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등 국사교육의 내용 변천에 대한 연구 : 국사과 독립 시기를 중심으로
저자
발행사항
서울 : 고려대학교 대학원 , 2006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박사) -- 고려대학교 대학원 , 교과교육학과 역사교육전공 , 2006.2
발행연도
2006
작성언어
한국어
발행국(도시)
서울
형태사항
vi, 257 p. ; 26 cm.
일반주기명
지도교수: 김택민
부록수록
참고문헌 : p. 243-257
소장기관
교과교육학을 보는 입장은 크게 ‘교육 방법 중심적 교과교육학’과 ‘교육 내용 중심적 교과교육학’으로 나뉜다. ‘교육 내용 중심적 교과교육학’이 ‘교육 방법 중심적 교과교육학’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교육의 방법을 내용과 분리하여 보는 것이 아니라 내용을 바탕으로 방법적 원리의 개발이 이루어진다고 보는 점이며, ‘교육 내용 중심적 교과교육학’은 교과영역별 인지이론(domain-specific cognition theory)에 의해서도 뒷받침되고 있다. 이러한 ‘교육 내용 중심적 교과교육학’의 입장에 의하면, 역사교육학에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라는 것은 교과의 핵심적 부분이며, 이에 대해서는 끊임없는 고민과 심도 있는 논의가 계속되어야 한다.
또한 역사 학계와 역사교육 학계가 궁극적으로 역사과 독립을 지향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어떤 역사를, 왜 가르쳐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기도 하다. 그동안 한국사 학계와 역사교육 학계에서는 교육부에 역사교육의 강화를 주장하며 역사과의 독립을 요구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러한 요구는 계속될 전망이다. 그러나 역사과 독립 요구가 중국과 일본의 되풀이되는 역사 왜곡과 그 뒤로 이어지는 대국민 호소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음을 다시 확인한 현재의 입장에서는 역사과 독립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학계 내부에서의 논의를 통해 역사교과의 전체적인 목표와 내용 체계를 마련해야 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본고에서 국사교육의 내용 변천을 검토하고자 한 것은 이와 같이 ‘교육 내용 중심적 교과교육학’의 입장에 대한 동의와 함께 현재의 당면 상황과 관련되었다. 역사교육의 내용에 대한 현실적 문제 인식과 향후 해결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국사와 세계사 과목에서 “지금까지 무엇을, 왜 가르쳐 왔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며, 국사의 경우에는 독립 교과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검토가 더 절실하였다.
더욱이 지금까지도 국사과 독립 시기 국사교육의 내용과 그 변천에 대한 전체적인 분석과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소극적으로는 종래의 부정적 평가가 여전히 사회과 통합론자들의 역사과 독립 반대 근거로 제공되고 있으며, 근본적으로는 향후 역사교육 내용 논의에 도움이 될만한 반성과 교훈을 이끌어 내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은 필자로 하여금 특히 ‘국사과 독립 시기를 중심으로 한 국사교육의 내용 변천’을 연구 주제로 택하게 만들었다.
해방 이후 국사교육의 내용 변천을 다룬 기존의 연구는 많이 산출되었지만, 큰 흐름을 보면 사회과(또는 국사과)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金興洙의 저서(1992), 국사 교과서를 중심으로 한 金漢宗의 연구(1997)로 갈래지울 수 있다. 이 연구들은 해방 이후 각 교육과정기 마다 내용 선정과 조직의 원리 및 단계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와 고려를 위하여 노력하였으며, 또한 해방 이후의 현대사, 교육사, 사학사, 세계사 교육 변천사 등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후학들은 물론 필자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우선, 독립 교과 시기에 해당하는 3, 4, 5차의 각 교육과정기별로 중·고 국사과 교육과정에서 제시된 내용 방향을 이해하기 위해 국가의 교육 방향과 국사교육의 편제, 한국사 학계의 연구 동향, 역사교육 학계의 국사교육 내용을 둘러싼 논의 및 연구들을 먼저 살피고, 이어서 중·고 국사과 교육과정에서 제시된 내용의 기본 방향과 단원 구성을 구체적으로 분석한 다음, 국사과 교육과정에서 제시된 내용 방향이 국사 교과서에서는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검토하였다. 또한 내용 조직에서 학습자의 수준을 고려하는 것과 관련된 중·고의 계열화 문제도 함께 살피고자 하였다. 아울러 국사과가 독립되었던 3, 4, 5차 교육과정기 동안 국사교육의 내용 선정과 조직에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를 살피고, 변화가 있었다면 그것이 왜 나타났으며,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는지도 고찰하였다.
본고에서 검토한 내용을 각 교육과정기 국사교육 내용의 특성과 그 변천의 의미를 중심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1974년부터 1982년까지 전개된 3차 교육과정기 중등 국사교육의 내용에는 몇 가지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우선, 해방 이후 2차 교육과정기까지 국사교육은 사회과에 통합된 가운데 세계사교육 보다 비중이 약했었지만, 2차 교육과정 부분 개정(1979년)을 전환점으로 삼아 3차 교육과정 때에는 국사과가 독립되면서 국사교육의 위상이 매우 높아졌다는 점이다.
국사과의 독립에는 1960년대 이후 사회 전반적으로 민족주의가 고양되는 가운데 박정희 정권이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더 나아가 10월 유신 체제의 역사적 정당성과 정통성을 확립시키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민족 주체성을 강조하는 국사교육 강화 방침을 제시한 것이 하나의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또 다른 배경은 1960년대 이후 식민사관을 극복하고 민족사관에 입각하여 새로운 韓國史像을 제시하였던 것을 국사교육으로까지 연결시키고 한 한국사와 역사교육 학계의 노력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3차 중·고 국사과 교육과정에서는 민족주체성과 민족사관의 확립이라는 교육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교육 내용에 민족사관에 입각한 한국사 학계의 새로운 연구 성과를 많이 도입하도록 하면서도 전근대사 부분에서는 국수주의·배타주의적인 ‘국난 극복’의 민족정신이 지속적으로 강조되고, 현대사 부분에서는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유신체제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강조하는 목표와 내용이 혼재되어 있었던 것도 이 시기의 특징이었다.
이와 같은 특징은 국사과의 독립으로 세계사교육과의 연계가 약화되어 국사의 세계사적 이해가 어렵게 된 상황에다가, 당시 한국사 학계에서 민족사학을 내세우기는 했지만, 모든 시기와 분야에서 과학적 체계화를 지향한 것은 아니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한편으로 이런 특징에서는 냉전·반공체제와 독재체제로 인해 한국사 학계에서는 식민지시대 민족해방운동사와 현대사 연구가 거의 공백 상태를 이룬 가운데 몇몇 정치학 전공자들에 의해 현대사 교육이 좌우되었음을 엿볼 수 있었고, 국사과를 독립시킨 정부의 의도가 드러나기도 하였다.
정부의 의도는 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강행한 것에서도 나타났지만, 한편 국정제는 역사교육의 특성을 외면 내지 무시한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의 집필자와 연결됨으로써 민족사관 교육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선후기사 부분이 예전처럼 식민사관에 입각한 서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문제를 초래하기도 하였다.
아울러 3차 교육과정기 국사교육의 내용 선정과 조직은 대체로 사회적 측면과 학문적 측면에만 초점을 맞추고 학습자에 대한 고려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특성도 있다. 역사교육 학계에서 교육 목표로서 지속적으로 강조했던 역사적 사고력은 민족주체성의 확립이라는 과도한 국가·사회적 요구에 의해 거의 무시되었다. 한편 국사과 교육과정에서 중·고 교육 내용의 계열화를 위해 제시한 ‘중학교는 정치사 중심의 통사, 고등학교는 문화사 중심의 통사로 내용 조직하기’는 여전히 한국사 학계의 연구 경향이 강하게 반영되었지만, 아직 역사교육 학계에서는 이를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이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전반적으로 민족사관 교육을 지향했던 3차 교육과정기 국사교육의 특징은 이후 4차 교육과정기로 이어지면서 긍정적, 부정적 측면에서 변화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1982년부터 시작되어 1988년(고등학교는 1989년)까지 전개된 4차 교육과정기 중등 국사교육의 내용은 이전 3차 교육과정기와 비교해 볼 때 대체로 큰 흐름에서는 공통된 점을 보이는 가운데에도 몇 가지 점에서 변화가 나타났다.
그 중의 하나는, 이 때에도 국민 정신 교육을 강화한다는 국가의 교육 방향에 따라서 국사과의 독립이 계속 유지되면서 민족 주체성의 확립과 민족사관의 정립이라는 교육 목표가 계속 강조되는 가운데에서도, 역사교육 학계의 학문적 발전에 따라서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다는 점이다. 그것은 역사적 사고력의 함양이라는 교육 목표를 점차 내세우며 국사과 교육과정에서 그것을 관철시키기 시작하고, 결과적으로 계열화에 실패하기는 했지만, 중·고 내용 계열화를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역사의식 발달과 흥미를 고려하기 시작하였다는 긍정적인 측면이었다.
또 다른 변화는 4차 국사과 교육과정에서도 민족사관 교육을 지향하고 있지만, 그 비중은 이전 시기에 비해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이 때 보다 중요한 교육 내용으로 부각된 것은 ‘시련과 극복’ 중심의 근현대사 교육의 강화였다. 국사과 교육과정에서는 이것을 강조하며 현대 사회의 국내외적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라고 표방하였지만, 실제로 4차 국사 교과서의 근현대사 부분에서는 유신체제 이후 박정희 정권이 시도하고 강화했던 틀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한 결과 4차 국사 교과서에서는 민족사관 교육의 상징으로서 근대의 기점으로 설정된조선후기사가 조선왕조의 국난극복사로 변질되고, 개화기 이후부터 현대사에 이르기까지는 시련이 초래된 배경과 그 내용에 대한 파악과 이해, 극복의 다양한 주체들과 방법에 대한 이해와는 거리가 먼 채 ‘외세(북한 포함)의 침략으로 인해 초래된 시련’과 ‘지배층이 주도하는 극복’만을 강조함으로써 반공 체제와 독재 체제의 정당성만을 더욱 강화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체제순응적인 국사교육은 이 시기에 절정에 달하였고, 이후 5차 교육과정기에서는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들이 다양하게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1989년(고등학교는 1990년)부터 시작되어 1994년(1995년)까지 전개된 5차 교육과정에서도 국사교육의 내용에는 이전 시기와 유사한 측면이 있었다. 국사교육심의회에 의해 마련된 「국사 교과서 편찬 준거안」, 그 중에서도 특히 고조선사와 근현대사 부분에서 알 수 있듯이, 민족사관 교육을 지향하면서도 국수주의적 측면과 국가 체제와 정권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교육 내용은 지속되었다.
그러나 5차 교육과정기에는 국사교육의 내용에 매우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우선, 이 시기 국사과 교육과정에서는 종래 국사교육의 목표로 강조되었던 민족 주체성 못지않게 역사적 사고력의 함양이라는 목표가 중시되고, 이를 위한 내용 선정이 이루어지면서 국사 교과서에서는 탐구 학습 자료가 대폭 보강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5차 교육과정기 국사교육의 변화는 그동안 역사적 사고력을 교육 목표로 강조하면서도 국가·사회에서 요청하는 민족주체성이라는 목표와의 조화를 주장하고, 역사적 사고력에 대한 개념, 그 가치를 연구하면서 함양 방법까지도 모색해 온 역사교육 학계의 꾸준한 노력이 반영된 것이었고, 역사교육 학계의 노력은 내용 계열화의 새로운 방안 마련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한편 역사적 사고력이 이 때 국사교육 목표로 부상될 수 있었던 것은 1980년대 이후 나타난 사회 민주화, 고도 정보화라는 시대적 변화에 맞추어 5차 교육과정 총론에서 제시한 ‘도덕성 교육, 창조성 교육’과 일치했기 때문이기도 하였는데, 이로써 이제 국사 교육은 민족사관 교육 뿐 아니라 민주 교육까지도 지향하고 있음을 분명히 제시하게 되었다.
5차 교육과정기 국사교육 내용에 나타난 또 다른 변화는 당시까지 전개되었던 국사교육 내용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이 제기되고, 그 비판이 점차 수용되기 시작하였다는 점이었다. 민주화로 상징되는 당시의 커다란 정치·사회적 변화 속에서 진보적인 한국사 연구자와 전국역사모임의 역사 교사들은 국정 국사 교과서가 정치권력의 이데올로기적 통제기구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비판하며 국정제의 철폐와 ‘민중의식에 바탕을 둔 민족사관’ 교육을 주장하였다. 아울러 동·서양사 연구자들은 민족사관 교육의 배타적인 성격을 비판하기도 하였다.
물론 국정제의 철폐 주장은 민주화를 열망하는 진보적인 흐름을 북한 공산주의자와 동일시하던 당시 지배세력의 비민주적·냉전주의적 인식으로 인해서 수용되지 않았다. 또한 한국사 학계의 민족사학이 지니는 국수주의·배타주의적 측면에다가 3차 교육과정 이후 국사과만이 독립됨으로써 초래된 세계사교육과의 연계성 약화로 인해서 민족사관 교육의 배타성 내지 폐쇄성 문제도 쉽게 해결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5차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서는 이데올로기적 편향성에 대한 비판을 수용하여 조선후기를 ‘민중 중심의 민족사관’에 입각하여 서술하고, 식민지시대 민족해방운동사에서는 사회주의 계열의 서술이 시작되었다. 5차 교육과정기 국사교육의 이러한 변화는 이후 사회 민주화 추세의 가속화, 진보사학의 활성화, 포스트모더니즘에 입각한 새로운 역사학과 역사교육의 수용 논의 등과 같은 커다란 흐름과 맞물리면서, 보다 구체적으로는 역사적 사고력에 대한 보다 정밀한 개념이 정립되고, ‘민족’을 강조해 온 역사교육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과 대안 마련을 위한 논의로 이어짐으로써 국사교육의 내용이 민족, 민주, 통일을 지향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이와 같이 본고에서 살펴본 국사과 독립 시기 국사교육의 내용과 그 변천을 바탕으로 삼아 향후 역사교육의 내용 논의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점들을 이끌어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내용 선정에서 고려해야 할 사회적 측면에 해당되는 것으로, 국가의 교육 방향과 국사교육의 목표와 관련된 부분이다. 3차 교육과정을 앞두고 한국사와 역사교육 학계에서 국사과 독립을 추진한 목적은 당시 국가의 교육 방향인 민족 주체성의 확립 내지 ‘국적 있는 교육’에 부응한 민족사관 교육이었다. 그리고 5차 교육과정에 이르러서는 정치·사회적 변동을 반영한 국가의 교육 방향이 ‘도덕성, 자주성, 창조성 교육’을 제시하는 가운데 국사교육에서도 역사교육 자체에서 끌어낸 역사적 사고력이라는 교육 목표를 통해 민주 사회와 고도 정보화 사회에 걸맞은 ‘도덕성과 창조성 교육’에 부응하게 됨으로써 종래의 민족사관 교육은 물론 새로이 민주 교육까지도 지향하게 되었다.
이러한 검토 결과에 의하면, 6차 교육과정에서 사회과 통합논자들이 ‘민주 교육’을 내세우며 국사과를 사회과로 재통합한 것은 역사교육 학계의 부단한 노력을 무시하거나 외면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국사과 독립 시기의 국사교육에 대한 학계 안팎의 부정적 평가가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한국 학계에서는 물론 역사교육 학계 내에서조차도 역사적 사고력과 민주 교육과의 관련성을 추구해 온 노력을 제대로 드러내거나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회과 통합론자들의 부당한 논리에 대해서도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해왔다.
따라서 역사과 독립을 지향하는 입장에서는 국사교육에서 지향해 왔던 역사적 사고력과 민주 교육과의 관련성을 앞으로 더욱 강조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런 점에서 보면, 현재 역사적 사고력을 역사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기능과 탐구라는 목표로만 한정시켜 가치중립적인 것으로 평가하고 있는 역사교육 학계의 연구 동향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된다.
둘째, 내용 선정에서 해당 교과의 내용을 제공해 주는 학문적 측면으로, 당연히 한국사 학계의 연구 동향이 그 중심을 차지한다. 3차 교육과정기 국사교육의 내용이 그 이전 시기와 가장 큰 차이가 났던 것은 한국사 학계의 민족사관에 입각한 연구 성과를 대폭 수용하여 종래의 식민사관 교육을 극복하고자 하였다는 점이다. 또한 5차 교육과정기에 이르면 사회의 민주화 추세와 맞물린 학계의 진보적인 경향으로 민중사학이 대두되면서 ‘민중을 중심으로 한 민족사관’이 제시되고, 이를 반영하려는 노력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60년부터 한국사 학계에 민족사학이 대두하고 1970년대 경에 이르러 식민사학이 거의 극복되기는 하였지만, 식민사학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한국사상이 고대사에서부터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일관성 있게 구축되지 못하였으며, 한국사의 모든 시기와 분야에서 국사를 세계사적 차원에서 이해하려는 과학적 체계화가 실현되지 못하였다. 이러한 현실은 5차 교육과정기 국사교육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어 전근대사 부분에서는 국수주의·배타주의적인 측면이 계속 나타나고, 근현대사 부분에서도 ‘시련과 극복’을 내세워 국가 체제의 정통성과 현 정권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결국, 향후 국사교육에서 체계적이고 일관성 있는 교육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한국사 학계에서 새로운 한국사상을 보다 확실히 구체적으로 체계화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지금까지와 달리 향후 국사교육에서는 국사를 세계사적 차원에서 객관적·비판적으로 이해시켜 민족의 정체성을 보다 분명히 인식시킬 수 있도록 세계사교육과의 긴밀한 유대가 필요하기도 하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역사 학계와 역사교육 학계에서 국사와 세계사를 통합한 ‘역사과’의 독립을 주장하고 있는 것은 매우 올바른 방향 설정이었다. 다만, 역사학계 자체가 국사, 동양사, 서양사로 지나치게 분화·격리되어 있는 현실 속에서 각각의 연구 성과들이 국사교육, 세계사교육에 상호 교차적으로 제대로 수용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 그러나 역사교육에서의 절실한 요구는 역사학 연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며, 그러한 면에서는 한국사 교육을 위해 필요한 사항들을 한국사 학계에 요구했던 尹世哲의 노력(1997, 「韓國史硏究와 韓國史敎育論」, 󰡔한국사 인식과 역사이론󰡕, 지식산업사)은 이후에도 계승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내용 선정에서의 학습자적 측면이다. 이는 학습자의 역사의식과 흥미를 고려하여 내용을 선정하는 부분이며, 이것은 학습자의 수준에 맞추어 내용을 조직하는 계열화와도 관련된다. 내용의 선정과 조직에서 학습자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은 1955년 역사교육연구회가 창립된 이후 계속 주장되었다.
그러나 학습자를 고려하여 내용을 선정하고 조직한다는 것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학생들의 역사의식과 흥미’라는 매우 추상적이고 계량화하기 어려운 것들이 전제로 놓여 있었기 때문에 학습자에 대한 고려는 역사교육학의 학문적 발달과 함께 점차 개선되어 왔다. 4차 교육과정 때 학생들의 역사의식과 흥미에 입각한 계열화 방향이 검토되기 시작되고, 5차 교육과정 때에 이르러 내용 조직의 방법을 바꾸는 새로운 계열화의 방안을 제시된 것은 모두 그러한 변화 발전의 모습이었다. 사실 이러한 학습자적 측면은 역사교육에서 역사적 사고력을 강조해 온 과정과도 일치되었기 때문에 향후 역사교육학의 발전과 함께 더욱 진전될 것으로 보인다.
넷째, 국사과 교육과정과 국사 교과서와의 관련성이다. 우선, 국사과 교육과정에서는 내용 선정과 조직의 여러 측면과 원리를 고려하여 내용 방향과 단원 구성이 제시되고, 국사 교과서 집필 단계에서는 국사과 교육과정의 교육 목표와 교육 내용을 바탕으로 내용을 보다 상세화·구체화시킨다. 따라서 어떤 특정한 교육과정 시기 국사교육에서 “왜, 무엇을 가르키고자 했는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교육과정과 교과서에 대한 검토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국사교육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는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이것은 바로 본고의 한계와도 이어지는 부분인데, 국사과 교육과정과 국사 교과서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고 집필되어진 결과물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본고에서도 처음부터 이러한 부분을 의식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국사과 교육과정 개발의 주체 부분에서는 3, 4, 5차 교육과정기에 각각의 교육과정 개발에 대해 입장을 표명한 문교부의 국사 담당 편수관들의 글들을 자료로써 활용하였을 뿐, 그 나머지 한국사 연구자, 역사교육 연구자, 역사 교사 등 그 참여자들을 구체적으로 확인하지 못하였다. 또한 국사 교과서의 집필자에 대해서도 집필자 스스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나타냈거나 교과서가 논란이 되어 실명이 거의 드러났던 경우에 한해서만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을 뿐 집필자 전체의 역사관, 역사교육관에 대해서는 검토하지 못하였다.
또한 본고에서는 국사과 독립 시기의 국사교육이 실제의 교육 현장에서는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 까지는 검토하지 못함으로써 대체로 국가에서, 그리고 한국사와 역사교육 학계에서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무엇을, 왜 가르치고자 했는지에 대한 큰 방향과 흐름을 살펴보는 것에서 그쳤다. 이러한 한계들은 향후 보완할 과제로 삼고자 한다.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 주요 개정내역 | 변경 사유 |
|---|---|
| · 수탁업체 콘소시엄 기관명 및 위탁기간 명시 | · 제6조(개인정보 처리업무의 위탁) 구체화 |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은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제1조(개인정보의 처리 목적)
제2조(개인정보의 처리 및 보유 기간)
제3조(처리하는 개인정보의 항목)
제4조(개인정보파일 등록 현황)
제5조(개인정보의 제3자 제공)
제6조(개인정보 처리업무의 위탁)
제7조(개인정보의 파기 절차 및 방법)
제8조(정보주체와 법정대리인의 권리·의무 및 그 행사 방법)
제9조(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제10조(개인정보 자동 수집 장치의 설치·운영 및 거부)
제11조(개인정보 보호책임자)
제12조(개인정보의 열람청구를 접수·처리하는 부서)
제13조(정보주체의 권익침해에 대한 구제방법)
제14조(추가적 이용·제공 판단기준)
제15조(개인정보 처리방침의 변경)
제1조(개인정보의 처리 목적)
제2조(개인정보의 처리 및 보유 기간)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
제3조(처리하는 개인정보의 항목)
제4조(개인정보파일 등록 현황)
개인정보파일 검색(privacy.go.kr)| 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정보추제 동의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
제5조(개인정보의 제3자 제공)
제6조(개인정보 처리업무의 위탁)
제7조(개인정보의 파기 절차 및 방법)
제8조(정보주체와 법정대리인의 권리·의무 및 그 행사 방법)
제9조(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제10조(개인정보 자동 수집 장치의 설치·운영 및 거부)
제11조(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안재호 |
- 이메일 : jinuk@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58 - 팩스번호 : 053-714-0195 |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송진욱 |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교육학술데이터본부 정광훈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제12조(개인정보의 열람청구를 접수·처리하는 부서)
제13조(정보주체의 권익침해에 대한 구제방법)
제14조(추가적인 이용ㆍ제공 판단기준)
제15조(개인정보 처리방침의 변경)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