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문화냉전 시기 남북한 민족예술의 경합: 1950-70년대 해외공연을 중심으로 = International Competition of Traditional Performing Arts between South and North Korea in the Cultural Cold War Period: Focusing on Overseas Performances during the 1950-70s
저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21
작성언어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발행기관 URL
수록면
187-239(53쪽)
DOI식별코드
제공처
소장기관
이 글은 문화냉전의 차원에서 전개된 남북한 국제적 경합의 전개를, 냉전이 가장 극심하게 대립되던 1950년-1970년대 진행된 남북 민족예술 해외공연의 양상을, 남한에서는 정권과 민족예술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북한은 사회주의 민족예술의 전개 단계와의 관계 속에서 파악하면서, 민족예술이 냉전 정치학에 호명되어 냉전 민족주의(허은 2011)와 냉전 세계주의(클라인 2017)를 수행하게 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전후 복구과정에서 소련의 지원을 적극적으로 받았던 북한은 민족예술의 국제경쟁에서 남한보다 앞서 있었다. 모든 것을 국가가 관리하는 강력한 사회주의 국가주도 체제는 문화냉전의 국제경합에서 유리했다. 반면 초기 남한의 문화예술보다 아시아의 반공의 보루로서만 관심을 두었던 미군정과 민족적인 것의 발굴하고자 했지만 경제·정치적 입지가 약했던 초기 정권에서 민족예술을 통한 국제경합은 열세에 놓인 상황이었다.
남북 민족예술의 해외공연에서 가장 다이나믹한 시기는 1960년대이다. 세계적 냉전의 심화, 아시아 역내 정치학의 변화, 남북관계 등이 역동적으로 돌아가던 시기였다. 북한은 인민을 위한 균질화된 민족예술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구체화된 공연양식으로 해외공연을 확대하였다.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이 시기 남한의 해외공연은, 정권의 조국 근대화와 반공 민족주의의 역군으로 호명되며 미국 문화냉전 전략과 틀 안에서 전개되었다. 사회주의 혁명 완수를 위해 호명된 민족예술과 반공과 근대화의 역군으로 호명된 남한의 민족예술은 각각 체제유지와 국제경합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북한은 소련과 중국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하며 주체사상에 기반한 <피바다>식 혁명가극의 양식을 확립하여 1970년대부터는 해외공연의 주요 종목으로 채택하게 된다. 유신헌법과 함께 더욱 강력한 조국 근대화와 민족주의의 부흥을 내세우고 강력한 통제체제를 작동시켰던 박정희 정권의 1970년대는 국립단체를 중심으로, 남북 민족예술 국제경합에 적극적 대응에 나서며 대규모 공연단을 해외에 파견하면서 민족예술의 국가봉사를 더욱 강조하였다.
당대 글로벌 문화냉전은 한반도의 민족예술의 수립에 근간으로 역할 했고 특히 해외공연의 레퍼토리 구성에 영향을 주었다. 또한 국가적 유용성과 민족주의적 경합은 국내적으로도 민족예술의 위상에 영향을 주었다. 미-소 군정기에 보여주었던 서구식 문명화를 향한 동경, 타자를 통해 민족예술의 우수성을 인정받고자 한 점, 민족예술에 대한 근원적 고민보다 국민통합과 국제경합의 도구로 민족예술을 위치시킨 점은, 그 과정에서 구축된 민족예술 결과물의 벌어진 간극을 초월하여, 남북이 거울처럼 서로 비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문화냉전의 차원에서 전개된 해외공연을 통한 남북 민족예술의 경합은 ‘이념성’, ‘민족성’, ‘문명화’의 과시이자 경쟁이었고 이후 한반도 민족예술의 향방을 결정짓고 있음도 유의해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This paper explores the international competition between two Koreas under the context of Cultural Cold War, through overseas performances of traditional performing arts of both Korea from the 1950 to 70s. The occup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by the U.S. and the U.S.S.R after World War II led to the establishment of two Koreas in 1948 and the peninsula’s positioning as the battlefield in a Cold War. “National” discourses as well as ideology have been emphasized to demonstrate ideological superiority. In this situation, the two Koreas have competed in terms of their respective Koreanness, by preserving and reinventing “traditions.” Domestic and international propaganda on systemic, ideological, state, national authenticity has fed on “Cold War Nationalism” (Heo, 2011) and “Cold War Cosmopolitanism” (Klein 2017), and traditional performing arts became very effective means of propaganda for international competition between the two Koreas.
In the post-war period, South Korea was not able to organize its cultural infrastructure at a state level. The first international performance tour was organized by the nation, but funded by the USIS. Other performing troupes were also sent to Free Asia Alliance nations. In the 1960s, several traditional performing arts troupes made performance tours of the US, supported and invited by Cold War-related institutions including the Asia Foundation. During the 1970s, more strong nationalistic yusin rhetoric forced national performing arts troupes to serve the nation through traditional performing arts and performed frequently throughout the world than before and it was based on cold war competition.
North Korea led the way in systemizing national art troupes for international tours. It re-organized the cultural infrastructure and artist groups beginning in the 1950s to prove the superiority of its system and competing “Korean-ness”. The North frequently dispatched folk performing arts troupes, including Choe Seung-hui, to socialist alliance states on tour. North Korea expanded its diplomatic relations beyond USSR, China and Socialist alliance nations during the 1960s. Along with its establishment of socialist revolutionary opera during the 1970s, North Korea expanded its overseas performances to other part of the world.
This paper examines the competition between the two Koreas’ national discourses in the Cold War period, focusing on international performances of traditional performing arts between 1950s and 1970s. At the same time, it reveals that the internal politics of the peninsula intertwined with the global Cold War have defined the direction of modernization of traditional performing arts in both Koreas, in completely opposite ways.
분석정보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