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건 시 연구 = Study on Jeon Bong-Geon poetry
전봉건은 1950년 <문예>지로 등단한 이후 1988년 타계할 때까지 한 권의 연대시집과 여섯 권의 시집, 그리고 일곱 권의 시선집, 한 권의 시론집과 두 권의 산문집을 상재하였다. 그의 시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한국전쟁이다. 전봉건은 평생에 걸쳐 시를 통하여 전후의 정신적 상흔을 극복하고자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봉건이 현대시에 있어 무엇보다 강조한 것은 시의 주제나 사상이 아닌 기교이다. 전봉건의 시를 단순히 주제적 측면에서만 고찰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전봉건은 시의 기교를 통하여 현실과 대결하는 새로운 시적 현실을 만들어내고자 했다. 시의 형식과 방법에 대한 인위적인 구성이 바로 이 시적 현실을 구축하는 중요한 방법론인 것이다. 전봉건의 시에서 시의 기교를 구성하는 가장 두드러진 방법은 에로스다. 죽음을 극복하는 에로스의 생명력이 전후의 정신적 상흔을 극복하는 내재적 힘이 된다고 본 것이다.
본고는 전봉건의 시를 통시적으로 살피면서 그의 시세계의 변모양상과 그 원인에 대해서 규명하고자 한다. 특히 전봉건의 산문들과 시론에서 언급되는 현대시에 대한 그의 인식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전봉건이 현대시에서 가장 중요하는 여기는 것은 시를 만드는 시인의 고독한 기술, 즉, 시의 기교이다. 그것은 현대라는 시대적 상황이 시인 개개인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전봉건은 이를 통하여 현실과 맞설 수 있는 시적 현실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시의 기교를 통해 만들어낸 시적 현실은 전후의 불임성에 대응하는 원시적 생명력으로 충만한 세계다. 1950년대 쓰여진 전봉건의 시가 이에 부응하고 있다. 먼저 한국전쟁 전에 쓰인 전봉건의 시를 통하여 그가 가지고 있던 시원적 세계관을 볼 수 있다. 이는 순수 지향의 세계관으로서 만개하는 푸르른 자연과의 일체감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와 같은 세계관은 전쟁체험 이후 더욱 강렬해진다. 만개한 생명 가운데 한 생명보다 만연한 죽음 가운데 한 생명이 더욱 강렬하기 때문이다.
1960년대 들어서 전봉건의 시는 장시화 경향을 띠는데, 장시 「춘향연가」와 연작시 「속의 바다」가 이 시기의 작품에 속한다. 장시화 경향을 띠었다는 것은 에로스를 바탕으로 하는 생명의식을 시의 기교적 측면을 활용하여 극대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가 시인에게 형식과 기법을 요구한다는 전봉건의 말을 통해 볼 때, 이 시기의 장시화 경향은 곧 시의 현대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시적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시들은 생명의식 발현의 주요한 기법적 요소인 에로스를 구축하고 있지 못하다. 「춘향연가」와 「속의 바다」의 에로스가 현실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거나 존재하는 않는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현실이 시적 현실을 압도한 것으로써, 전봉건의 현실인식에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3기에 해당하는 1970년대의 전봉건의 시들이다.
「춘향연가」와 「속의 바다」와 같은 장시와 연작시의 작업에 매달렸던 1960년대와 달리 3기에 해당하는 1970년대 들어 전봉건은 비교적 짧은 형태의 시로 변모를 꾀한다. 이 시기 전봉건은 시의 기본요소인 말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고, 또한 짧은 형태의 시로서 투명한 표현을 구가하고자 한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언어와 이미지에 대한 관심으로 기울어지게 되는데, 이와 같은 변모는 1960년대 장시화 경향의 작품이 시적 현실을 구현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시의 기본적인 요소인 언어와 이미지를 중시한다는 것은 지난 작품들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이 시기에는 전봉건의 당대의식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을 발견할 수 있는데, 「마카로니 웨스턴」 연작과 「말」 연작을 들 수 있다. 전봉건은 이 작품을 통하여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시대가 아무도 말하지 않는 시대, 선인도 악인도 없는 ‘마카로니 웨스턴’의 시대라고 말하고 있다.
4기에 해당하는 1980년대, 전봉건은 「돌」 연작에 전념한다. 60년대의 장시와 연작시, 70년대에 나타난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 시대적 현실 속에 맞서는 말의 기능과 짧은 형태를 바탕으로 한 투명한 표현에의 관심을 거쳐, 80년대의 「돌」 연작까지의 흐름은 그의 시가 현실과 끝없이 응전하였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 이 시기 전봉건은 내면에 자리 잡고 있던 실향의 상처를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그 선결 작업이 바로 「돌」 연작이다. 「돌」 연작에 나오는 수많은 타자와 종교적인 상징들은 전봉건의 시가 전후 폐허가 된 세계의 회복이 아닌 전봉건 자신의 내면 회복으로 변모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때문에 북의 고향의 고향은 더 이상 모든 생명들의 시원적 공간이 아니라, 전봉건 자신의 자전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그리움이 응축된 공간으로 그려진다. 이처럼 내면화되어 있던 실향의식이 전면에 드러남과 동시에 시의 기교를 중시하던 전봉건 시의 형식적 특성들이 무뎌진다.
전봉건 시는 전후 폐허가 된 세계의 회복에서 개인의 회복으로 변모했으며, 이는 시의 기교적 측면의 밀도와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다. 또한 모든 생명의 시원적 공간에서 전봉건 내면에 응축되어 개인사적 공간으로 변모한 고향 역시 이를 방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봉건은 끝까지 전쟁이라는 제한 없는 폭력으로부터 자신과 세계를 회복하고자 시도하고 있으며 그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이 의지는 곧 언젠가 고향으로 가야 한다는 실향의식과 맞물려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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