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소설의 비극성에 관한 수사학적 연구 : 김승옥ㆍ조세희ㆍ오정희를 중심으로
이 논문은 김승옥․조세희․오정희 소설에 나타나는 비극성을 문체의 효과로 규명해보고자 했다. 세 작가의 작품은 공통적으로 비극성을 체현하고 있으면서도 그 비극성이 구현되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에 주목하여, 각 작가의 인식과 태도를 문체적 특성과 연계해 분석해 보고자 하였다. 이를 효과적으로 의미화하기 위해 세 작가의 태도와 세계이해방식을 ‘비동화/비통합/불가능’으로 명명하고 비극성이 구현되는 방식과 특성을 언술차원에서 고찰해 보았다. 세 작가의 작품세계를 기능적으로 조망하기 위해 본론의 각 장을, 첫째 주체의 표상과 서사화의 원리, 둘째 언어적 형식으로 발현되는 비극성의 구체적 의미, 셋째 텍스트의 효과와 미적 담론의 층위로 세분하고, 비극성의 구체적인 발현 양상을 우울, 공포, 불안이라는 감정구조와 연관지어 살피고 그 문체적 특징을 분석하였다.
더보기세 작가의 비극적 인식은 각기 다른 양상을 보이면서도 또한 동일한 지평을 지향하고 있다. 먼저, 근대성과 관련해 김승옥 소설에 제시되는 입사와 도시편입의 이중과제는 청년주체가 표상하는 ‘미성숙한 유동성’과 더불어 ‘비동화(非同化)’의 태도로 달성된다. 성년도 미성년도 아닌 김승옥의 청춘들에게는 기본적으로 현실에 동화되지 않으려 하지만 현실에 편입하지 않을 수도 없는 문제적 상황이 주어져 있다. 이는 이에 대항한 방법적 실천으로서의 ‘우울’을 추동한다. 좋은 시민도 예술가도 될 수 없을 때 이들은 위악(僞惡)을 행함으로써 반성적인 거리감각을 획득한다. 이때 김승옥 소설은 ‘제문적(提問的)’ 담론의 형태를 취하게 된다. 이는 절대적 선도 악도 아닌 가치의 혼효상을 통해 다원주의적인 인식을 보여주는 김승옥 글쓰기의 중요한 특질을 이룬다.
김승옥에 비해 조세희 소설에 나타나는 비극적 인식은 사회경제적 부조리를 보다 직접적이고도 명시적으로 문제시하고 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8)은 독특한 문체와 ‘비통합(非統合)’적인 담론 구성에 의해 근대적 가치의 이면성을 효과적으로 표현해준다. 생산에 감추어진 파괴, 개발에 감추어진 훼손, 성장에 감추어진 죽음, 나아가 근대적 정상성에 감추어진 불구의 병리성이 폭로되고 있다. ‘공포’는 특히 경이로운 근대세계의 배후에 존재하는 파괴의 ‘원현상’을 충격적으로 제시함으로써 각성된다. 이때 조세희 소설은 ‘응답적(應答的)’ 담론의 형태를 취하게 된다. 난장이를 통해 강조되는 사랑과 윤리의 이념으로써 현실에 참여하고 이를 교정하려는 글쓰기의 욕망을 보여준다. 텍스트에 드러나는 가치의 계열화와 의미의 분할 작용은 계몽과 각성의 효과를 위해 효과적으로 기능하고 있다.
두 작가에 비해 오정희 소설은 근대성에 대한 인식을 직접 표출하고 있지는 않지만, ‘여성적인’ 글쓰기를 통해 개인의 본성과 욕망을 억압하는 외적 규준이 보다 미시적으로 일상에 침투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특히 주인공들의 다양한 일탈과 광기는 기존질서에 대한 위반을 넘어서 상징적 죽음에 맞선 ‘저항’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개인의 일상을 규제하고 규격화하는 죽음 상태에 대항한 자유의 의미이기도 한다. 오정희 소설에서는 또한 상실에 대한 애도의 ‘불가능(不可能)’이 불확실성을 의도하는 문체를 통해 ‘불안’의 형태로 제시되고 있다. 선조적 시간성이나 논리적인 인과율 대신 오정희 소설에는 기억과 회상, 정동(情動)의 기표가 두드러지게 표현된다. 이때 오정희 소설은 사건의 뚜렷한 결말도 문제의 해결도 없이, 부재와 균열을 환기하는 ‘미해결적(未解決的)’ 담론의 형태를 취하게 된다. 또한 동일성의 전략인 ‘망각’과 ‘침묵’에 대해 ‘기억’과 ‘발화’의 형태로 텍스트가 구현되는 특징을 갖는다. 이것이 오정희 소설의 여성 표상이 갖는 궁극적 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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