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후보
朝鮮時代 流配刑罰의 性格 = The Nature of Exile during the Joseon Dynasty
저자
신규수 (원광대학교 역사교육과)
발행기관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Korea Culture Research Institute Ewha Womans University,Seoul,Korea)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2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KDC
380.000
등재정보
KCI등재후보
자료형태
학술저널
발행기관 URL
수록면
137-169(33쪽)
KCI 피인용횟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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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ile was one of the punishments during the Joseon Dynasty. The punishments of the Joseon Dynasty was established into five types after being influenced by the Grand Ming Codes of China and from these, being exiled was classified as a severe punishment. “Hyung” indicates punishment and punishment originated from revenge. Revenge is to take vengeance on someone you have a grudge or resentment against but after a nation was established, this has been represented as a compulsive penalty upheld by the power of the nation.
If there was someone to receive this punishment of exile, there was someone who ordered this punishment. In principle, the punishment was ordered by the king, the Minister of Justice, and the provincial governor;however, there were cases forced by the lobbying of bureaucrats and political opponents. That is, a person can be exiled by an individual with power, through the decision of a policy or if it is the wish of the people throughout the nation. Therefore, the exiled could have resentment and hatred toward the punisher and it is just as important to whom the exiled person holds a grudge against. This is because the exiled could spend their life resenting someone for the rest of their life, which will only bring about self-destruction.
On the other hand, under the bad geographical conditions, an exiler lived a difficult life since their day jobs were mainly in fishery or agriculture. The exiled had no one to express and listen to their frustrations and hate and it was also not the place to discuss philosophy or academia.
Although many suffered from the inevitable anger in their place of exile, as time passed and much of the rage has faded, some took this opportunity to make a fresh new start. They blamed themselves for their situation which provided an opportunity for a self-examination. This paved the way for a better future and from time to time, some of the most beautiful arts and intellectual studies were created in places of exile.
In this respect, the punishment of exile was a chance of self-reflection and the place of exile was a secret training ground where people can build their character, not a fierce battle ground.
유배의 형벌은 조선시대 형벌 가운데 하나이다. 조선시대 형벌은 중국의 대명률(大明律)의 영향을 받아 오형(五刑)으로 정립되었는데, 여기서 유배의 형벌은 중형에 해당되었다.
형(刑)이란 곧 형벌을 지칭하는 말이다. 형벌의 기원은 ‘복수’라는 데에 있었다. 복수라는 것은 원한이 있는 상대에게 대한 앙갚음인데 국가가 세워지면서부터 국가의 권력에 의한 강제력이 뒷받침된 형벌로 정립되었다.
‘유배형벌을 받은 자’가 있다면 ‘유배라는 형벌을 내린 자’가 있었다. 유배의 형벌은 국왕과 형조, 지방의 관찰사가 결정하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더러는 국왕을 둘러싸고 도는 관료집단이 국왕의 의사를 강요하여 정해지는 경우와 정적(政敵)에 의해 유배의 형벌에 처해지는 경우가 있었다. 따라서 유배의 형벌을 내린 자는 권력을 가진 개인일 수도 있고, 정책에 의한 결정일 수도, 혹은 온 국민의 바람에 의해 이루어질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배자는 상대에 대한 원망과 증오가 있을 수 있다. 이는 곧 유배의 당사자가 누구를 원망하느냐와 궤를 같이 할 수 있는 문제인데, 유배 기간 동안 줄곧 상대에 대한 원망과 한탄으로 일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원망으로 일관한 삶이란 결국 자기 멸시와 자기 파괴를 가져올 따름이었다. 한편, 지형적인 악조건 속에서의 지역민의 생활이란 것도 어업이나 농업이 주업인 관계로 세찬 격랑과 싸워야만 했을 열악한 삶이었다. 따라서 유배지는 자신의 온갖 울분과 증오를 토로해 보았자 귀 기울여 줄 사람이 없고, 철학이나 학문을 논할 환경이 아니었다.
열악한 유배지에서 어쩔 수 없는 인간적인 분노에 시달리다가도, 세월과 더불어 격정(激情)이 사그라지고 허물이 벗겨질 양이면, 유배라는 극악한 현실을 오히려 새 출발의 계기로 삼은 인물도 있었다. 그들은 모든 결과를 자신의 모자람과 부덕의 소치로 돌리고 운명의 힘을 온 가슴으로 끌어안기도 하였다. 그랬을 때 가장 활기찬 현실의 반성과 미래의 모색이 유배지에서 꽃피기도 하였다. 즉, 유배지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술품의 완성이, 가장 심오한 학문의 집대성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유배라는 형벌은 곧 자신을 회고하는 기회의 제공이었던 것이며, 유배지는 골치 아픈 이전투구가 벌어지는 난전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세계를 가다듬을 수 있는 심산(深山)의 수련장이었던 것이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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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6-02-15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미등록 -> The Korean Cultural Studies | KCI등재 |
201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기타) | KCI후보 |
2012-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기타) | KCI후보 |
2011-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FAIL (등재후보2차) | KCI후보 |
2010-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9-06-11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Korea Cultural Research Institute -> Korea Culture Research Institute | KCI후보 |
2008-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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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44 | 0.44 | 0.4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44 | 0.4 | 0.735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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