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법 위반의 중대성에 따른 주권면제 부인 가능성
저자
발행사항
서울 : 서울대학교 대학원, 2017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법학과 2017. 8
발행연도
2017
작성언어
한국어
주제어
DDC
340 판사항(22)
발행국(도시)
서울
기타서명
Possibility to deny sovereign immunity with respect to serious breach of international law
형태사항
viii, 294 p. : 삽화 ; 26 cm
일반주기명
참고문헌 수록
DOI식별코드
소장기관
근대 국제법 체제 하에서 등장하게 된 주권 국가들은 상호 평등의 전제 아래 국제법의 주체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일국이 타국의 재판관할권에 복속하지 아니한다는 취지의 주권면제는 그러한 체제를 반영하는 산물이었다. 주권면제의 실행에 있어서는 20세기 전반기에 일국의 ‘주권적 공법행위(acta jure imperii)’에 대해서만 적용을 국한하는 변천이 이루어졌으며, 이는 관습국제법으로서 거듭 확인되었던 사항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국내외 주요 법원들이 현대 국제법의 질적, 양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종전의 주권면제의 틀을 고수하고 있다는 사실에 문제점이 존재함도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전후의 국제 질서는 근대 국제법이 예정하던 모습으로부터 근본적으로 변화하였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제법 주체의 다양화, 강행규범(jus cogens)의 태동, 그리고 일련의 전범재판은 2002년의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창설로까지 발전하였으며, 그러한 흐름은 국가책임과 관련 제재의 실효성이 부단히 확대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이는 제한적 주권면제의 실행 역시 변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일련의 국내외 법원이 최근까지 지지하고 있는 제한적 주권면제이론은 국제법의 새로운 흐름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주권적 공법행위’ 내에 통상의 국가 행위나 국제법의 중대한 위반행위가 모두 포섭되는 등, 기존의 개념으로는 국가 행위들 간의 질적, 양적 차이를 적절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것이다.
제한적 주권면제이론은 기존 실행의 조정 필요성을 인정하는 전제에서 주권면제에 있어 제한이 부과되는 경우를 명확히 하고 예측 가능성을 관철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최근의 일련의 국내외 법원의 결정들은 제한적 주권면제 실행의 예측가능성을 과도하게 고수함으로써, 현대 국제법의 발전 방향과 유리된 법적 안정성이라는 명분 하에 법적 공백 지대를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즉, 2012년 ‘독일 대 이탈리아 사건’이나 ‘Al-Adsani 사건’ 등의 법정 의견에서 드러나듯이 주권면제는 역설적이게도 국제법상 중대한 불법행위가 문제되는 경우에 피해자 개인의 사법에의 접근과 궁극적으로는 인권 보호의 가능성을 봉쇄하는 장애물로 작용하여 오고 있다. 그렇다면 국내외 법원에서의 논점을 파악하고서 주권면제가 어느 정도로 조정되어야 하는지 정리되어야 한다.
주권면제를 고수하는 국내외 법원의 실행이 우세함에도 불구하고 유의미한 반대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판결들을 정리하면 분명 일맥상통하는 특성이 드러남은 주목할 만 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2012년 ‘독일 대 이탈리아 사건’과 관련하여 2014년에 이탈리아 헌법재판소는 앞의 국제 판결을 이행하기 위한 이탈리아 국내 입법과 후속 실행에 대하여 위헌 결정을 함으로써 제동을 걸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 하다. 나치 독일이 자행한 강제노동에 기인하는 손해를 구제받으려는 자국민 피해자의 재판청구권은 이탈리아 헌법 질서 상의 불가양적 근본 가치에 해당됨을 그 이유로 하였는데, 이는 절차적 성격의 주권면제의 명분 하에 강행규범 위배에 기인하는 손해배상청구권이 몰각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 외에도 나치의 약탈문화재 반환 문제, 국가 기관에 의한 고문, 테러행위등과 관련된 국내 판결에서는 주권면제가 부인되는 취지의 결정이 단속적으로 내려지고 있다.
침해된 개인의 권리와 존엄의 회복, 그리고 이를 담보하기 위한 재판청구권의 보호는 현대 국제법 하에서 필수불가결하다. 특히, 개인의 ‘사법에의 접근’을 통한 재판상 구제가능성은 소속 국가의 전후 처리 여부와는 별개로 피해자 개인으로서는 스스로의 존재 이유와도 직결되는 최후 수단이다. 따라서 이는 주권면제 제한 가능성의 논의와 불가분의 관계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권면제에 대한 합리적 재조정을 통하여만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이 가능성은 종전 후 70년이 경과하도록 피해자 개인의 전후 배상 문제가 완결되지 아니한 체로 남아 있는 한국에 있어서도 강행규범 위반의 피해자에게 권리 구제의 마지막 보루를 제공하여 줄 것이다. 요컨대, 주권면제이론과 그 실행은 현대 국제법에서 재정립되는 인권 친화적 실행에 따라 부단히 제한, 조정되어야 하는 것이며, 더욱이 국제법의 중대한 위반의 경우에는 국가에 의한 사실상의 면죄부로 남용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부인이 요망되는 시점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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