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世紀‘甕器 敎友村’ 硏究 = A Study on Onggi-producing Catholic Brotherhood Communities in the 19th century
저자
발행사항
서울: 단국대학교, 2006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석사) -- 檀國大學校 大學院 , 史學科 韓國史 專攻 , 2007. 2
발행연도
2006
작성언어
한국어
주제어
DDC
951.059 판사항(20)
발행국(도시)
서울
기타서명
(A) Study on Onggi-producing Catholic Brotherhood Communities in the 19th century
형태사항
iv,56장: 삽도; 26 cm.
일반주기명
지도교수:문철영
참고문헌: 49-54장
소장기관
18세기 후반 지식인들의 학문적 호기심에서 시작된 한국 천주교는 우리의 문화적 風土에 맞게 수용·발전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천주교 布敎의 역사는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천주교는 기존의 질서와 전통, 특히 性理學的 사회기반을 威脅한다는 非難을 받으며 모진 迫害를 받게 되었다. 이 같은 어려움 속에서 그 종교적 命脈을 繼承해 나간 것은 다름 아닌 천주교 신자들이었다. 처형과 박해로 點綴된 이 고난의 시기는 이들의 生存에 커다란 위협이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그 종교적 結束力을 강화시켜주었다. 즉, 박해를 피해 떠돌던 과정에서 종교적 생활 공동체인 교우촌을 형성해 나간 것이다. 이 곳의 생활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지속적인 迫害와 천주교인 索出의 威脅 때문에 그들의 신앙은 비밀리에 유지될 수밖에 없었고, 생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경제적 문제 역시 그들에게는 커다란 고민거리였다.
이러한 신앙적·생존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된 수단이 바로 교우촌에서의 甕器 製作이었다. 천주교 신자들은 박해의 눈을 피하기 위해 民間信仰적 요소이자 祭壇의 기능을 하였던 옹기를 이용하였다. 그들은 옹기의 문양을 이용해 天主를 象徵하는 十字紋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였다. 이는 信仰의 對象을 옹기에서 천주로 전환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신자들은 옹기를 하나의 聖物처럼 여겨 그들의 신앙을 민간신앙으로 僞裝했다. 신자들은 옹기에 聖物을 감추고 각 마을을 돌며 傳敎活動을 하고, 연락체계를 갖췄다. 한편, 옹기 판매에서 얻어지는 수익은 그들의 생계를 위해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결국 천주교 신자들은 옹기 제작을 통해 布敎와 信仰, 그리고 생계적 문제까지 해결하고자 했던 것이다. 또한 옹기 제작과 관련한 교우촌에서의 생활은 신자들에게 신앙공동체로서 공동생산과 공동분배의 평등사상을 실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신자들에게 이곳은 경제활동과 신앙생활을 보장해 주는 이상 국가였던 셈이다.
지금까지 看過했던 옹기 교우촌의 실제에 대한 연구가 처음 시도된 만큼 미흡한 점이 많으리라 본다. 옹기 교우촌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규명은 차후의 과제로 돌리는 바이다.
Korean Catholicism, which was begun by intellectuals out of academic curiosity in the 18th century, has been accommodated and developed in line with Korean cultural climate. The history of Catholicism in Korea, however, was not all smooth sailing. With accusations of threatening the existing social order, tradition and especially social foundations built by Sung Confucianism, Catholicism was ruthlessly persecuted. In the hardship, it was Catholics who kept catholic existence and presence alive in Korea. Although those days were mainly marked by persecution and oppression that were threatening their survival, their religious unity was also strengthened at the same time. In the course of avoiding persecution, the catholics built up Catholic Brotherhood Communities, religious life communities. Living in catholic villages, however did not appear tranquil. Because of continuous oppression and fear of being tracked down, their religious faith was inevitably kept in secret. Economic problems were also grave concerns for them.
The measure to settle the religious and economic problems, was producing Onggi in catholic villages. The Roman Catholics in Korea used Onggi, which has functioned as an alter of Korean folk belief, with the purpose to elude persecution. By using various patterns on the surface of Onggi, they expressed crisscross designs which symbolized the Catholic God. Throughout creating various crisscross patterns on Onggi, they represented their strong creed secretly. With sacred objects such as Bibles and Crosses hided in Onggi, they did missionary works and set up a contacting system among the faithful. Profits they made from selling Onggi allowed the believers to earn their livelihoods. In sum, the Catholics produced Onggi as a means of propagation of Christianity and their living. Life in the Catholic Brotherhood Community also provided them with the opportunity to practice ideas of equality - communal production and equal distribution. For them, the community was the ideal society where both economic and religious activities were secured.
It seems that in this paper there is much deficiency in the sense that there has not been sufficient researches on the Onggi-producing Catholic Brotherhood Communities with overlook. So, further studies and researches on this subject are anticipated to be conducted in the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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