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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계(蘆溪) 박인로(朴仁老)의 사회적(社會的) 위상(位相)에 대한 재검토(再檢討) = Reconsideration of Nogye, Bak In Ro's Social Status
저자
발행기관
학술지명
어문논집(Journal of The Society of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8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33-70(38쪽)
제공처
소장기관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노계 박인로의 사회적 위상과 개인적 상황에 대해 ‘沒落 鄕班’으로 표현해왔다. 그런데 근년에 와서 그와는 전혀 다른 견해를 제출한 학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노계는 영천 지역의 대표적인 士族인의 密陽 朴氏 家門의 일원으로서 중소지주층의 ‘유력한 在地士族’이었으며, 그러한 사회적 위상에 걸맞은 역할을 수행하면서 당당하게 행세했던 인물이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노계가 영천지역에서 행세하던 유력한 재지사족이었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여러모로 동의하기 어려운 점이 있으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노계의 작품들 가운데는 다른 사람의 ‘명령’으로 지은 작품이 유난히도 많은데, 그 가운데는 나이가 20-30세 어린 李德聲의 아들들의 ‘명령’을 받고 지은 「相思曲」과 「勤酒歌」도 포함되어 있다. 노계가 만약 당당하고 유력한 사족이었다면, 이덕형의 아들들이 아버지와 친하게 지냈던 노계에게 이러한 가사를 지으라고 ‘명령’을 내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둘째, 노계는 鄭逑와 張顯光의 문인임이 분명하고, 曺好益에게 배웠다는 기록도 있다. 하지만 정구, 장현광, 조호익의 제자들의 이름을 기록한 명부인 及門錄에 한결같이 노계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노계의 이름이 나올 법한 곳에 모두 빠져 있는 것을 보면, 그가 어떤 이유로 士族들로부터 소외를 당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셋째, 이 지은 鄭귀陽를 「蘆溪朴公遺事」보면 그가 경작지와 보배로운 채찍을 남에게 빼앗겼다는 일화가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일화들을 보면 노계는 당당하고 유력한 재지 사족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였다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넷째, 각종 밀양박씨 족보에 의하면 노계의 큰아버지 朴?이 아들이 없어서 7촌 조카 朴士愼을 양자로 맞았는데, 친조카인 노계 3형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핏줄이 먼 친척을 양자로 맞은 이유가 궁금하다. 아울러 20세기 이전에 간행된 古本의 密陽朴氏 族譜들에 노계의 이름이 거듭 누락되어 있는 것을 보면, 노계 집안의 사회적 위상이 유력한 사족은 아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다섯째, 현재 道溪書院 건너편 야산에 있는 노계의 아버지와 노계 및 노계 형제들의 묘소가 한 지역에서 행세했던 유력한 士族의 묘소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소박하고 조촐하다. 노계 집안의 묘소가 이처럼 소박하고 조촐한 것은 그당시 노계 집안의 사회적 위상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와 같은 사실을 종합해 볼 때, 노계가 당당하게 행세했던 유력한 在地 士族이었다는 견해는 再考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오히려 그는 어떤 근원적인 결함으로 인하여 사회로부터 소외를 당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만약 필자의 견해가 타당하다면, 지금까지 학계에 보고된 논문들 가운데서도 재검토되어야할 사항들이 상당히 많을 것으로 생각하며, 앞으로 노계의 생애와 문학을 연구하는 데도 이 글이 적지 않게 참고가 되리라 기대된다.
The academic sector generally expressed Nogye's social status as ‘a fallen rural noble class.’ Recently, however, there have been scholars who have presented completely different opinion. They argue that Nogye was from a wealthy and powerful noble family that represented the Bak Family of Miryang, the most noted family of Yeongcheon and lived a confident life doing what was appropriate for his social class. However, the following are the reasons why it is hard to agree with their opinion:
First, there are noticeably many pieces of Nogye that were written by others' 'orders' including 「Sangsagok」 and 「Gwonjuga」 that were written by the 'orders' of the sons of Yi Duk Hyung who were only between 20 and 30 years of age. If Nogye were a powerful nobleman, it wouldn't have been possible for the sons of Yi Duk Hyung to 'order' Nogye who was close to their father to write the songs.
Second, it is clear that Nogye was a literary man of Jung Goo and Hyun Gwang Jang and it is recorded that he learned from Jo Ho Ik. However, Nogye is not mentioned in the list of names of pupils of Jung Goo, Hyun Gwang Jang, and Jo Ho Ik. Considering that his name is missing from all records related to him, we can assume that he may have been alienated from the noble families for some reason.
Third, Nogye's autobiography records that he once lost his farm and treasured whip to someone else. This anecdote tells us that Nogye was not a powerful nobleman, but a social weak.
Fourth, the family records of the Bak Family of Miryang shows that Nogye's uncle, Bak Rin, adopted his far nephew, Bak Sa Shin, and it is wondered why he adopted a far relative when Nogye's three brothers were his closer nephews. Also, Nogye's name is missing in the older family records of the Bak Family of Miryang several times, so we can assume that Nogye was not from a powerful noble family.
Fifth, the tombs of Nogye's father, Nogye, and his brothers on the hill across from Dogye Seowon are very poorly set and managed. The appearance of his family graveyard must reflect the social status of his family.
Considering the above findings, it shall be reconsidered that Nogye was from a confident and powerful noble family. If my opinion is valid, many of the theses reported to the academic sector shall be reconsidered and my study would be helpful for further studies on Nog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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