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 中期 宗廟樂章에 대한 史的 考察 = (A)Historical Study on the Jongmyo-akjang in the Mid-Joseon Dynasty
The term akjang(樂章) is the poem performed with formal court music in a place called Jongmyo(宗廟), which is the ancestral shrine of the royal family consisted of nineteen chambers for the late kings. Jongmyo-akjang(宗廟樂章) was used as a medium to pass down the feats of the late kings to the next generations.
I divided Jongmyo-akjang(宗廟樂章) in the early Joseon Dynasty into the two periods of before and after the year 1464 (the King Sejo’s period, 世祖 1455∼1468). Before 1464, each Jongmyo-akjang had been played at each chamber of Jongmyo according to the akjang scheme of Hàn․Táng․Sòng (漢․唐․宋). But since the King Sejo had Botaepyeong(保太平) and Jeongdaeeop(定大業) (New Year's court music of the King Sejong' epoch, 世宗 1418∼1450) re-written, Jongmyo-akjang have been rendered under the rule of '9 biàn (九變)' of『Zhōulǐ (周禮)』 and ‘9 chéng (九成)’ of 『Shujīnḡ(書經)』( 9biàn(九變) means the poem-based music changing nine times and 9chéng(九成) means the poem-based music ending after nine akjang is played through).
This system was changed because of Jonggyebyeonmu(宗系辨誣) in 1590 (the King Seonjo's epoch, 宣祖 1567∼1608), an incident where Joseon had demanded that a misnomer of the royal lineage of Joseon in the『Dàmínghuìdiǎn(大明會典)』be amended. During the Seonjo epoch, the misnomer was corrected only after two centuries. In the wake of Jonggyebyeonmu, arguments arose that each Jongmyo-akjang should be played at each chamber of Jongmyo. The above incidents largely swayed the Jongmyo-akjang system of the King Injo's epoch and onward.
The Yi Gwal Revolt in 1624 did a great deal of damage to the legitimacy of the King Injo(仁祖 1623∼1649) who had replaced the prince Gwanghae(光海君 1608∼1623). His regime strived to resolve this serious situation through Jongmyo-akjang. From then on, arguments diverged between that "each Jongmyo-akjang should be played at each chamber of Jongmyo" and that "all the nine akjangs should be rendered through chambers of Jongmyo."
Eventually, they came to this conclusion that they used all the nine akjangs at the chambers of Jongmyo except dedicating the akjang "Junggwang(重光)“ to the chamber of the last King Seonjo in 1626. This became a precedent that allows dedicating akjang to the chamber of a preceding king. As a result, Jongmyo-akjang was thrown into disorder and, at times, kings and subjects would use it for political purposes. Finally this confusion came to an end in the King Youngjo's epoch (英祖 1725∼1776) by combining akjang Yonggwang(龍光) and Jeongmyeong(貞明).
The following are several important implications of Jongmyo-akjang in the mid-Joseon Dynasty.
First, it bears significance that there were discussions as to whether each Jongmyo-akjang should be played at the chamber of Jongmyo or all the nine akjang should be rendered through chambers of Jongmyo.
Second, akjang YonggwangJeongmyeong(龍光貞明) and Junggwang(重光) were developed as a result of the above discussions.
Third, Jongmyo-akjang was more than an art and served as a communication channel between kings and subjects and the nation and its people since it was utilized for political purposes.
본 논문은 조선 중기, 즉 선조조부터 영조조까지 발생한 종묘악장에 대한 논란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밝히고 이 논란이 2세기동안 계속되어온 배경과 과정, 그 결과를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악장(樂章)은 궁중에서 국가의 제전(祭典)이나 연례(宴禮)와 같은 공식 행사 때 궁중 음악에 맞추어 부르던 시가형태이다. 그러므로 조선시대에 공덕이 큰 왕과 왕비의 신주(神主)를 모신 종묘에서 제향을 올릴 때 사용되었던 종묘악장은 선왕(先王)의 공훈(功勳)을 현재와 미래에 전하여 귀감이 되게 하는 매개체라고 할 수 있겠다.
조선 전기의 종묘악장은 1464년(세조10)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464년 이전에는 한․당․송(漢․唐․宋)의 악장제도를 따라 작헌례(酌獻禮) 때 종묘 각 실에 각 악장을 연주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그러나, 1464년 세조가 세종조에 만들어진 회례악 보태평과 정대업을 개작한 종묘제례악으로 종묘에 친향(親享)을 한 후부터 종묘악장은 『주례(周禮)』의 ‘9변(九變)’과 『서경(書經)』의 ‘9성(九成)’의 체계 아래 영신악(迎神樂) 9성뿐만 아니라 삼헌 악장(三獻樂章) 역시 9장으로 통일하여 각 실에 통주(通奏)하게 되었다. 이 체계는 조선 중기에 이르러 변화를 겪는데, 선조조에 있었던 종계변무가 계기가 되었다. 종계변무(宗系辨誣)란 조선 개국의 위업을 달성한 태조 이성계의 아버지 이름이 중국 명나라의 『대명회전(大明會典)』등에 잘못 기록된 사실을 수정하도록 중국에게 요구했던 일이었다. 이 사건은 태조조부터 선조조까지 2세기동안 지속되어왔는데, 선조조에 그 위업이 달성되었던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종묘 각 실에 각 악장을 찬정해야한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선조의 종계변무의 공은 그 치세에는 존호나 악장이 헌정되지 못하였다. 선조조에 있었던 일련의 일들은 인조조 이후의 종묘악장 체계를 혼란에 빠뜨렸다. 반정으로 들어선 인조정권은 이괄의 난을 맞아 정통성에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그 수습책으로 소략하게 지내던 종묘제향을 복구하던 차에 종묘 각 실에 각 악장을 찬정해야한다는 주장이 있게 되었고, 이 주장은 조선의 종묘악장은『주례』의 ‘9변’원칙에 입각한다는 사실과 대립되게 되었다. 결국, 인조조의 종묘악장 논의는 선조의 묘실(廟室)에 ‘중광장(重光章)’을 찬정(撰定)하는 일로 매듭지어졌다. 이 때 중광의 위치는 정명(貞明)의 뒤였고, 이 일은 후대의 왕들에게 자신의 선왕(先王)의 묘실에 악장을 헌정해도 된다는 전례를 남겼다. 이러한 전례에 따라 군왕(群王)과 군신(群臣)이 종묘악장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있어 조선 중기의 종묘악장은 극심한 혼란 속에 빠지기도 하였다. 효종조에는 인조의 부묘(祔廟)를 앞두고 부묘악장의 필요여부를 두고 공방전이 펼쳐졌었다. 이때 중광의 위치는 정대업 11성 뒤였다. 현종조에는 예송논쟁(禮訟論爭)의 여파를 무마하기 위하여 종묘악장의 정비를 하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때 중광의 위치는 삼헌(三獻)에 모두 쓰이고 있었다. 숙종조에는 갑술환국(甲戌換局) 속에서 옥책(玉冊)과 악장정비논의가 시작되었다. 옥책정비가 쉽지 않자 악장정비를 위한 논의가 있었다. 이때 중광의 위치는 초헌(初獻)에서는 대유(大猷) 아래, 아헌(亞獻)․종헌(終獻)에서는 혁정(赫整) 아래였다. 이러한 혼란은 영조조에 이르러 용광과 정명을 하나의 악장으로 합하면서 마무리되었다.
그러므로 조선 중기 종묘악장의 음악사적 의의는 한․당․송 시대의 제도를 따라 종묘 각 실에 각 악장을 찬정해야한다는 의견과 『주례』의 ‘9변’과 『서경』의 ‘9성’에 따라야한다는 의견으로 나뉘어진 예제적(禮制的)인 토론이 진행되었다는 점이고, 현재의 용광정명장(龍光貞明章)과 중광장(重光章)이 이러한 토론을 거쳐 탄생했다는 점이다.
또한 조선 중기 종묘악장의 역사적 의의는 군왕(群王)과 군신(群臣)이 정치적인 이유로 종묘악장을 그 타개책으로 사용하려 했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종묘악장은 예술의 차원을 넘어 군왕과 군신 간의 소통의 수단이요, 국가와 백성 간의 소통의 통로임을 표명하는 단편적인 예임을 보여준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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