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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시기 ‘(일본)국사’의 ‘조선사’ 포섭 논리 = Logic of Joseon History Assimilation in Japanese National History during Japanese Occup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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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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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5-423(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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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일제 시기 역사교육에서 국사와 조선사 간의 위상 및 관계 변화를 시기별로 정리해보았다. 먼저 역사교육이 시작된 1920년대 이래 1930년대 전반기까지는 국사의 조선사 포섭 논리가 모색되고 정리되어가는 과정이었다. 조선에 머물고 있는 일본인 교육자들에게는 역사와 구별되는 국사 체계를 정립시키는 것이 우선적 과제였다. 국사는 순수사학이 아니라 응용사학이라는 구분법이 말해주듯, 국사는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고, 그 특수 목적은 바로 교육이었다. 교육적 목적이라는 미명하에 역사의 보편적 가치 훼손이 용인되고 있다.
한편 1931년 만주사변이 발발하고 세계적으로 국가주의 추세가 확장되면서 국사의 위상을 높이자는 주장도 더 강화된다. 그 속에서 조선사를 국사 체계 안에 포섭시켜야 한다는 논리도 등장하고 있다. 1920년대에는 향토사라는 차원에서 조선사에 대한 접근이 존재했는데, 당대 교육자들은 조선과 일본과의 관계가 역사적으로 좋지 않았던 점과 조선인들의 자국 역사 인식이 강하다는 점 때문에 고충을 토로하고 있었다. 그러나 1930년대 들어 원칙적으로 조선사를 국사 체계 안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논의도 좀 더 뚜렷해지는데 조선총독부는 그전부터 이미 경성제대 교수 등을 동원한 조선사편수회 사업의 식민사학 연구, 즉 관학아카데미즘에 기반하여 조선사 연구를 통제하고자 했다.
조선학운동이 한창이던 1935년 총독부는 본격적으로 국사와 조선사가 결합된 교과서 편찬에 들어간다. 결과물이 나오는 것은 1938년 이후인데 침략전쟁을 개시한 일본은 사상적으로 더 경직되어 있었다. 총독부는 조선사편수회 사업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조선사 포섭은 물론 일본 내지의 국사 체계 자체의 혁신을 요구한다. 조선사의 국사 편입은 전시체제기 황국신민화 정책의 강제성에 의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고, 그전까지 추진되어 오던 일련의 시도들이 특정 국면에서 실현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This writing organized changes of the position and relation between Japanese national history and Joseon history in the historic education during Japanese occupation by times. First of all, the logic of assimilation of Joseon history in the national history was sought and organized during the period from 1920's to the early 1930's in which historical education started. To Japanese educations staying in Joseon, it was top priority to establish national historical system discriminated from the history. As said in the division method that the national history was not pure historical science but application history, the national history had special goals, which means the education itself. Under the pretext of educational goals, damage in historical universal value was allowed.
In the meantime, as Manju War occurs in 1931 and nationalism tends to expand in the world, the assertion is more reinforced that national position needs to increase. In the midst of such trends, the logic Joseon history shall be included in the national history appears. In 1920's, Joseon history was dealt under the name of local history, and then-current educators were complaining about difficulty things owing to the facts that relation between Japan and Korea was not so good and that Joseon people's recognition of their history was strong. However, in 1930's, the assertion that Joseon history shall be basically included in the national history became more clear, and Japanese Government General of Korea tried to control Joseon history study, on the basis of colonial histories study of Joseonsa Pyeonsuhoe that used Gyeongseong Imperial University professors, etc., that is, national academism.
In 1935 in which Joseon studies movement was at it peak, Japanese Government General of Korea in earnest starts to edit a textbook which combined the national history with Joseon history. The result is to come out after 1938, and Japan that started its war of aggression was more stiff ideologically. At the time of Joseon history editing business being finished, Japanese Government General of Korea demands renovation of the national history system including Joseon history. It would be considered that Incorporation of Joseon history into the national history has not been made in a day by colonial policy of subjecting to Japan, but has been made by a series of attempts, which have been carried out from the past, have been realized in a certain time and situation.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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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8-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2006-07-12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Institute of Korean Studies -> Center for Korean Studies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75 | 0.75 | 0.68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62 | 0.59 | 1.314 | 0.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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