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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기사(竹嶋紀事)』 분석 -안용복,박어둔 진술서 분석 및 "우산도(于山島)" 기록을 중심으로- = Deposition by Ahn Yong-bok and Park Eo-dun at the in 『Jukdogisa』and the Recognition on "Usando Is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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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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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157(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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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안용복’을 독도를 지킨 인물로 부각시키는데 반해 일본에서는 안용복을 부정적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일본 연구자들은 안용복에 관한 한국측 문헌의 기술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제 그들이 일본 사료를 통해 새로운 ‘안용복상’을 그려낼 필요성이 있다. 그런 점에서 우선 『竹嶋紀事』에서 보이는 안용복과 박어둔 진술서를 살펴보겠다. 흔히들 『竹嶋紀事』에서는 ‘우산도’, 즉 독도 기록이 없다고 한다. 이케우치 사토시(池內敏)의 경우 안용복이 평가되고 있는 점은 항상 ‘울릉도를 지켰다’는 사실이다. 松島는 조선 왕조에 있어서도 영유 인식의 대상 외였다.”고 하였다. 이케우치 사토시의 견해 비판을 위해 『죽도기사』에 나타난 ‘于山島’ 기록을 분석하고자 한다. 1693년 4월 17일, 안용복과 박어둔은 울릉도에서 일본 오야 가문 어부들에 의해 납치되면서 같은 날 배에서 오야 가문의 선원들이 안용복과 박어둔을 심문했다. 안용복은 울릉도에 간 목적을 三界의 샤쿠완(상관, 혹은 장군)의 명령으로 전복이나 미역을 따기 위한 것이라고 진술하고, 3월 27일에 부산포를 출항하였다고 했다. 4월 18일 일본 오야 가문의 배가 울릉도를 떠나 20일 오키국(隱岐國) 도고(嶋後)의 후쿠우라(福浦)에 도착하였다. 안용복과 박어둔은 5월 7일에 이나바(因幡)를 출발하여 6월 말일 나가사키에 도착하였다. 7월 1일 에도막부의 명을 받은 쓰시마 번에서 온 留守居 하마다 겐베(濱田源兵衛)가 안용복과 박어둔을 심문했다. 안용복과 박어둔은 나가사키를 거쳐 9월 2일에 쓰시마에 도착하였다. 이틀 뒤인 9월 4일 大目付(대감찰) 가도노 구로자에몬(門野九郞左衛門)은 쓰시마도주의 명령을 받아 안용복과 박어둔을 심문했다. 안용복의 진술의 경우 배 3척은 울릉도에 전복과 미역 채취를 위해 돈벌이 간 것으로 진술했고, 달리 상거래를 할 마음이 절대 없고, 일본인과 상거래를 절대로 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우리들이 울릉도에 건너간 일은 달리 몰래 간 것도 아니고, 조정의 명령을 받은 것도 아니고 자신들의 돈벌이를 위해 건너갔다고 진술했다. 『죽도기사』에서 ‘우산도’가 세 차례 등장한다. 1693년 11월 19일에 쓰시마도주에게 보낸 다다 요자에몬(多田與左衛門=橘眞重)에게 서장을 보낸 뒤 12월 5일 쓰시마도주는 다다 요자에몬에게 답신을 보냈다. 쓰시마도주의 답신의 경우 ‘우산도’가 세 차례 등장한다. 첫째, 쓰시마번에서 안용복 진술에서 울릉도에서 ‘우산도’를 두 번 보았다고 하였다. 둘째, 재판 다카세 하치에몬(高瀨八右衛門)이 탄 배가 사스나(佐須奈)에 도착했을 때 박동지가 ‘우산도’를 거론하였고, 셋째, 『여지승람』기록을 들어 우산도와 울릉도는 별도의 섬인 것처럼 보인다고 하였다. 안용복이 울릉도와 우산도를 두 섬을 인식하였음은 물론이고, 조선 조정과 접위관 홍중하, 박동지 및 쓰시마도주와 대차왜 다다 야자에몬과 재판인 다카세 하치에몬까지 울릉도와 우산도를 두 섬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울릉도쟁계’가 진행하는 동안에 안용복은 물론이고, 조선 조정과 일본 에도막부와 쓰시마도주의 경우 ‘竹島’는 ‘울릉도’이고, ‘松島’는 ‘于山島’인 것을 알았다. 그 때문에 1695년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는 돗토리번(鳥取藩)에 竹島(울릉도)와 松島(독도)가 언제부터 속하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이에 돗토리번은 竹島와 松島는 ‘돗토리번에 속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결국 도쿠가와 막부는 1696년 1월 ‘竹島渡海禁止令’을 내렸다.한국에서 ‘안용복’을 독도를 지킨 인물로 부각시키는데 반해 일본에서는 안용복을 부정적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일본 연구자들은 안용복에 관한 한국측 문헌의 기술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제 그들이 일본 사료를 통해 새로운 ‘안용복상’을 그려낼 필요성이 있다. 그런 점에서 우선 『竹嶋紀事』에서 보이는 안용복과 박어둔 진술서를 살펴보겠다. 흔히들 『竹嶋紀事』에서는 ‘우산도’, 즉 독도 기록이 없다고 한다. 이케우치 사토시(池內敏)의 경우 안용복이 평가되고 있는 점은 항상 ‘울릉도를 지켰다’는 사실이다. 松島는 조선 왕조에 있어서도 영유 인식의 대상 외였다.”고 하였다. 이케우치 사토시의 견해 비판을 위해 『죽도기사』에 나타난 ‘于山島’ 기록을 분석하고자 한다. 1693년 4월 17일, 안용복과 박어둔은 울릉도에서 일본 오야 가문 어부들에 의해 납치되면서 같은 날 배에서 오야 가문의 선원들이 안용복과 박어둔을 심문했다. 안용복은 울릉도에 간 목적을 三界의 샤쿠완(상관, 혹은 장군)의 명령으로 전복이나 미역을 따기 위한 것이라고 진술하고, 3월 27일에 부산포를 출항하였다고 했다. 4월 18일 일본 오야 가문의 배가 울릉도를 떠나 20일 오키국(隱岐國) 도고(嶋後)의 후쿠우라(福浦)에 도착하였다. 안용복과 박어둔은 5월 7일에 이나바(因幡)를 출발하여 6월 말일 나가사키에 도착하였다. 7월 1일 에도막부의 명을 받은 쓰시마 번에서 온 留守居 하마다 겐베(濱田源兵衛)가 안용복과 박어둔을 심문했다. 안용복과 박어둔은 나가사키를 거쳐 9월 2일에 쓰시마에 도착하였다. 이틀 뒤인 9월 4일 大目付(대감찰) 가도노 구로자에몬(門野九郞左衛門)은 쓰시마도주의 명령을 받아 안용복과 박어둔을 심문했다. 안용복의 진술의 경우 배 3척은 울릉도에 전복과 미역 채취를 위해 돈벌이 간 것으로 진술했고, 달리 상거래를 할 마음이 절대 없고, 일본인과 상거래를 절대로 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우리들이 울릉도에 건너간 일은 달리 몰래 간 것도 아니고, 조정의 명령을 받은 것도 아니고 자신들의 돈벌이를 위해 건너갔다고 진술했다. 『죽도기사』에서 ‘우산도’가 세 차례 등장한다. 1693년 11월 19일에 쓰시마도주에게 보낸 다다 요자에몬(多田與左衛門=橘眞重)에게 서장을 보낸 뒤 12월 5일 쓰시마도주는 다다 요자에몬에게 답신을 보냈다. 쓰시마도주의 답신의 경우 ‘우산도’가 세 차례 등장한다. 첫째, 쓰시마번에서 안용복 진술에서 울릉도에서 ‘우산도’를 두 번 보았다고 하였다. 둘째, 재판 다카세 하치에몬(高瀨八右衛門)이 탄 배가 사스나(佐須奈)에 도착했을 때 박동지가 ‘우산도’를 거론하였고, 셋째, 『여지승람』기록을 들어 우산도와 울릉도는 별도의 섬인 것처럼 보인다고 하였다. 안용복이 울릉도와 우산도를 두 섬을 인식하였음은 물론이고, 조선 조정과 접위관 홍중하, 박동지 및 쓰시마도주와 대차왜 다다 야자에몬과 재판인 다카세 하치에몬까지 울릉도와 우산도를 두 섬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울릉도쟁계’가 진행하는 동안에 안용복은 물론이고, 조선 조정과 일본 에도막부와 쓰시마도주의 경우 ‘竹島’는 ‘울릉도’이고, ‘松島’는 ‘于山島’인 것을 알았다. 그 때문에 1695년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는 돗토리번(鳥取藩)에 竹島(울릉도)와 松島(독도)가 언제부터 속하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이에 돗토리번은 竹島와 松島는 ‘돗토리번에 속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결국 도쿠가와 막부는 1696년 1월 ‘竹島渡海禁止令’을 내렸다.
더보기‘Ahn Yong-bok’ was recognized as a hero who preserved Dokdo island in Korea but he has been described as negative image person in Japan. Japanese researchers raise a question about the description of Korean part for Ahn Yong-bok. We need to describe the image of ‘Ahn Yong-bok’ through the historical materials in Japan too. I``d like to review about the materials concerning the Ahn Yong-bok and Park Eo-dun deposition in 『Jukdogisa』 Many people explain that 『Jukdogisa』 do not mentioned about ‘Usando(于山島)’, that is Dokdo record. In case of Ikeuchi Satoshi(池內敏), Ahn Yong-bok was well evaluated in which he ‘preserved Ulleungdo’. Ikeuchi always has explained Songdo(Dokdo-松島) has been out of recognition of territory during the Choseon Dynasty.” Now, I will analyze the record on ‘Usando(于山島)’ revealed in 『Jukdogisa』 to criticize the views of Ikeuchi Satoshi. On April 17 in 1693, Ahn Yong-bok and Park Eo-dun were taken away forcibly at Ulleungdo by Japanese fishers from Oya family and were examined by the fishers on same day. Ahn Yong-bok stated ‘the purpose of cross to Ulleungdo island was to harvest sea weed and abalone by the order of higher rankers of Korean administration(Sakuwan or General) from three provinces and started sail on March 27 to the island’. On April 18, the fishing boats from Oya family in Japan left Ulleungdo and arrived in Fukuora(福浦) of Dogo(嶋後) in Oki Island((隱岐國) Japan. Ahn Yong-bok and Park Eo-dun left Ianaba(因幡) on May 7 and arrived at Nagasaki(長崎) on late June. On July 1, Hamada Kenbe(濱田源兵衛) the district governor from Tsushima province of Edo government(Bafuku) inquired Ahn Yong-bok and Park Eo-dun. Ahn Yong-bok and Park Eo-dun arrived at Tsushima(對馬島) on September 2 through Nagasaki and were inquired by Kadono Gurojaemon(門野九郞左衛門) the higher inspector(大目付) who has been ordered by Tsushima governor on September 4, the two days later of the arrival. Ahn Yong-bok stated that the purpose of three ships from Choseon sailed to Ulleungdo was to harvest abalone and sea weed for money but has no intentions to earn much money and never tried to trade with Japanese. They explained the purpose of the sail to Ulleungdo was not ordered from government and secret sail but sailed by themselves only for money. Usando was mentioned three times on 『Jukdogisa』. On November 19 in 1693, the letter of Tada Yozaemon(多田與左衛門=橘眞重) arrived to Tsushima governor. And Tsushima governor replied to Tada Yozaemon on December 5. In the correspond letter of Tsushima governor, ‘Usando’ was cited three time. First, deposition of Ahn Yong-bok in Tsushima province described two times watching for ‘Usando’ at Ulleungdo. Second, Park Dong-ji concerned about ‘Usando’ when the ship judge Takase Hachiemon(高瀨八右衛門) rode arrived on Sasna(佐須奈), and thirdly Usando looks different to Ulleungdo citing Yeoji-seunglam(輿地勝覽). Ahn Yong-bok not only recognized the difference between Ulleungdo and Usando but also Choseon dynasty receptionist Hong Jung-ha, Park Dong-ji, governor of Tsushima, count Japanese Tada Yajaemon, and Judge Takase Hachiemon even recognized Ulleungdo and Usando as two different islands. During the ‘Dispute on Ulleungdo Issue’, not only Ahn Yong-bok but also Choseon dynasty, Japanese Edo government and Tsushima governor recognized ‘Jukdo(竹島)’ was ‘Ulleungdo’ and ‘Songdo(松島)’ was ‘Usando(于山島)’. Because of the epoch, Tokugawa government(Bafuku) of Japan in 1695 requested to Dottori(鳥取藩) province about when the two islands 竹島(Ulleungdo) and 松島(Dokdo) were belong to Japan. The answer from Dottori province was ‘Ulleungdo(竹島) and dokdo(松島) do not belong to Dottori province’. As a result, Tokugawa government declared order of ‘Prohibition of sail to Jukdo(竹島)’ on January 1696. (Research Professor Dokdo Research Institute, Yeungnam Univ./ khd223@y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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