여 필자는 두 가지 주제에 집중하였다. 한 가지는 선영경관을 조성하기 위한 일반적인 조건을 검토하였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19세기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선영 경관 과정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그 의미를 해명하고자 하였다. 선영경관은 선영(先塋), 석물(石物), 송추(松楸)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을 조성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토지와 인력이 필요하였다. 19세기 이전에는 현대와는 달리 토지와 인력은 소유권 내지는 사용권에 의해 확보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조선중기만 하더라도 산지는 공유지였고 인력도 국가의 부역체제에 노출되어 있었다. 따라서 공유지의 사용권과 탈역을 획득하는 것은 선영경관을 형성하기 위한 필수 요소였다. 사족들이 선영경관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수령의 적극적인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하였다. 선영경관의 구성요소라 할 수 있는 묘직들의 탈역, 산지의 점유권(소유권) 인정 등은 모두 산지가 있는 지역 수령의 고유한 권한에 속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영경관의 조성은 수령과 연계할 수 있는 계층인 사족층에 속하지 않고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를 다른 측면에서 보면 선영 경관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곧 그 집안이 사족층에 속해있다는 사회적 징표로 받아들여졌다. 19세기에 선영 경관을 조성하기 위해 사족들이 겪었던 어려움을 설명하기 위하여 필자는 두 집안을 사례로 들었다. 한 집안은 화성에 거주하고 있던 들목 조씨 집안이고 다른 한 집안은 안동에 거주하고 있던 풍산 김씨 집안(영감댁)이다. 우선 들목 조씨 집안의 사례를 통해서는 선영 경관의 조성에 재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과 수령의 도움이 절대적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더욱이 이 집안은 좌청룡 우백호의 국내가 형성되지 않자 송추의 수호가 어렵게 되었다. 따라서 이 집안은 불가피하게 이웃한 사족의 산지를 사들여 사산국내를 형성하였다. 이를 통해 사산국내 형성이 선영경관 조성에 끼치는 영향력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다른 한편 묘촌을 형성하지 못한 것도 이 집안이 선영 경관 조성에서 겪는 어려움 중의 하나였다. 이는 이 집안이 이것에 대한 수령의 지원을 얻어내지 못한 때문이었다. 19세기 후반의 지배적인 사회 현상으로서 민의 성장은 선영경관을 조성하려는 사족의 입장에서 보면 확실히 장애물이었다. 풍산김씨 영감 댁이 자기 거주지인 오미동과 가까운 지역에 선산을 새로 조성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그 산 아래에 살고 있던 주민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친다. 이에 대해 풍산 김씨 집안에서는 수령권을 통해 이들을 진정시키려 하였으나 여의치 못하였다. 결국 주민들에게 거액의 돈을 줌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이를 통해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19세기에 사족이 선영 경관 조성의 과정에서 막대한 돈을 투여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목적이 경제적 동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동기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족과 묘산 아래의 하민의 관계는 더 이상 사족이 수령권을 빌려서 점유에 의해 맺어진 권위적 관계가 아니라 교환에 의해 성립된 등가적 관계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더보기The gentry class tried to make the ancestral tombs and their cultural environments. This paper aims at studying about their intention of making them in the new circumstances of the nineteenth century. Without the suryeong(守令)'s voluntary aids, it may have been impossible for the gentry class to make them. Because the fundamental elements of them, for exemple the tomb-slaves' freeing from their duties, the acknowledgement of the right of having mountain's land for them belonged to his right. Only the gentry class who could make friends with the suryeong(守令) could make them. In this paper, I overviewed the conditions of the 19th-centry gentry class's making them concretely by examining the old papers stored by the examples of two families. One is the Pung-Yang(豊壤) Jo(趙) family who have lived in Hwa-sung(華城), the other is the Pung-san(豊山) Kim(金) family who have lived in An-dong(安東). I concluded from these examples as will follow. At first, they paid much money for making them. This shows the social circumstances in 19th century got to be different from before. The ownerships of mountains became more stable enough to buy and sell. But the buyer still needed the acknowledgement after buying the land. The Pung-Yang(豊壤) Jo(趙) family had much difficulty in making their ancestral tombs and their cultural environments. The main reason is that they belonged to the younger-party(少論) under the government of the older-party(老論). Otherwise, the Pung-san(豊山) Kim(金) family had lighter difficulty than the Pung-Yang(豊壤) Jo(趙) family. They faced the lower people's resistence in burying their grandfather. Because the people had lived under the mountain since several hundred years ago and the mountain might have gave such living tools as the trees for heating their rooms. At any rate the Kim family could prevent their resistance by giving much money. This event had several symbolic meanings. It meant the rising of the lower people's power. At the same time, it meant that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gentry class and the lower had changed from the upper class's overwhelming ruling relation to the relationship of mutual bargaining. In end, the gentry class in the 19th century had the strong intention to make the ancestral tombs and their cultural environments. Their intention came not from the cause of economical greed, but from social-cultural cause. I think the competition among many families might put the strong press on their intention for make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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