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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 조선변호사시험 합격자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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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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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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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219(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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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일제하 조선변호사시험 합격자에 대한 연구이다. 일제하 ‘독학자의 등용문인 조선변호사시험은 1922년부터 1945년까지 실시되어 총 199명이 최종 합격하였다. 1944년까지 총 지원자 수 5,622명과 최종 합격자 199명으로 합격비율을 계산하면 3.5%로 매우 어려운 시험이었다. 연평균 합격자는 8.6명이다. 조선인만을 보면 총 134명+@이고, 연평균은 약 6명이었다.
조선변호사시험 합격자의 학력은 제국대학, 전문학교, 일본 사립대 출신을 합치면 전체의 64%이고, 여기에 사범학교와 고등보통학교 졸업자까지 전부 합치면 약 80%에 해당한다. 식민지 조선의 상황을 고려할 때 낮은 편은 아니었다. 조선변호사시험 합격자의 직업은 법원 서기, 교원, 군속(郡屬), 경찰, 전문직 등의 순으로 많았고 이들이 약 70%를 차지하였다. 즉 조선변호사시험의 합격코스는 첫째 경성법학전문학교 → 법원 서기 → 조선변호사시험 합격이라는 전형적인 코스 외에, 둘째 사범학교 → 교원 → 조선변호사시험 합격, 셋째 보통문관시험 → 군속 → 조선변호사시험 합격 코스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들의 사회경제적 배경은, 제국대학 및 일본 사립대를 졸업하고 고문 사법과에 합격한 자들이 대부분 상류 계층이라는 점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었다. 그렇다고 일반 민중과 같은 처지는 아니어서 최소한 중하류 계층 정도로 볼 수 있다. 소수를 제외하면 ‘개천에서 난 용’은 아니었다.
조선변호사시험 합격자는 초기 합격자로 3.1운동 세대인 제1세대와 중기 합격자로 광주학생운동 세대인 제2세대로 나눌 수 있다. 3.1운동 세대는 항일운동사건 재판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항일변론에 동참하였다. 광주학생운동 세대는 소수지만 직접 학생운동에 참여하였고, 대체로 항일운동 사건 재판에 역시 동참하였다. 그러나 중일전쟁 이후 전시체제가 가동되자 대부분의 변호사는 이른바 ‘중도’의 길을 걷거나 친일로 나섰다.
This article is a study on those who passed the Chosun Bar Examination[朝鮮辯護士試驗] under Japanese colonial rule. The Chosun Bar Examination, which was ‘The gateway to self-taught’ under the Japanese colonial rule, was conducted from 1922 to 1945, and a total of 199 people passed the exam. By 1944, out of a total of 5,622 applicants, 199 were the finalists. This was a very difficult exam with a passing rate of 3.5%. The average number of successful applicants is 8.6. If we look at only Koreans, there are a total of 134+@, and the average annual average is about 6 people. The educational background of those who pass the Chosun Bar Examination The educational background of the guardian is 64% of the total from universities such as Imperial University, vocational school, and Japanese private university, and if this includes graduates of normal school and high school, it reaches about 80%. Considering the situation of colonial Chosun, it was not on the low side. As a single school, the highest number of students were from Keijo Special School of Law[京城法學專門學校] with 30 students.
The occupations of those who passed the Chosun Bar Exam were about 70% in the order of court clerk, teacher, county officials[郡屬], police officer, and professional profession. Looking at the pass process, the first is a general case, after graduating from Keijo Special college of Law and going through a court clerk, second after graduating from a teacher’s school, taking an exam as a teacher, and third, after passing the general civil service exam and going through the ounty officials.
Therefore, their socio-economic background was relatively low compared to the fact that most of the people who graduated from Imperial University and Japanese private universities and passed the Department of Torture and Justice were from the upper classes. However, they are not in the same situation as the general public, so they can be viewed as at least the middle and lower classes. Except for a few, it wasn’t a ‘dragon from the river’.
Those who passed the Chosun Bar Examination can be divided into the first generation, the 3.1 movement generation, who passed the early stage, and the second generation, the Gwangju(光州) student movement generation, who passed the mid-term. The 3.1 movement generation actively participated in the trial of the anti-Japanese movement case and participated in the anti-Japanese argument. Although a small minority of the Gwangju Student Movement generation directly participated in the student movement, they also participated in the trial of the anti-Japanese movement incident in general. However, when the war system was put into operation after the Sino-Japanese War, most lawyers walked the so-called “middle road” or went pro-Japanese.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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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2-01-01 | 평가 |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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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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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1.1 | 1.1 | 0.94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81 | 0.76 | 1.284 | 0.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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