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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諸國과 고구려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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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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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238(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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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제국과 고구려의 관계는 기록이 소략하여 자세히 파악하기 어렵다. 이 글에서는 3세기부터 6세기 중반까지 가야 각국이 고구려와 어떻게 관계를 맺었고, 그 의미가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했다.
가야 제국은 고구려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직접 교섭하거나 지속적으로 교류하기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고구려의 영향으로부터 동떨어져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고구려에 의해 낙랑·대방군이 축출된 이후 고구려와 신라를 중심으로 전개된 새로운 교역체계 속에서 신라가 가야보다 앞서 나가게 되었다. 400년 고구려군의 남정 이후 신라는 낙동강 하구 교역권에서의 주도권을 장악하였고, 4~5세기의 고구려와 북방 문물은 신라를 매개로 가야 사회에 들어오게 되었다.
가야사에 가장 큰 외부 충격으로서 400년 고구려군의 남정이 평가되고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금관국(금관가야)에 한해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다. 안라(아라가야)를 비롯한 다른 가야 세력들은 그 영향권 밖에 있었다. 가야 제국은 400년 이전부터 변화하고 있었으며, 그 변화의 원인은 낙동강 하구 유역으로 진출하려는 신라와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금관국의 쇠퇴에서 비롯되었다. 고구려를 등에 업은 신라가 가야 제국에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각국은 새로운 진로 모색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대가야와 안라가 각각 고구려와 교섭했던 것이 확인되지만, 모든 가야 세력들이 동시기에 고구려와 관계를 맺었던 것은 아니었다. 고구려·백제·신라의 역학관계에 따라 가야 제국 중 일부가 신라·백제와 함께 고구려에 대항하기도 하고, 백제를 견제하기 위해 고구려와 손을 잡기도 했다. 고구려 역시 백제와의 대립 구도 속에서 필요한 경우 가야 세력과의 연계를 도모하였다. 이처럼 가야 각국이 개별적으로 고구려와 교섭하였고, 교섭은 일시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고구려가 가야 사회에 미친 영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대가야와 안라가 백제와 신라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우에 따라 고구려를 외교적 수단으로써 활용했다는 점에서 고구려와의 교섭은 그 의의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The relationship between Gaya and Goguryeo is difficult to figure out in detail due to the lack of related records. This article aims at examining how each state of Gaya countries built a relationship with Goguryeo from the 3rd to the middle of the 6th century and what the meaning of the relationship was.
It was hard for Gaya countries to have direct negotiation or interact consistently with Goguryeo because the geographical distance between the two was far. However, it did not mean that Gaya countries was far from the influence of Goguryeo. After the expulsion of Nangnanggun(樂浪郡) and Daebanggun(帶方郡) by Goguryeo, Silla attained superiority over Gaya in the new trading system developed around Goguryeo and Silla. After the Goguryeo’s southward conquest in 400, Silla took the lead in the right of trading at the Nakdong River estuary, and the Goguryeo and Northern civilizations of the 4th and 5th centuries was spread to Gaya society through Silla.
In the history of Gaya, Goguryeo’s southward conquest in 400 is considered to be the biggest external impact, but technically, it directly affected only Geumgwanguk(金官國), also known as Geumgwangaya(金官加耶). Other Gaya forces including Alla(安羅), also known as Aragaya(阿羅加耶), were outside of its influence. Gaya confederacy had already been changing before 400, and the reason of change was because of Silla that was trying to expand to the mouth of the Nakdong River and the decline of Guemgwanguk that failed to respond properly to this situation. As Silla started to influence Gaya countries by having Goguryeo in the back, each state was forced to seek new paths.
Although it is confirmed that Daegaya(大加耶) and Alla negotiated with Goguryeo separately, but this did not mean that all the Gaya forces established a relationship with Goguryeo at the same period. Depending on the dynamics of Goguryeo, Baekje and Silla, some states of the Gaya countries held against Goguryeo with Silla and Baekje, or joined forces with Goguryeo to keep Baekje in check. Goguryeo also aimed to form association with Gaya forces, if necessary, in the confrontation with Baekje. Each state of Gaya countries separately negotiated with Goguryeo, and because this negotiation was temporary, the influence of Goguryeo on Gaya society was limited. Nonetheless, the negotiation with Goguryeo can find its meaning in that Daegaya and Alla took advantage of Goguryeo as diplomatic means to survive from the dynamics between Baekje and silla.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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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8-07-07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The Korean Ancient Historical Association -> The Society for Ancient Korean History | KCI등재 |
200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2-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1.69 | 1.69 | 1.84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1.64 | 1.57 | 3.463 | 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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