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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조선 농민의 만주 이주와 ≪매일신보≫ 등에서의 ‘만주식민지’론 = Emigration of Korean Peasants to Manchuria and ‘Manchuria as the Colony of Korean’ Theory in 1910’s THE MAIL-IL SHIN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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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명
한국 근현대사 연구(Journal of Korean modern and contemporary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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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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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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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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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162(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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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1910s, a large number of the Korean peasants had been emigrated to Manchuria. They had complaints on the political and economic pressure from the Japanese colonial rule. The majority of these peoples had been not only languished in poor in Korea but also had gone to live as poor peasants and workers in Manchuria. Particularly they considered the Gando as a utopia, and then they emigrated to that province. Some peoples whose had a anti-Japanese consciousness thought the Gando as a land of freedom.
As a mouthpiece of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THE MAIL-IL SHINPO regarded the emigratory Koreans as losers in struggle for existence, and described the Gando as a hell, and actively opposed Korean emigration to Manchuria. Since Japan and China formed an ‘Agreement of Nam-Man-Dong-Mong’ in May 1915, however, THE MAIL-IL SHINPO highly had been encouraging Koreans to emigrate to Manchuria.
After those times THE MAIL-IL SHINPO compared emigration to Manchuria to the recovery of Korean lost territory. And then claimed that Manchuria and Korea had been maintaining a indivisible relationship as the same one. This claims came from the perspective of the continents invasion to make Manchuria into the territory of Japan. The intellectual who have been cooperating in this policy of THE MAIL-IL SHINPO was Ji-yeon Jang. THE MAIL-IL SHINPO and Jang had regarded Manchuria as the Korean colony. This discourse conceiving of Manchuria as the Korean colony had played a role of interfering with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in Manchuria. These discourses had distorted the desire of the Korean peoples for opposing to economic deprivation and the Japanese rule.
1910년대에는 많은 조선 농민이 일제 치하의 정치경제적 압박에 대한 불만을 품고 조선을 떠나 만주로 이주했다. 만주에 거주하는 조선인이 1909년에 약 21만 명이었는데 1919년에 이르면 43만여 명이나 되었다. 이들의 대다수는 빈농 출신이 었고, 만주에서 대개 소작농이나 노동자로 살아갔다. 조선의 빈농은 특히 간도에 대해 ‘영생처’, ‘요지정토’, ‘낙토 이상향’ 등으로 생각하며 이주했다. 항일의식을 가진 조선인은 간도를 ‘조선인의 자유천지’라고 생각하고 이주하였다.
이에 비해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는 이주하는 조선인을 ‘생존경쟁 패배자’ 로 간주하였고, 간도에 대해서도 ‘생지옥’ 등으로 표현하며, 이주에 적극 반대하며 만주에 있는 조선인의 귀환을 종용하였다. 그러나 1914년 7월 1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즈음하여 매일신보는 조선인의 만주 이주를 ‘일본 대륙경영의 밑바탕’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듬해 5월 25일 중국과 일본이 ‘남만동몽조약’을 체결한 후부터 매일신보는 지면을 통해 조선인의 만주 이주를 적극 권장하였다.
1910년대 중반 이후 매일신보는 조선인이 만주로 이주하는 것을 ‘고토 회복’에 비유하였고, 나아가 만주와 조선이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조선의 경우처럼 만주를 일본의 영토로 삼으려는 대륙침략의 관점에서 나온 것이다. 매일신보의 이런 방침에 협력한 국내 지식인이 장지연이었다. 매일신보와 장지연 및 잡지 반도시론 등은 당시의 만주를 ‘조선인 식민지(殖民地)’로 보았다. 이러한 ‘만주식민지’론은 만주를 항일운동의 근거지로 삼으려는 독립운동을 무산시키려는 담론의 역할을 하였다. 또한 조선인의 만주 이주의 목표를 경제문제의 관점에만 국한시킴으로써, ‘합병’ 이후 경제적 궁핍과 동시에 일제 지배에 대한 불만을 품고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의 현실을 왜곡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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