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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휴(1224~1300)의 정치참여와 정치관 = Political Participation and Political View of Lee Seunghyu (1224-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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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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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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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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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7-464(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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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휴는 13세기를 살았던 고려의 역사가로 지금까지 이승휴가 저술한 『제왕운기』는 지금까지 한국의 초기 역사서로 많은 역사가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본고에서는 이승휴와 『제왕운기』를 역사가와 역사서로 이해하기 보다는 정치사적 맥락에서 접근하고자 하였다. 이승휴는 고종 39년(1252)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몽고의 침임으로 인해 10여 년간 삼척에 거주하게 되었다. 원종 4년(1263) 안집사 이심의 권유로 삼척 생활을 접고 강화로 가서 관직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승휴는 이장용․유경 등의 추천으로 관직에 입문하였다. 그러나 이승휴의 관직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이승휴를 추천한 문신들은 군주인 원종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인물들은 아니었고 오히려 국왕인 원종과 충열왕의 견제의 대상이었다. 이들의 후원으로 관직에 나간 이승휴 또한 국왕의 견제의 대상이었다. 당시 원종과 충열왕은 원의 지원을 배경으로 친위세력을 양성하고 강력한 신료들을 제어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군주들의 정치 방향은 유교적 군주론을 지향한 이승휴의 입장과는 배치되는 것이었다. 이승휴는 잘못된 인사행정․국왕 측근 인사들의 발호 등을 비판하다가 결국 충열왕 6년(1280) 감찰사 상소 건으로 인하여 심양 등과 함께 파직 되었다. 이승휴는 이를 계기로 삼척으로 귀향하였다. 귀향 후 그는 『제왕운기』를 찬술하기 시작했다. 이승휴는 자신의 저술 작업을 통해 당대에 대한 인식과 정치관을 정리하였다. 이 저술의 목적은 국왕인 충열왕에게 읽히기 위한 것이었다. 이승휴가 영사시(詠史詩)라는 방법을 택한 것도 방대한 역사를 축약하여 쉽게 읽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승휴는 나라의 흥망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기울여 서술하였다. 이승휴는 『제왕운기』를 통하여 치란(治亂)의 전형적인 모습을 제시하였다. 군주가 한의 애제․평제와 같이 너무 나약하여 신하를 제어하지 못하여도 나라가 망하고, 항우와 같이 신하를 믿지 못하고 군주가 독단에 빠지는 것은 나라를 망치는 길이었다. 반면 당 태종과 같이 이미 승평을 이루었어도 항상 어진 선비를 구하고 간언을 용납하여야 했다. 당 태종이 그러했기 때문에 방현령․두 여회와 같은 현상들이 군주를 보필하고 위징과 같은 간신(諫臣)들이 정치의 잘못과 군주의 잘못을 바로잡아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었다. 이러한 정치는 단순히 군주의 노력만으로는 되는 것은
아니었다. 정치를 올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어진 재상과 강직한 언론의 존재가 필수적이었다. 어진 재상과 언론을 나오도록 하는 것은 군주의 몫이었다. 군주의 권한을 신하에게 넘긴다던가, 군주가 신하에게 제어되면 군주는 군주의 도를 잃는 것이었다. 이러한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교육을 장려하여야만 했다.
Lee Seunghyu was an historian in the 13th century of the Goryeo Dynasty. His book, 『Jyeowangungi』 had brought him to the attention of many historians. This paper aims to understand Lee Seunghyu in the political contexts rather than a simple historian. Generally, Confucian scholars in the pre-modern period aspired to go into politics in order to achieve reign of peace through aiding Monarch. Lee Seunghyu followed the same way. Lee Seunghyu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the 39th year of King Gojong’s Reign (1252). However, the following year, he had went to Samcheog to visit his mother and stayed there for ten years with the invasion of Yuan Dynasty. After that, Lee Seunghyu stated an official position in Gangwha after ending life in Samcheong by Lee Sim’s suggestion in the 4th of King Wonjong’s Reign(1263). Lee Seunghyu entered politics on the recommendation of Lee Jangyong(李藏用) and Yu Kyung(柳璥). However, He had maintained critical position against political direction of King Wonjong and King Chungyoul. King Wonjong and King Chungyoul intended to foster palace guards and control powerful courtiers. Lee Seunghyu supported Confucian monarch which Kings opposed at that time. Lee was dismissed from political position in the 6th year of King Chungyoul because he had criticized wrong personnel administrations and dominance of King’s closest aids. Finally, Lee Seunghyu returned to Samchuk(三陟). After rerurning to Samchuk, he begain to write 『Jyeowangungi』. He wanted to organize political views and thought of the time through his writing work. The writing was intended primarily for King Chungyoul. For this purpose, Lee used the way of Youngsasi(詠史詩). In particular, Lee Seunghyu gave considerable attention in writing the rise and fall of King’s reign. He described typical characteristics of the rise and fall of King’s reign in the 『Jyeowangungi』. That is, the regime falls if Monarch does not control his courtiers like Emperor Ae(哀帝) and Emperor Fing(平帝) for his weakness. On the contrary, if Monarch ruled arbitrarily for distrust on courtiers, the regime also falls. God does not protect and care the country if Monarch as Mujong of Tang Dynasty accepted false charges against innocent people and lost his good judgement. On the other hands, Monarch should have accepted good remonstrance and have appointed upright scholars like Emperor Taijong of Tang Dynasty. This politics was not realized only by efforts of Monarch. Righteous courtiers and upstanding journalists are essentially required in order to improve Ritual system(禮制) and perform impartial politics. The produce of those courtiers and journalists would be possible by Monarch’s role. If Monarch transfers his authority
to countries or Monarch was controled by his courtiers, Monarch would lose his royal authority and duty. Education should be promoted to prevent these situ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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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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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3-09-24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동양사회사상 -> 사회사상과 문화외국어명 : Jonrnal of East Asian Social Thoughts -> Jonrnal of Social Thoughts and Culture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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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6-03-06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Jonrnal of Asian Social Thoughts -> Jonrnal of East Asian Social Thoughts | KCI등재 |
2004-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2-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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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84 | 0.84 | 0.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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