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민담에서 동화로, 동화에서 애니메이션으로의 변용과정에 나타나는 정치적 전유: 그림(Grimm) 동화와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결과보고서
저자
발행기관
-
발행연도
2007년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자료형태
한국연구재단(NRF)
이 연구의 목적은 서구 사회에서 고대로부터 민중들 사이에 구전되어 오던 민담이 근대에 '동화'라는 문자화를 거치면서, 또한 더 나아가 이 문자화된 동화가 현대에 '애니메이션'이라는 영상화를 거치는 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변용되어 왔는지 살펴보고, 그 변용의 과정에서 발생한 정치적 전유의 양상을 밝히는 데 있다. 서구 전래 민담에서 동화로, 그리고 동화에서 애니메이션으로의 변용은 당대의 기술적 변화를 반영함은 물론, 작가, 제작자 및 수용자 층의 의식 변화를 첨예하게 반영하고 있다. 분석 대상은 현대 애니메이션에 풍부한 소재를 제공하였던 독일의 그림 형제의 동화선집이 주가 되고, 또한 이를 바탕으로 애니메이션에 성공한 대표적 기업인 월트 디즈니사의 작품들로 삼았다. 본 연구를 위해 첫장에서는 서구에서 수천년 동안 구전의 형태로 존재하던 민담이 16세기 이후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주로 귀족이나 부르주아 작가들에 의해 새로운 문학 텍스트인 동화로 거듭나는 양상을 밝혀보았다. 이 과정은 봉건주의로부터 초기 자본주의로의 전환기에 나타나는 가치관의 변화나 이념적 갈등이 동화 속에 반영되기도 하고, 또한 문자화를 담당한 작가에 의해 내러티브의 관점이나 스타일등이 전유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즉, 민담에서 동화로 변화하는 초기 과정에 이미 정치화가 개입되는 것이다. 특히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에 걸쳐 민담의 동화화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졌는데, 이는 소수의 귀족층만을 대상으로 하던 동화가 그 범위를 넓혀 부르주아 층까지 대상으로 삼음에 따라 아동문학에 대한 수요가 훨씬 더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 시기 유럽은 계몽주의가 확산되어 도덕적이고 기독교적인 선악 개념을 가장 우위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출판업자와 성직자, 교육자, 부모들이 나서서 어린이들에게 적합한 읽을거리에 대해 토의하여 유익한 이야기의 판단 기준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동화의 내용은 어린이들로 하여금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경고를 하는 내용과 착하고 모범적인 사례를 보여주는 교훈적인 이야기들로 넘쳐났다. 대표적인 동화 선집자인 그림형제는 1812년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동화> 제1권을 발간한 이후, 1857년에 이르기까지 일곱 차례에 걸쳐 판을 거듭하여 이야기를 실어나갔다. 그들은 민담을 기록하면서 어린이들에게 부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성적이고 외설적 요소들을 삭제 또는 변형시킨다든지, 남녀의 역할에 대한 성차를 고착화시킴으로써 기독교 가부장제의 사회적 지향점을 따르고자 노력하였다. 따라서 "창의적인 오염자"라는 긍정적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림형제가 민담의 토속적이고 건강한 원색적 요소, 민족 고유의 색채와 해학 등을 상당부분 훼손시켰다는 부정적 지적도 많다. 또한 동화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단순히 교훈적이고 계몽적인 역할의 범주에서 벗어나 소위 '공포의 교육학'으로 불릴 수 있는 매우 규범적인 틀을 확대 재생산 해내게 되었다. 동화를 통해 어린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사회와 어른이 만들어 낸 일정한 틀에 맞춰 규범적인 인간으로 성장해가는 것이다. 따라서 동화 역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사회화와 문화변용을 위한 도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고 볼 수 있다. 두번째 장에서는 20세기에 들어와 동화가 영화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통해 거대 자본의 투입과 대중적 전파라는 막강한 전략이 발휘됨으로써 정치성이 보다 공고히 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동화가 영화의 소재로 등장하기 시작한 1920년대 이후 동화는 사회 전반에 대중적으로 전파되었고 관객의 높은 지지를 확보하게 되었다, 동화를 소재로 한 영화화에 가장 두각을 드러낸 곳은 디즈니사로서 이후에 나올 애니메이션의 한 전형을 제공하였다. 기획단계에서부터 철저히 영화는 물론 관련 캐릭터 상품 제작이 함께 이루어지는 헐리우드 영상 제작 시스템은 동화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을 관객, 특히 어린이들에게 깊이 각인시키고 고착화시키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 과정은 자본주의 문화산업의 속성인 상업화, 대중화, 이윤 추구를 철저히 따르는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관객은 아도르노(Adorno)가 지적하는 '개별성의 희생'을 담보로 지불하며 철저히 소비자로 전락해 버리고 만 것이다. 디즈니사가 당대 대중들의 욕구를 제대로 포착하였기 때문에 성공을 거두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철저히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디즈니의 애니메이션들은 이념의 고착화 및 정치화에 어느 누구보다도 중심적인 기능을 담당하였다고 하겠다. 1930년대 이후 디즈니에 대한 비평이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는데, 특히 디즈니사가 역사성이나 현실성과는 거리가 먼 지나친 이상주의와 낙관주의의 세계를 만듦으로써 심각한 가치혼란과 가치전도를 가져왔음을 비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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