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時代 西園雅集圖 硏究 = (A)Study of "Painting of the Elegant Gathering in the Western Garden(西園雅集圖)" in the Choseon Dynasty
저자
발행사항
서울 : 고려대학교 대학원 , 2006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석사) -- 고려대학교 대학원 , 문화재학협동과정 미술사학전공 , 2006.8
발행연도
2006
작성언어
한국어
발행국(도시)
서울
형태사항
v, 189 p. : 삽도 ; 26 cm.
일반주기명
부록수록
지도교수: 변영섭
참고문헌 : p. 133-144
소장기관
西園雅集圖는 北宋의 수도 開封에 위치한 왕선(王詵, 1036-1089)의 정원인 西園에서 소식(蘇軾, 1036-1101)과 이공린(李公麟, 1040-1106), 미불(米芾, 1051-1107) 등 저명한 문사 16명이 함께한 모임을 그린 그림이다. 서원아집의 구성원이었던 이공린은 모임의 장면을 그림으로 그리고, 미불은 그림에 대한 記를 지었다고 전하는데, 이것이 <西園雅集圖>와「西園雅集圖記」이다. 그러나 西園雅集은 北宋代에 실제로 열렸던 모임이 아니라 후대에 재구성되었음이 관련 연구를 통해 밝혀졌고, 그에 따라 이공린이 그린 그림과 미불이 쓴 기록 역시 모임에 참석한 인물들을 칭송하기 위해 후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원아집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크게 다섯 무리로 나뉘어 시와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연주하는 등 고아한 풍류를 즐기는 모습으로 표현되어있다. 이러한 인물의 행위만을 표면적으로 본다면 서원아집도는 단순히 文人雅集의 理想을 반영한 그림으로 이해되기 쉽다. 그러나 서원아집에 참여한 인물들의 관계를 살펴보면 단순한 친목관계가 아니라 소식을 중심으로 한 舊法黨 세력과 직ㆍ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고, 여러 儒學者들 사이에 道士 진경원과 僧侶 원통대사가 포함되어 있어, 유교를 중심으로 불교와 도교를 통합하고자 했던 소식의 사상적 면모가 모임의 성격에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서원아집의 성격은 소식의 사상ㆍ학문이 추앙받던 南宋代에 이르러서 서원아집도가 성립되었던 상황을 예증한다. 따라서 서원아집도는 문인들의 풍류적 모임의 이상을 상징하면서도, 소식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 인맥과 유불도의 통합이라는 그의 사상이 내포된 작품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서원아집도는 성립 이후, 元代를 지나 明代에 크게 유행하게 된다. 특히 명대에는 庭園문화와 詩社문화가 활성화되고, 강남 지방을 중심으로 소식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구영(仇英, 1494-1561)과 같은 이름난 화가들에 의해 서원아집도가 활발히 제작되었다.
중국의 서원아집도는 17세기 경에 조선에 전해졌다. 조선에서는 그림의 전래 이전에 이미 유입되었던 明末 문학을 통해 ‘서원아집’에 대한 인식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고, 서원아집도는 늦어도 17세기 후반에 연행을 통해 조선에 전래되었다. 서원아집도가 전래된 17세기 후반은 명말 문인문화의 영향으로 정원에서의 모임문화가 성행하였고, 시ㆍ서ㆍ화 일치사상과 풍류에 대한 동경이 사대부들에게 보편화되던 시기였다. 이와 더불어 소식은 성리학을 중심으로 하면서도 다양한 사상을 수용했던 南人들과 개방적인 성향을 지닌 일부 西人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았다. 이러한 시대 상황 속에서 전래된 서원아집도는 18세기 이후에 왕실과 사대부가에서 활발히 감상되었고, 서원아집을 재현한 모임도 급증하였다.
조선후기의 사대부들은 서원아집을 다양하게 인식하고 있었고, 이러한 인식은 정치적인 성향에 따라 차별적인 양상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당시 정치의 중심에 있었던 老論 계열의 인사들은 서원아집을 풍류적인 모임이나 정치적인 모임으로 인식했던 반면에, 정치에서 한발 물러서 있던 南人들은 소식의 詩에 차운하며 그를 적극적으로 따르고자 한 모임으로 서원아집을 인식하였다. 따라서 서원아집을 통해 소식의 애호를 각별하게 드러냈던 南人과 親南人的 성향을 지닌 小北출신에 의해 서원아집도의 제작과 주문이 이루어졌다. 이를 증명하듯 현전하는 가장 이른 시기의 서원아집도는 소식을 좋아하고 다양한 사상을 포용했던 南人 윤두서(尹斗緖, 1668-1715)에 의해 제작되었고, 반세기 후에는 小北출신인 강세황(姜世晃, 1712-1791)의 주문에 의해 김홍도(金弘道, 1745-1806이후)가 서원아집도를 그리기도 하였다.
김홍도의 서원아집도는 당시 조선에 유입된 구영의 <서원아집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1778년, 선면과 병풍에 각각 그려졌다. 이 두 작품은 같은 해에 제작되었지만 그 용도가 서로 달라 <선면 서원아집도>는 私的으로, <서원아집도 6폭 병풍>은 公的으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중 <6폭 병풍>은 정조가 탕평책을 시행하여 南人과 少論, 小北출신들을 등용한 즉위 초기에 제작되었던 점과 이때 등용된 인물들이 소식의 애호를 표면화했다는 점, ‘金弘道’라는 관서가 쓰여진 점으로 미루어 보아 南人과 小北출신의 사상을 소식의 사상에 빗대어 이들의 등용을 상징적으로 드러내었다고 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정조의 왕권강화의 의도를 반영하여 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김홍도의 제작 이후, 조선후기의 서원아집도는 6폭ㆍ8폭ㆍ12폭 등 대부분 병풍 형식으로 그려졌으며, 서원아집도에 표현된 인물들 가운데 시를 쓰는 미불과 글을 짓는 소식, 그림을 그리는 이공린 부분을 개별적으로 차용하여 별도의 도상으로 활발히 제작할 정도로 이 그림에 대한 인기가 높았다.
조선말기의 서원아집도는 축권, 횡권, 첩으로도 제작되어 그 형식이 다양해지고 화풍 또한 새로워졌다. 그러나 도상이 간략화ㆍ희화화된 예가 많았고 동일한 모본을 가지고 제작된 작품들은 화격이 현저히 떨어져 조선후기의 작품과는 차이가 있다. 이 시기에는 정원에서의 모임문화가 여항문인들에게까지 확산되면서 서원아집도의 향유층도 확대되었고, 이들에게 서원아집도는 옛 賢士들의 풍류적인 모임을 상징하는 작품 중의 하나로 인식되었다. 또한 서원아집의 주요 인물인 소식에 대한 애호는 19세기 이후 널리 확산되어 중요한 문화적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그의 인기는 소식의 단독상을 제작하는 것으로 가시화되었고, 서원아집도의 제작에는 조선후기에 비해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이 시기에는 미불에 대한 인기도 높아져 미불 부분을 차용한 石壁題詩圖가 활발히 제작되었으며 이 도상은 민화의 소재로도 활용될 만큼 저변 확대 되었다.
서원아집도는 정원에서 열린 풍류적 모임의 理想을 드러내면서도 소식의 학문과 사상을 내포하고 있는 복합적이고도 중요한 畵題라고 할 수 있다. 이 그림이 조선에 수용되어 성행하고, 이후 저변확대 되는 과정을 통해 조선시대의 정원문화와 아집문화의 흐름을 살필 수 있고, 당시 사대부들과 여항문인들이 지닌 소식에 대한 인식의 一面을 고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 주요 개정내역 | 변경 사유 |
|---|---|
| · 수탁업체 콘소시엄 기관명 및 위탁기간 명시 | · 제6조(개인정보 처리업무의 위탁) 구체화 |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은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제1조(개인정보의 처리 목적)
제2조(개인정보의 처리 및 보유 기간)
제3조(처리하는 개인정보의 항목)
제4조(개인정보파일 등록 현황)
제5조(개인정보의 제3자 제공)
제6조(개인정보 처리업무의 위탁)
제7조(개인정보의 파기 절차 및 방법)
제8조(정보주체와 법정대리인의 권리·의무 및 그 행사 방법)
제9조(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제10조(개인정보 자동 수집 장치의 설치·운영 및 거부)
제11조(개인정보 보호책임자)
제12조(개인정보의 열람청구를 접수·처리하는 부서)
제13조(정보주체의 권익침해에 대한 구제방법)
제14조(추가적 이용·제공 판단기준)
제15조(개인정보 처리방침의 변경)
제1조(개인정보의 처리 목적)
제2조(개인정보의 처리 및 보유 기간)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
제3조(처리하는 개인정보의 항목)
제4조(개인정보파일 등록 현황)
개인정보파일 검색(privacy.go.kr)| 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정보추제 동의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
제5조(개인정보의 제3자 제공)
제6조(개인정보 처리업무의 위탁)
제7조(개인정보의 파기 절차 및 방법)
제8조(정보주체와 법정대리인의 권리·의무 및 그 행사 방법)
제9조(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제10조(개인정보 자동 수집 장치의 설치·운영 및 거부)
제11조(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안재호 |
- 이메일 : jinuk@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58 - 팩스번호 : 053-714-0195 |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송진욱 |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교육학술데이터본부 정광훈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제12조(개인정보의 열람청구를 접수·처리하는 부서)
제13조(정보주체의 권익침해에 대한 구제방법)
제14조(추가적인 이용ㆍ제공 판단기준)
제15조(개인정보 처리방침의 변경)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