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映湖朴漢永의 抗日運動 = Yeong Ho(映湖) Pak-Hanyeong’s the Anti-Japanese 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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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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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 박한영은 일제하를 중심으로 한 한국근현대 불교사에서수행자이자 개혁가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그는 쇠퇴한지 오래된 한국불교가 중흥할 수 있는 길은 불교계의 인재양성과 포교에 있다고 확신했다. 때문에 그는 한국불교의 성숙과 발전을 저해하는 것은 자만심과 게으름, 이기심과 인색함, 그리고 정진의부족함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불교가 미래사회에 가장 적합한 종교이며, 불교의 화엄철학이 문화와 종교, 과학의다원화를 통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와 같은 박한영의 불교계에 대한 비판은 불교개혁으로 이어졌고, 호법(護法)과 항일운동으로 전개되었다. 그가 한용운과함께 진행한 임제종운동(臨濟宗運動)은 일본불교의 침투와 일본불교에 경도되어가는 한국불교계에 각성과 함께 앞으로의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하고 있었다. 그것은 불교청년회와 그 별도조직인 불교유신회의 활동으로 구체화되었다. 불교청년회는 30본산 주지회의 친일화에 저항했고, 불교유신회는 불교계를 분열시키고 황폐화시키는 사찰령 철폐를 위해 활동하였다.한편 박한영은 국권회복과 나라의 독립을 위한 저항운동에도참여하였다. 한성임시정부(漢城臨時政府) 수립 당시에는 이종욱과 함께 13도 대표이자 불교계 대표로서 에서명하였다. 또한 1921년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되는 세계회의에 한국의 독립과 자주를 희망하는 에 서명하기도 했다. 국민대표와 각계의 지도자들이 참여한 이회의서에는 “세계 여러 나라가 한국의 독립자유를 위해 노력해줄 것”을 희망하고 있었다. 한국불교의 정통성과 자주권을 지키고자 했던 박한영의 의식은 독립운동의 기조와 일치한 것이었다. 결국 박한영은 자신의 소임을 불교개혁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민족수호운동으로까지 확장시켰다
더보기Yeong Ho(映湖) Pak-Hanyeong(朴漢永) had taken an energetic role as a eminent priest and reformer in modern history of Korean Buddhism under the rule of Japanese Imperialism. He believed firmly that Buddhist’s path to restore Korean Buddhism should not only cultivate talented men in Buddhist circles but also propagate Buddhism toward the Korean people. Besides this, he indicated that several causes impede the matureness and development of Korean Buddhism were self-pride, idleness, ego-centric mind, stinginess, and the lack of religious surification. However he believed that Buddhism could be the more proper religion in the future and the philosophy of Hua-yen(華嚴) would unify the Pluralization among Korean religion, culture, and science. To Buddhist society Pak Han-yeong’s critical claim had lead the reform of modern Korean Buddhism, identified Korean Buddhism, and developed anti-Japanese campaign. The movements to popularize Imje Sect(臨濟宗運動) which he and Yong-un Han(韓龍雲) had practiced guided for an upcoming aggressive response against the invasion of Japanese Buddhism or for the great awaken movement against Korean Buddhist circles, which had leaned toward Japanese Buddhism. The reform movement of Buddhism actualized into the activities of Buddhist young men’s Association(佛敎靑年會) and Buddhist Association for reunification of Revitalizing Reform(佛敎維新會). The Former resisted the pro-Japanization of thirty main temple of Buddhist sect. On the other hand the latter concentrated one’s energies on abolition against the temple Act promulgated by the Japanese Government, which encouraged estrangement between members of Korean Buddhist circles. Pak-Hanyeong took part in positively the campaign of restoring National Right as well as the resistance movement against Japanese imperialism. When Provisional Government was built at Seoul in april 1919, as representative of Buddhism circles he and Chong-Ouk Rhee(李鍾郁) affixed their signature to official paper named “the people meeting’s prospectus.” When the naval disarmament conference was held in washington in november 1921, he also signed his name to the other official paper titled “official document that All Korean people send into the Pacific Conference,” The gist of this official paper was included the following fact: All Korean people want the independence of Korea and the a fully self-governing state. Furthermore this paper that nation’s representatives and leaders from various circles had signed petitioned that all nations in world should make effort on the independence and liberation of Korea. His consciousness to uphold the orthodoxy and identification of Korean Buddhism made no difference with independence movement. After all Pak-Hanyeong not limited his mission to the reform of KoreanBuddhism but expanded his duty into the defence movement of Korea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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