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Thomas Mann and Holland = 토마스 만과 네덜란드
저자
Sung-Hyun Jang (Lecturer in German at Keimyung University, Research fellow at the Institute for International Studies of Keimyung University)
발행기관
계명대학교 국제학연구소(THE INSTITUTE FOR INTERNATIONAL STUDIES KEIMYUNG UNIVERSITY)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00
작성언어
English
KDC
809.000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179-197(19쪽)
제공처
토마스 만(1875-1955)은 의심의 여지없이 위대한 "독일 작가이자 독일 문화의 수호자이자 전파자였지만 여러가지 계기로 다른 나라들과도 긴밀한 접촉을 가졌으며, 이러한 외국 문화들과의 조우는 만의 작품에 생산적인 영향을 미쳤다. 본고에서는 지금까지의 토마스 만 연구에서 별로 다루어지지 않은, 토마스 만과 네덜란드와의 전기적 접촉을 살펴보았다.
비록 네덜란드가 이탈리아, 스위스, 미국 같은 나라들만큼 토마스 만의 인생과 작품 세계에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지만, 이 작은 나라는 자기 나름대로,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파시즘에 단호하게 저항한 독일의 대문호를 정성껏 대접했고 그의 작품들을 활발히 수용하였다.
토마스 만의 작가로서의 첫 네덜란드 방문은 1922년 10월에 네임베겐, 위트레흐트, 암스테르담등에서 연설 「독일 공화국에 관하여」를 행하기 위해 이루어졌다. 그 후 1924년에 만은 다시 암스테르담을 방문하여 「민주주의와 삶」에 대해 연설하였고, 6년 뒤인 1930년 9월 13일에는 헤이그에서 「우리 시대 작가들의 정신적 상태」라는 제목으로 강연하였다. 1933년 2월에 토마스 만은 연설 「리하르트 바그너의 고뇌와 위대성」을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행하기 위해 첫 목적지인 암스테르담을 향해 떠났는데, 이것이 그의 망명의 시작이 되었다. 그의 맏아들과 맏딸로부터 나치들이 그를 해치려 획책을 꾸미고있다는 보고를 전화로 들은 토마스 만은 독일에 돌아가지 않고 스위스에 정착하기로 결심했고, 나중에는 미국으로 이주하여 망명 생활을 계속하였다.
토마스 만의 네덜란드와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은 네덜란드의 문학 및 문화 비평가지아 작가였던 멘노 텔 브라크(1902-1940)였다. 나이로봐서는 토마스 만보다 한 세대 어렸지만, 그는 토마스 만과 여러가지 지적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고, 특히 파시즘에 대한 단호한 거부는 두 작가를 정신적으로 묶어 준 결정적인 요소였다.
1937년 8월 텔 브라크가 토마스 만을 망명지인 스위스의 퀴스나흐트로 방문하면서 두 사람의 교분은, 1939년 6월부터 두 달간 토마스 만이 네덜란드의 해변 휴양지인 노르트베이크에 체류하면서 더욱 깊어졌다. 이 기간 동안 텔 브라크는 여러 차례 노르트베이크로 토마스 만을 방문해서 심오한 대화들을 나누었으며, 토마스 만이 텔 브라크가 사는 헤이그를 한 번 방문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텔 브라크는 1940년 5월 히틀러의 군대가 네덜란드에 진입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947년 「우리의 경험에 비춰 본 니첼 철학」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하기위해 다시 네덜란드를 찾은 토마스 만은 이 기회에 다시 노르트베이크에 머물며, 8년전 텔 브라크와 나누었던 대화들을 회상하면서 「텔 브라크를 추모하며」라는 제목으로 수필을 썼다. 이 글에서 토마스 만은, 자신의 작품들과 네덜란드의 문학 동료들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한 "선한 유럽인" 멘노 텔 브라크에 대한 자신의 존경심을 표현했으며, 텔 브라크가 쓴, 만의 소설 『바이마르의 로테』에 대한 비평은, 이 소설에 대해 그때까지 발표된 모든 글들 중 가장 우수한 글이라고 격찬하였다.
작고하기 한 달 전인 1955년 7월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네덜란드를 방문한 토마스 만은 여왕의 이름으로 외무장관이 수여한 십자 훈장을 받았으며, 만은 답례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네덜란드를 사랑하였으며, 네덜란드의 문화, 문학, 예술 그리고 아늑한 경치뿐 아니라, 네덜란드 국민들의 순전히 인간적이고 도덕적인 특성들을 사랑하였습니다. 이러한 특성들은 특히 끔찍하게 왜곡된 독일이 [. . . ] [다른 나라들 뿐 아니라] 네덜란드에게도, 그리고 특히 네덜란드에게, 끔찍하고 좀처럼 잊혀지지 않을 고통을 가하였을 때 꿋꿋이 버텨냈습니다." 이 글에서 살펴본 바대로, 토마스 만과 네덜란드는 상호 존경심을 바탕으로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하였고, 네덜란드와의 교류는 "명예 세계 시민"으로서의 토마스 만의 명성에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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