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다 아키나리(上田秋成) 작품에 나타난 맹자사상 연구
저자
발행사항
용인: 단국대학교 대학원, 2011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박사)-- 단국대학교 대학원: 일어일문학과 일본근세문학전공 2010. 12
발행연도
2011
작성언어
한국어
주제어
발행국(도시)
경기도
기타서명
(A) study of Mencius'doctrines on Ueda-akinari'novel
형태사항
vi, 149 p.; 30 cm.
일반주기명
단국대학교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지도교수:鄭灐
참고문헌 : p.140-145
소장기관
우에다 아키나리의 연구사에서 맹자와의 영향관계를 주요 논제로 삼은 연구는 현재까지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그러나 아키나리가 자신의 첫 작품집인 『雨月物語(우게쓰모노가타리)』에서도 그 권두작품인 「白峰(시라미네)」에서 보여준 맹자사상(혁명이론)에 대한 심도 있는 언급은, 아키나리와 맹자 간의 영향관계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의미 있는 부분이라고 사료된다. 뿐만 아니라, 그는 동 작품집의 대단원인 「貧福論(힌푸쿠론)」에서도 다시 한 번 맹자사상(생업중시사상)을 작품에 주요부분에 인용하고 있는데, 이러한 사실은 『雨月物語』 집필 당시의 아키나리가 맹자사상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좋은 증거가 될 것이다.
『雨月物語』와 30년가량의 시차를 두고 있는 아키나리의 두 번째 작품집 『春雨物語(하루사메모노가타리)』의 경우, 『雨月物語』와는 작품집의 성향 및 주안점에 상당부분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맹자사상의 직접적인 영향은 찾아보기 힘들며, 작가 중후반기 이후의 저술에 나타나는 왕충(王充)의 명록(命祿)사상과 관련된 어휘가 다수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동 작품집에서도 맹자를 출처로 한 짤막한 어휘 인용 등은 여전히 찾아볼 수 있으며, 맹자사상의 영향이 잔존되어 있는 듯한 작품 역시 다수 찾아볼 수 있다.
아키나리 작품집에 나타난 맹자 사상의 영향을 구체적으로 살펴 보면, 먼저 『雨月物語』의 권두작품인 「白峰」의 경우, 『孟子』라는 서명의 거론과 함께 소위 맹자의 혁명이론이 직접 인용되고 있으며, 이에 관한 논의가 심도 있게 다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白峰」에 나타난 맹자사상은, 종래의 연구에서는 작가 아키나리의 맹자 비판이라는 부정적인 시점에서의 언급만이 단편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이는 스토쿠인(崇德院)이 견강부회식으로 원용한 혁명이론을 그대로 맹자의 그것과 동일시하거나, 사이교(西行)의 논박에서 거론된 맹자부도래침몰설 관련 대목을 아키나리의 국학적 입장으로 해석한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스토쿠인의 논리에 원용된 맹자의 혁명이론은 이미 그 본의를 잃은, 스토쿠인 개인의 사욕수단으로 왜곡된 그것임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는 사이교의 대사를 통해서도 증명된다. 곧 사이교가 스토쿠인에게 부각시킨 맹자의 혁명이론은, 무왕의 보민의식이 강조된, 원전에서의 요지가 일층 간결하고도 명확하게 재편집된 문장이다. 뿐만 아니라 스토쿠인을 비판하는 사이교의 논리는, 시종일관 맹자사상을 기반으로 삼고 있다. 「白峰」에서의 왕도논쟁 자체가 사이교의 <왕도> 거론으로 시작되고 있으며, 사이교가 인용한 인덕천황(仁德天皇)고사 또한 <왕도>와 <요순의 도>를 이상적인 정치상으로 삼고 있음이 그것이다. <왕도>와 <요순의 도>가 『孟子』에 전거를 둔 표현임을 고려할 때, 이야말로 맹자사상에 대한 작가 아키나리의 긍정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나아가 아키나리의 국학적인 면을 들어보면, 아키나리는 유교 자체를 전면 부정하는 당시 국학자들과는 유교 수용태도에 상당부분 차이를 보이고 있음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사이교의 맹자부도래침몰설 대목에 나타난 <타국 성인의 가르침>이라는 표현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이는 작가가 아성(亞聖)으로서의 맹자를 성인으로 승격시켜 수용하고 있는 좋은 증거가 될 것이다. 이 밖에도 「白峰」에는 맹자의 혁명이론을 긍정적으로 고려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여러 요인들이 발견된다. 왕도논쟁 전반을 흐르는 옛 주군 스토쿠인을 향한 사이교의 강렬한 비판적 언사가 그 대표적인 예다. 맹자의 혁명이론에 의하면, 인의를 저버린 폭군은 이미 임금의 자격을 잃은 일개 필부에 불과하다. 동 논리에 따른다면, 호겐난을 일으킨 패륜아요, 원령이 된 지금은 대마왕으로서 세상의 모든 전란을 주도하고 있는 스토쿠인이야말로, 가히 일개 필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곧 스토쿠인에 대한 사이교의 황당한 태도는 바로 맹자의 혁명이론을 토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여러 사항을 고려할 때, 아키나리가 「白峰」의 왕도논쟁을 전개하면서 사이교 논박에 인용 배치한 맹자의 혁명이론은, 작가의 긍정적이고도 적극적인 시각 하에 의도적으로 부각된 사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貧福論」의 경우를 살펴보면, 이 작품에는 맹자의 생업중시사상이 작품의 주요 부분인 황금정령의 제1논의에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여기에 나타난 <백성>, <생업> 등의 어휘는 그대로 「貧福論」의 핵심 어휘이자, 작품의 난해한 요소를 해독하는 열쇠 역할을 한다.
우선 여기에서의 <百姓>은 <오타카라(おたから)>라고 읽혀지고 있어, 「貧福論」에서 종종 <다카라(たから)>와 동일시되는 <黃金>에 대한 숨겨진 의미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이는 표면에 드러난 의미만으로는 간혹 의구심을 일으키는 황금의 진미를 해독하게 하는 훌륭한 단서로 작용한다. 예컨대 전국 말기의 무사 오카 사나이(岡左內)의 황금존중 발언 곧 <난세의 무장에게 있어 당계・묵양(棠谿墨陽)의 명검보다도 더 소중한 것은 황금>이라는, 당시 무사들의 풍조와는 상반된 발언에 대한 의문도, <황금>=<백성>이라는 황금의 암시적 의미 부여로 쉽게 해결된다. 곧 <황금>을 <백성>으로 치환하면, 오카 사나이의 황금존중사상은 맹자의 백성존중사상에 비견할 수 있으며, 이로서 난세의 무장이 소중히 해야 할 것은 황금이라고 강조하는 오카 사나이의 발언은, 난세의 제후들에게 백성을 강조하는 맹자의 보민사상 혹은 왕도정치사상과도 통하는 것이다.
나아가 「貧福論」의 대표적 암시요소인, 작품의 말미에 자리한 팔자구(八字の句 ; 요명일고 백성귀가(尭蓂日杲 百姓帰家))의 <家>도, 맹자의 생업중시 문구에 나타난 <생업>을 해독의 열쇠로 삼아 접근해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貧福論」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생업을 의미하는 다양한 한자어에 대한 훈독 <나리와이(なりはひ)>(혹은 나리(なり))가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곧 맹자의 생업중시사상 인용을 통한 「貧福論」에서의 생업 강조를 고려할 때, 작가가 본편의 결정(結晶)과도 같은 팔자구에도 <생업>을 의미하는 한자어를 장치해 놓았을 가능성을 상정해 볼 수 있다. 『類聚名義抄(루이쥬묘기쇼)』에 나타난 <家>에 대한 훈독 <나리와이>가 그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家>의 경우, 종래에는 <이에(いえ)>라는 훈독을 토대로 <이에야스(家康)> 혹은 <집>의 의미로 해독되어 왔다. 이에 따라 팔자구의 <百姓帰家>도 <백성이 이에야스에게 귀의한다> 혹은 <백성이 집으로 돌아간다>고 해석되어 왔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위에서와 같이, <家>를 <나리와이> 곧 <생업>으로 해독한다면, <百姓帰家>는 <백성이 자신의 생업으로 돌아간다>라고 새롭게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백성 또한 전시의 백성이므로 가래(농기구) 대신 창으로 바꿔 든 채 생업에 열중하지 못하고...(民もまた戦国の民なれば、鋤を釈て矛に易へ、農事(なりはひ)をこととせず、。。)>라는, 주인공 오카 사나이의 발언과도 구체적으로 호응하게 된다. 곧 팔자구는 <요 시절의 평화 기운 쑥쑥 움트니, 백성들이 전장에서 일터로 돌아가네.>라고 풀이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로서 팔자구는, 맹자의 정치이상인 요순의 도와 그의 생업중시사상을 아우르는, 명실 공히 맹자사상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다.
이상, 「貧福論」에 인용된 맹자의 생업중시 문구는, <黃金> 및 <家>를 해독하는 열쇠의 역할과 함께, 본편에서 강조되는 황금 존중의 의미가 맹자의 백성존중을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보여 주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끝으로 『春雨物語』 작품인 「捨石丸(스테이시마루)」(제7화)의 경우를 보면, 이 작품은 백성의 행・불행 문제를 다룬 백성 위주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넓은 테두리 안에서의 맹자와의 관련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나아가 그 암시적 요인을 살펴보면, 「白峰」와 「貧福論」에 부각된 맹자사상의 영향을 우회적인 방법으로 엿보이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예컨대 작품의 모두에 인용된 고대 만요가(萬葉歌)를 매개로 한, 천황 비판과 백성중시사상이 그것이다.
쇼무(聖武)천황에의 축원을 담은 오토모노 야카모치(大伴家持)의 동 만요가는, 아키나리의 만요슈(萬葉集) 주석서 『金砂(고가네이사고)』(권9)에서 전혀 다른 의미로 주석되고 있어 유의를 요한다. 곧 동 주석서에서 아키나리는, 이 노래가 소재로 삼고 있는 미치노쿠(陸奥)의 황금을 화두로 삼아, 이를 허황된 불교 조형물에 소비한 쇼무천황 비판으로 귀결시키고 있다. 또한 여기에 나타난 아키나리의 쇼무천황 비판이, 백성들의 극심한 부역을 연민하는 백성중시사상의 표출로 연결되고 있음은 의미 깊은 부분이다. 이는 아키나리 저술에 나타난 통치자를 향한 일련의 비판의식이 궁극적으로는 백성의 문제를 근저로 하고 있으며, 이야말로 『雨月物語』에 나타난 맹자사상의 영향을 상기시킨다. 아키나리는 바로 이러한 의미를 담고 있는 동 만요가를 작품의 모두에 배치하여, 백성의 행 불행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捨石丸」의 실마리로 삼고 있는 것이다.
무릇 「捨石丸」 모두에 나타난 만요가 인용의 의미는, 원작자의 의도와는 상반되는 미치노쿠의 황금에 대한 아키나리 특유의 해석, 곧 『金砂』(권9)에 나타난 아키나리의 신랄한 천황 비판과 백성에의 연민의식이 「捨石丸」라는 모노가타리(物語)의 구도 속에 재창작된 점에 있다고 하겠다. 이는 실로 『雨月物語』의 「白峰」 및 「貧福論」에 나타난 맹자사상을 간접적으로 연상시키는, 아키나리의 고도의 창작수법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이상, 맹자사상은 아키나리 작품집의 여러 작품에서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별히 『雨月物語』의 경우, 권두와 대단원 모두에서 공히 맹자사상이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함을 고려할 때, 아키나리가 적어도 이 시기에 맹자사상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으며, 그 시각 또한 긍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이후에도 그의 여러 저술에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강렬한 통치자 비판과 백성에의 연민은, 실로 「白峰」와 「貧福論」에 부각된 맹자사상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된다. 무릇 맹자사상은 아키나리 사상사 혹은 아키나리 작품사에서 간과할 수 없는 주요한 사상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秋成の作品の研究史において、孟子との影響関係を主要論題として扱っている先行研究は、今日まで見当たらないといっても過言ではない。しかし、秋成は彼のいくつかの作品の中で、孟子思想の影響を直接もしくは間接的に表現している。このような内容を見たとき、秋成と孟子との影響関係は秋成思想史、あるいは、秋成作品史において見過ごせない研究分野であると言える。特に、秋成の最初の短篇小説集である『雨月物語』の中でも、卷頭作品である「白峰」に表された孟子の革命思想についての言説は、この時期の秋成が孟子思想に深い関心を持っていたという一つの証拠になると思われる。これは同じ作品集の大団円である「貧福論」を通しても証明される。何故なら、秋成がこの作品でも再度孟子思想を意味深く引用しているからである。ここでは孟子の、いわゆる、恒産設(生業重視思想)が引用されているが、作品の末尾に革命の雰囲気が感じられることから「白峰」との関連が覗える。上記の内容から、『雨月物語』の卷頭と大尾の両作品に表現されている孟子という共通点は、『雨月物語』によって孟子思想を人々に伝えようとする作家、秋成の特別な意図が隠されているのではないかと思われる。
『雨月物語』から三十年ほど後の作家の最晩年期に書かれた秋成のもう一つの短篇小説集である『春雨物語』では、もはや孟子思想は積極的には表わされていない。しかし、断片的な語彙は散発的に引用されており、孟子を聯想させる間接的な影響は依然としてかなりの部分に残っている。
以下、秋成作品集での孟子思想の影響を具體的に調査してみると、まず第一に、「白峰」の場合、孟子思想は作品の前半部である西行と崇徳院との王道論争に表われている。ここで崇徳院は孟子の革命理論を援用して、自分が起こした保元の乱の正当性を主張し、これに対して西行は『孟子』という書名と共に孟子の革命理論の要旨を崇徳院に伝える。また、これと関連づけて孟子不到来沈没設を紹介している。これらの内容から見て、「白峰」の王道論争における西行と崇徳院との論戦は、まさに孟子思想を基底にしてなされているといっても過言ではないであろう。
「白峰」におけるこのような孟子思想の表面化は、この作品が『雨月物語』の第一話であるという事実からしても意味深いところであると思われる。これはまさに、この作品集が著作当時の秋成の孟子思想への多大な関心を示す一面であると考えられるからである。しかし、従来の研究では孟子思想は秋成の主要思想としては評価されていない。然も、従来の「白峰」の研究に見られる孟子についての言及は<秋成の孟子への批判>というように、否定的視覚で断片的になされてきたといえる。
それは、崇徳院が援用した革命理論を西行の引用している孟子の革命理論、すなわち、孟子の本意を示すそれと同一視したり、あるいは、西行の紹介した孟子不到來沈沒設の內容を国学的立場での秋成思想として捉えた結果であると言える。
まず、崇徳院が援用した革命理論は、もはや受容過程で変質してしまった孟子の本意が失われたものと考えなければならない。それに、名実共に王道論争の中心軸になっている<王道>こそが、孟子政治思想の核心であり、また、孟子の革命理論はその<王道>を根幹とする、まさに王道と不可分の関係にある。
概して「白峰」の王道論争には, 孟子の革命思想を考慮せずしては解読し難いいくつかの要因が存在する。たとえば、自らの元、主君である崇徳院に対する西行の強い批判的な言辞はその代表的な例であろう。王道論争の冒頭で保元の乱の動機を問い詰めるきびしい詰問は然ることながら、王道論争の末尾にみられる断罪性の叱責にいたるまで、崇徳院に対する西行の言葉遣いは実に強烈極まりない。しかし、このような西行の言葉遣いへの疑問も孟子の革命理論が意味する真の<君>を反芻するとき容易に理解することができる。この革命理論によると、仁義を無視した暴君はもはや主君の資格を失った「一介の匹夫」にすぎないからである。崇徳院こそ保元の乱の主犯であるし、怨霊と成り果てた今となっては大魔王として世の中のあらゆる戦乱を主導しているという事実からして、彼はまさに孟子の革命理論の<仁を賊み義を賊む、一夫>、そのものなのでであろう。
要するに、「白峰」で、西行が王道論争の論拠とした孟子の革命理論こそ、作者秋成の肯定的な見地の下に意図的に浮き彫りにされた、名実共に「白峰」の主要思想であると言えるのではないだろうか。
第二に、「貧福論」には、孟子の恒産設(生業重視思想)が作品の主要部分である黄金精霊の第一論議に引用されている点が興味深い。また、ここでの<百姓>は<おたから>と読まれていて、注目すべき部分だと思われる。なぜなら、これは「貧福論」の数個所で<たから>と表現される<黄金>との関連が推論できるからである。
およそ「貧福論」に頻出する黄金は表面的意味だけでは解読できない場合がある。例えば、作品の冒頭から中盤にいたるまでの黄金を讃美するかのような発言、特に <かかる亂世の武将には棠谿墨陽の劔よりももっと大事なものが黄金>というような武士としての岡左内の黄金尊重発言は、物質を軽視する当時の武士の風潮を考えたとき、疑問を抱かせる不自然な部分である。
しかし、このような疑問も孟子の引用にみられる<百姓>=<おたから>という訓読を活用すると、簡単に解決できる。例えば、<百姓>=<おたから>、<黄金>=<たから>という二つの訓読から、<黄金>の暗示的要所としての<百姓>の意味が導き出せるからである。
つまり、岡左内の黄金尊重思想は百姓尊重思想に置き換えることが可能であり、さらに、上記での亂世の武将に対する黄金尊重発言には、亂世の君主に<百姓>を強調する『孟子』の王道政治思想が表明されていると言える。
また、もう一つ、「貧福論」で解読し難い<八字の句>、「尭蓂日杲 百姓帰家」に見られる<家>の意味も、孟子の生業重視の文句を糸口としてとらえることができるだろう。すなわち、ここでの<生業>という語彙がそれである。「貧福論」にはこの<生業>を意味する多様な漢字語の表現が<なりわひ>という訓読で数ヶ所で発見できる。これによって、秋成が本編の結晶のような<八字の句>にも、この語彙を暗示的要素として用いた可能性が考えられる。
そこで、『類聚名義抄』に見られる、<家>の訓読の一つである<なりわひ>に注目したい。
従来、<八字の句>での<家>は、<家康>あるいは文字どおりの<家>の意味として推論されてきた。従って、<百姓歸家>への解釋も、<百姓が家康に帰依する>、あるいは<百姓が家に帰る>と解釈推論されてきた。しかし、「貧福論」に引用された孟子の生業重視思想に注目することによって、<家>は<なりわひ>、つまり、<生業>ととらえることができると思われる。さらに、<百姓帰家>も、<百姓が自分の生業(なりわひ)へもどる>という、もうひとつの新しい解釈をすることができる。この場合、「民もまた戦国の民なれば、鋤を釈て矛に易、農事をこととせず、」という岡左内の発言とも呼応しているという点で、<戦場から生業への復帰>を意味しているとも考察できると思われる。
このように、「貧福論」に引用されている、孟子の生業重視思想は, <黄金>と<八字句>の真義を解読する糸口的役割を成す一方、それ自体、「貧福論」の主要主題としての保民意識を代表していると言っても過言ではない。
一方, 『春雨物語』の收錄作品を調べてみると、三十年ほど後のこの時期の作品には『雨月物語』に表現されたような孟子思想の直接的な引用はもう見られない。しかし、多くの作品の基底にはやはり孟子思想が根深く流れている。
例えば、「捨石丸」の場合、登場人物の幸不幸、公権力の介入による無実の事件の発生などの多様な設定は、広い視野でみれば、孟子の百姓重視思想を根底としていると言えるだろう。さらに「捨石丸」の冒頭の古代万葉歌である「みちのく山にこがね花さく」も同じ流れでその意味が考察できる。これに関しては、秋成の万葉集研究書である『金砂』(巻9)を参考にしたい。同書には上記の万葉歌群(長歌及び「捨石丸」に引用されている反歌一首)が載せてあり、これについての秋成の註釈が時代的観点で書かれている。注目すべきところは、秋成がここで、陸奥で産出された黄金を毘廬舎那仏の建立に奉納した聖武天皇に対して辛辣に批判したという事実である。然も、その批判は<民の課役に苦しむ事>、つまり百姓への憐憫に繋っているところが興味深い。これこそ、「白峰」もしくは「貧福論」での孟子思想を回想させる一面であると思われる。
要するに、「捨石丸」の冒頭の古代万葉歌には、その裏面に上記のような『金砂』(巻9)での秋成の批判的言辞、つまり孟子的要素が潜んでいると解釈できる。
以上、孟子思想は秋成作品集の作品に直接・間接的に影響を及ぼしている。特に『雨月物語』では、巻頭・大尾の両作品に見られる孟子思想の影響力からして、秋成が少なくともこの時期に孟子思想に深い感心と研究を見せており、その視覚も肯定的であったと言え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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