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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연해주 금속 루트와 한반도 청동기의 기원과 계통 = The Origin of the Korean Bronzeware and Diffusion Routes of Eurasian Metallurgical Tr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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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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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아우라지, 춘천 근화동과 천전리 유적에서 출토된 7점의 청동기를 중심으로 한반도 청동기의 기원 및 초기 청동기 양상을 살펴보았다. 유물의 절대수가 많진 않지만, 모두 주거지 내부라는 확실한 출토 맥락에서 다른 유물들과 공반하여 출토되었고, 절대연대 측정치 산출되었기에 한반도로의 청동기 도입 과정을 구명하는 자료로 전혀 손색이 없다.
한반도 초기 청동기의 기원은 멀리는 시베리아의 세이마-투르비노 유형이 유라시아 전역으로 확산되는 과정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세이마-투르비노 청동기 제작 전통은 동아시아에서 ‘카라숙 청동기’ 전통 내지 문화로 구현되었는데, 이는 전차와 강력한 마구와 무기를 발달시킨 유목민족을 통해 중국 장성지대뿐만 아니라 요서·요동 지역으로도 확산되었다. 그런데 이 청동기 제작 전통은 자바이칼을 거쳐 연해주를 포함한 극동지역과 두만강 일대로 연결되는 또 하나의 루트를 형성했는데, 마제석검 전통이 강한 지역에서는 강력한 무기 대신 소형 장신구를 단조로 제작하는 지역화가 발생했다. 동북한 청동기 전통은 두만강 유역 흥성유형을 거쳐 기원전 13세기 전후로 돌대문토기 단계의 한반도 중부지방으로 확산되었다.
동북한 계통 청동기의 도입 과정은 크게 3단계로 구분된다. 즉, 제Ⅰ단계(기원전 13세기)는 단조로 제작된 청동기가 석제 장신구의 일부로 사용되는 시기이다, 제Ⅱ단계는 돌대문토기 후반~청동기시대 전기 전반(기원전 13~10세기) 장신구와 소형 노동도구가 제작되는 시기이고, 마지막 제Ⅲ단계(기원전 10~8세기)는 단조 기법에서 탈피하여 재가공된 동모와 같은 무기가 사용되는 천전리식 주거지 축조 시기이다. 현재까지 보고된 고고자료로 한정하면, 동북한 계통 청동기가 남한 청동기 제작에 미친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진주 대평리 옥방 출토 곡옥형 청동기는 동북한 청동기 전통이 남해안 일대까지 확산되었음은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이다. 다만, 서북한 지역 비파형동검 문화가 한반도 청동기시대 문화 형성에 상대적으로 영향을 미쳤기에 동북한 청동기 전통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덜 두드러지게 보일 뿐이다.
동북한 계통 초기 청동기 전통은 한반도 청동기의 보급 연대를 상당히 소급했음은 물론, 그 기원을 유라시아 청동기의 보편성에서 살펴볼 근거를 제공했다. 다시 말해서, 기원전 15세기 무렵 발생한 동아시아 일대의 기후변화(한랭건조화) 및 인구 급감과 함께 세이마-투르비노 청동기 전통이 동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한반도도 이 영향권에 포함되었다. 하지만 정선 아우라지 출토 소형 장신구는 석제 목걸이를 감싸는 장신구의 일부분 역할에 머물렀으며, 주거지가 폐기되면서 동시에 폐기되었음은 한반도 중부에서는 청동기가 도입 과정부터 대단한 사회 변화를 촉발하거나 석기와 차별화된 위신재로 채택되진 않았을 가능성이 큼을 시사한다. 청동기 도입에 따른 본격적인 사회 변화는 청동기시대 중기 이후 청동기가 주거지가 아닌 고인돌이나 석관묘에 부장되고, 기종 역시 위신재로서의 상징성이 강한 동검 위주로 재편되면서부터 발생한 것으로 이해된다.
한반도 청동기 도입에서 유라시아적 보편성과 석검 위주의 사회가 지속되는 특수성은 한반도 청동기문화의 주요 특징이며, ‘청동기시대’란 시대 명칭 대신 한반도의 특수성과 편의성을 강조한 ‘무문토기시대’라는 시대 명칭은 더 이 ...
Based on the seven bronze implements unearthed from Auraji site, Jeongseon and Geunhwa-dong and Cheonjeon-ri sites, Chuncheon, the origin and initial aspects of the Bronze Age of the Korean peninsula are thoroughly reviewed and analyzed. Although the number of bronze artifacts is quite small, only seven, all of them were unearthed in the evident archaeological context without any doubt, inside the semi-subterranean houses at these sites, along with associated artifacts.
In addition, radiocarbon dates of these artifacts provide qualification as critical data for the investigation diffusion processes of bronzeware into the Korean Peninsula more than enough.
The Korean Bronze Age originated from the spreading processes of Siberian Seima-Turbino Type bronzeware throughout Eurasia continent. The Seima- Turbino bronzeware tradition was implemented in East Asia as the ‘Karasuk Bronzeware culture’, and it also spread to the region of the Great Wall of China and Liaoning region via nomadic people equipped with chariots, harnesses and weapons. This bronzeware tradition explored another diffusion route through the Trans-Baikal region into the Far East including Maritime Province and the Tumen River where quite strong polished stone dagger tradition had been maintained. Instead of powerful weapons, localization to manufacture small-sized ornaments and tools for labor through forging technique occurred.
The northeastern tradition of making bronzeware diffused into central region of the Korean Peninsula at the stage of the raised band decoration pottery via Heungseong assemblage of Tumen River valley around the 13C BCE.
The introduction process of the bronze tool can be largely divided into three stages. The first stage (13C BCE) was a period when the forged bronzeware was used as a part of a stone ornament, 13C BCE. The second stage(13~10C BCE), from the second half of the raised band decoration pottery phase to the first half of Early Bronze Age, was a period of making bronze ornaments and small tools for labor. The third stage (10~8C BCE) was a period of Cheonjeon-ri type house when reprocessed weapons (e.g. bronze spearhead at Cjeonjeon-ri site) were adopted instead of implements using the forging technique of the earlier stage.
The influence of the northeastern bronzeware tradition on the making bronze tools of the South Korea was quite limited; however, considering bronzeware with the shape of comma-shaped jade unearthed at Okbang site at Daepyeongri, Jinju, it is quite clear that the influence had spread into the South coast. Due to the spread of the Mandolin-shaped bronze dagger culture introduced from northwestern region, little trace of northeastern tradition were left.
The early northeastern bronzeware tradition not only raised the upper limit of the Korean Bronze Age considerably but also provided concrete base to reconsider the origin of Korean bronzeware in the context of the universality of the Eurasian bronzeware. In other words, along with climate change (being cold and dry) and rapid population decline in the East Asia around the 15C BCE, the Seima-Turbino bronzeware tradition spread throughout the whole East Asia, including the Korean peninsula and Maritime Province. Considering that a small bronze ornament at Auraji site of Jeongseon simply played a role to cover a part of a stone necklace and was discarded along with the pit house, the bronzware seems not to have trigger a significant social change and not to have been adopted as prestige goods distinguished from stone implements such as a polished stone dagger at least in the initial stage. The full-scale social change along with introduction of the bronzeware seems to have began to occur after the Middle Bronze Age when the bronzeware was buried in dolmens or stone cists rather than found at pit dwellings, and symbolic items such as a bronze dagger appeared.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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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1-11-11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미등록 -> THE JOURNAL OF HUMANITIES | KCI등재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 KCI등재 |
2016-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후보 |
2015-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후보 |
2013-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12-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FAIL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10-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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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49 | 0.49 | 0.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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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5 | 0.45 | 0.871 | 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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