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 소설의 창작기법 연구
저자
발행사항
인천 : 인하대학교 대학원, 2009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박사) -- 인하대학교 대학원 , 국어국문학과 현대문학 , 2009. 8
발행연도
2009
작성언어
한국어
주제어
발행국(도시)
인천
형태사항
; 26cm
일반주기명
지도교수:최원식
소장기관
일반적으로 1930년대 후반기란 “카프 해체(1935년)에서부터 문장지 폐간(1941년)”에 이르는 시기를 가리키는데, 이는 리얼리즘 문학에서 모더니즘 문학으로 변모한다는 데 주목한 시대 구분이다. 그런데 실제로 1930년대 후반기 문학양상을 주도했던 것은 바로 소설의 통속화였다. 이는 이념 중심 문학의 퇴조, 매체의 상업화라는 한국 문화의 전반에 걸친 다양한 변화 속에서 야기되었지만, 보다 본질적인 요인은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지 못한 ‘근대문학의 위기’라는 내적인 측면이었다. 박태원은 다양한 통속적 코드를 취향의 문제가 아닌 창작기법의 문제로까지 격상시킨 작가였다.
박태원은 그 누구보다도 기법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 작가였다. 그에게 있어서 기법은 단지 내용을 담는 형식이 아니라, 그 자체로 내용이고 형식이었다. 따라서 박태원에게 있어서 기법은 그의 문학관이자 그의 철학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그가 내세운 창작기법은 바로 고현학(考現学)이었고, 그것은 박태원 소설을 이해하는 가장 분명한 출발점이 된다.
고현학이란 현대의 도시를 천착하고자 하는 의식이 반영된 일본식 조어로, 눈앞에 펼쳐진 현재의 삶을 그 관찰 대상으로 한다. 그런데 박태원의 서사는 사실 ‘고독’이라는 인간의 내면에 대한 탐색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따라서 박태원의 서사는 이중적인 층위를 지니게 된다. 지식인 주인공이 고현학이라는 방법론을 통해 풍속에 대한 외면 관찰을 수행하는 사이에, 작가 박태원은 그러한 주인공의 내면을 면밀하게 관찰하는 것이다. 인간 내면에 대한 그의 지향과 외면을 관찰하고자 하는 고현학은 실제로 모순적이다. 이러한 이중의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박태원은 다양한 기법을 차용했고, 통속적 코드까지 능동적으로 수용하게 된다. 외면에 대한 관찰을 통해 내면에 대한 관찰을 수행하는 이중적 과제를 독자에게 가장 손쉽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독자와 ‘코드’를 공유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본고는 박태원 소설의 다양한 기법실험과 1930년대 후반기 통속화를 그의 대표적인 창작기법이라 할 수 있는 ‘고현학’과의 관계 속에서 파악하고자 한다. 고현학은 ‘관찰’의 그 메커니즘으로 하는 방법론이다. 그것은 눈앞의 현실을 숨김없이 기록하고자 하는 태도이다. 그런데 박태원의 고현학은 그 관찰을 억압하는 식민지 파시즘의 억압 아래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절망적인 현실감각이야말로 ‘공공적 글쓰기’로서의 소설에 대한 박태원의 인식이 보다 확장될 수 있었던 계기가 된다. 정치적 억압은 역설적으로 문학의 공공적 성격을 강화시켰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본고는 구체적인 작품분석을 통해 박태원의 창작기법으로서의 고현학이 어떤 변모과정을 거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본고는 고현학을 바탕으로 박태원 소설에 드러나는 다양한 기법 실험들—카메라의 시선, 산책, 수다, 통속적 코드, 사소설적 요소들에 주목한다. 고현학은 극도의 객관성을 요구하는 방법론이다. 그러나 그의 소설에서 보다 뚜렷하게 드러나는 서사는 풍경이 아닌 고독한 인물의 내면이다. 박태원은 고현학이라는 외부 세계에 대한 객관적 관찰을, 인물의 내면이라는 지극히 주관적 세계에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카메라의 시선’은 이러한 ‘객관화된 주관’과 이중 관찰을 수행하는 가장 능동적인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런데 카메라를 통한 극단화된 ‘보여주기’는 때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가 되기도 한다. 그 부재를 환기하는 것이 바로 ‘소리’이다. 박태원은 다양한 방식으로 청각적 이미지를 소설 속에 구체화시킨다. 그 중에서도 ‘수다’는 서사를 구성하는 중요한 기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카메라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드러내 준다면, 수다는 보이지 않는 것을 기억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를 통해 박태원의 소설은 ‘파노라마적 풍경의 반영’을 넘어 동시대를 반영하는 사회성까지 내포하게 된다.
그러나 박태원의 고현학은 1939년을 기점으로 주춤하게 된다. 노골적으로 전쟁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한 일제말의 시대상황 속에서, 내면과 풍경에 대한 객관적 관찰이라는 그의 서사적 목표가 현실적인 벽에 부딪친 것이다. 이는 그의 소설적 페르소나인 구보가 소실되게 만들었고, 그로부터 서사적 추락이 야기된다. 그러나 박태원의 고현학은 바로 그 지점에서 새로운 출발을 맞이한다. 소설이 반영할 수 있는 삶의 폭이 좁아졌다면, 역으로 더 깊게 삶을 반영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게 된 것이다. 사소설로 완성된 그의 ‘생활의 고현학’은 공공적 글쓰기로서의 소설을 끝까지 추구하고자 했던 박태원의 서사적 대응으로서 의미를 가진다.
본고는 1930년대로부터 1930년대 이후까지의 박태원 소설을 하나의 정신사적 입장 위에서 해명하기 위한 기초적인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고현학은 그가 1930년대 전체를 관통하며 작품 창작에 꾸준히 반영하고자 했던 창작기법이며, 곧 문학에 대한 그의 철학적 입장이기도 했다. 더 나아가 그 안에는 해방 이후 그의 변모를 예상하게 하는 자질들이 숨겨져 있다. 이에 본고는 1930년대 후반기 그의 소설들을 박태원 문학사에 복원함으로써, 그의 1930년대 작품들이 지니는 문학사적 의미를 되짚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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