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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겸(吳允謙)의 일본사행과 대일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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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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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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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선조~인조대 활약했던 오윤겸이 일본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았는지를 구명한 것이다. 오윤겸은 1592년 일본이 조선을 침략했을 때 정철의 종사관으로 활약했고, 평강현감을 지냈다. 전쟁 경험은 그에게 일본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주었을 가능성이 높다.
1609년 7월~1610년 9월 오윤겸은 동래부사를 지냈다. 이때 그는 대일외교 현안을 해결하면서, 일본 사신의 접대와 관련된 규정들을 만들어 나갔던 것 같다. 1617년 오윤겸은 회답사의 정사로 임명되었다. 사행 전 그는 사행단의 밀무역 금지, 일본에서 돌아온 피로인의 사행금지 등을 주장했다. 또 일본이 조선 사신을 인도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러한 모습들은 일본을 의심하면서, 조선이 일본보다 우위에 있다는 그의 일본관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행 중 오윤겸은 쓰시마를 조선의 번병으로 규정하여 상하관계를 분명히 하면서도, 적대감을 보이지는 않았다. 일본의 덴노와 정치체제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나타내기도 했지만, 일본의 음식과 숙소, 사신 접대 등에 만족감을 나타냈다. 일본의 경제적 번영에 대해서도 긍정적 시각을 보였다.
사행 후 이괄의 난이 발발하자 오윤겸은 왜관에 있던 일본인의 도움을 얻으려 했다. 1629년 쓰시마에서 보낸 사신은 상경을 요구했고, 상경 후에는 공무목의 추가지급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그는 유연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조선의 국익을 우선시하였다. 야나가와 잇켄 이후 일본의 침략 가능성이 제기되었지만, 이를 부정하는 등 일본을 신뢰했다.
오윤겸은 사행을 계기로 일본에 대해 유연한 시각을 보인 반면, 여진족에 대해서는 적대감과 불신감을 나타냈다. 이는 북쪽의 여진족과 남쪽의 일본 모두를 상대해야 하는 당시 조선의 대외적 상황이 반영된 것이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대일사행 경험이 그의 대일인식에 영향을 미쳤고, 사행후 그는 일본에 대한 경계심을 거두고 조선이 실리를 추구하는 방향에서 대일정책을 전개했다는 점이다.
This paper presents an investigation into the viewpoints that Oh Yun-gyeom(吳允謙), who was active during the reign of Kings Seonjo and Injo, took to look at Japan. He served as a commissioned officer under Jeong Cheol(鄭澈) and held office as Hyeongam in Pyeonggang(平康縣監)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It is highly likely that the war experiences gave him a negative image of Japan. After the war he served as Busa in Dongrae (東萊府使). He seems to have issued regulations on entertaining envoys from Japan while resolving issues arising in Joseon’s diplomacy with Japan during those years.
In 1617, Oh Yun-gyeom was appointed Jeongsa (正使) of Hoidapsa(回答使). Before taking on the diplomatic mission, he maintained that there should be a ban on smuggling by diplomatic envoys and meandering by kidnapped people. He also emphasized that Japan should provide accompaniment for diplomatic envoys from Joseon. These reflect an aspect of his view of Japan as inferior to Joseon despite his suspicions that Japan would invade Joseon again.
During his mission as diplomatic envoy, Oh Yun-gyeom stated that the relations between Joseon and Tsushima were those of superior and subordinate by defining Tsushima as a protectorate of Joseon and showing no animosity toward it. He was negative about the emperor and political system of Japan but expressed satisfaction with Japan’s food, accommodation, and entertainment of envoys. He also had a positive view of Japan’s prosperity, looking at Japan from a relativist perspective.
After Oh Yun-gyeom’s return from the diplomatic envoy mission, Lee Gual’s Revolt led him to seek help from the Japanese in Waegwan (倭館). In 1629, diplomatic envoys from Tsushima demanded entry to the capital of Joseon and placed a request for more Gongmumok (公貿木) after they arrived in the capital. He adopted a flexible attitude toward their demands and placed priority on the national interest of Joseon. The possibility was raised that Japan would invade Joseon again after Yanagawa Itken (柳川一件), but he denied this possibility and trusted Japan.
Oh Yun-gyeom’s view of Japan was more flexible after his diplomatic mission, but he maintained animosity toward the Jurchens, which reflected the contemporary situation of Joseon facing the threat of the Jurchens in north and Japan in south. Above all, his experiences with the diplomatic envoy mission with Japan impacted his view of Japan. After the mission, his suspicion of Japan was relaxed, leading him to pursue policies toward Japan intended to benefit J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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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4-01-27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통일인문학논총 -> 통일인문학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12-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11-03-23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인문학논총 -> 통일인문학논총 | KCI후보 |
2010-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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