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소설 군담의 확장방식 연구
이 논문은 고전소설에 나타난 군담의 확장 방식의 일반적인 규칙을 구명하고, 구체적 작품을 통해 실재적으로 고찰하는 것에 목적을 둔다. 군담은 시ㆍ공간의 스케일이 크고, 초월적인 영웅들의 무용담이 화려하게 펼쳐지며, 대결의 긴박함이나 승리의 쾌감과 같이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요소들을 두루 구비하고 있다. 또한 전쟁은 합의될 수 없는 갈등을 표출한다는 점에서 갈등을 문제 삼는 소설과 쉽게 어울릴 수 있는 자질을 갖추고 있다. 더불어 군담은 여타의 서사들과 결합이 자유롭고, 서사적 변개를 유도하거나 문제 상황을 해결하는데 용이하다. 동시에 황제를 정점으로 하는 중세적 지배질서를 긍정하고 있기 때문에 당대의 보편적인 도덕윤리-충효와 같은 수직적 지배질서-를 소화하는 데도 무리가 없다. 이처럼 군담은 소설적 흥미나 서사를 연결시키는 매개체로써의 자질이 풍부하기 때문에 한국 고전소설에 빈번히 등장할 수 있었다. 이 중에서 본고의 관심은 전자, 즉 군담의 흥미 창출의 문제에 있다. 영웅이 적과 싸워 이김으로써 개인적 소망과 사회적 안정을 쟁취한다는 도식적인 패턴을 견지하면서, 다양한 요소들의 결합 과정에서 통속적 흥미를 획득하는 것이 군담이다. 이러한 통속적 흥미는 작품 속에서 차지하는 서사적 비중의 문제와 결국 군담 서사가 이러저러한 요소들을 적절히 배치ㆍ활용하면서 확장해 나가는 방식 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본고에서는 우선 군담의 서사적 편폭이 확장된 작품들을 대상으로 확장 방식의 일반적인 규칙을 검토하였다. 군담을 확장시키는 동력은 크게 영웅 형상과 대결 구도를 들 수 있다. 그런데 영웅 형상 중에서도 어떤 면에 초점을 맞추는 지, 그리고 대결 구도에서도 무엇에 주목하는지에 따라 확장의 방향은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먼저 영웅 형상에서 주인공의 영웅적 형상화는 주인공의 전쟁 수행 능력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경우와 전쟁 수행 능력을 토대로 주인공의 인품을 드러내는 경우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다. 전자는 주인공이 어떻게 적대자에게서 승리하는가가 관심의 초점이라면, 후자는 대체로 주인공의 도덕적 인품과 어진 인덕이 전쟁의 국면 속에 어떻게 발현되는가가 관심의 초점이 된다. 물론 양자는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며, 특히 분량이 짧은 경우 이러한 구분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그러나 군담의 서사적 편폭이 확장될수록, 양자의 미감 차이는 보다 분명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한편 대결 구도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적대자를 어떻게 그리는가가 중요하다. 대결의 반대항인 적대자가 강력해야 영웅의 활약상도 강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적대자는 영웅과 대결을 벌일 수 있을 정도로 비범한 능력의 소유자이거나 주인공과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갈등 관계에 있는 인물이다. 전자는 적대자의 야망이나 능력 정도에 따라 대결의 국면이 다채롭게 펼쳐지며, 후자는 주인공의 복수 내지는 갈등의 해소라는 측면에서 전개 양상이 심각하게 드러난다.
Ⅱ장의 검토가 확장의 일반적인 방식에 해당한다면, Ⅲ-Ⅴ장까지는 장르적 특징과 관련되면서도 개별적 미감을 보이는 작품들을 대상으로 한 구체적인 확장 방식의 분석에 해당한다. 먼저 장편가문소설에서는 <소현성록>과 <완월회맹연>, <창선감의록>과 <쌍천기봉>이 장르 속에서 각기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소현성록>과 <완월회맹연>의 경우는 영웅의 도덕적 완결성 내지 인품이 군담을 확장시키는 중요한 동력이 되는데, <소현성록>에서 드러난 미감이 <완월회맹연>에서 더욱 강화되면서 확장된다. 특히 <완월회맹연>은 <소현성록> 이외에도 <삼국지연의>, <창선감의록> 등을 수용하면서도 이를 도덕적 영웅의 인품 강조 및 ‘우월한 영웅에 의한 적대자의 감화’가 극단적으로 표출됨으로써 장편가문소설의 정립적인 특징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비해 <창선감의록>과 <쌍천기봉>은 주인공과 적대자의 대결이 강조되는데, 역시 <창선감의록>보다 <쌍천기봉>에서 그 정도가 강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쌍천기봉>은 <삼국지연의>를 적절히 활용하는 한편, 세 차례의 군담을 연계ㆍ분리시키고 각각 다른 질감으로 형상화함으로써 군담의 서사적 흥미를 보다 강조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음으로 장편영웅소설은 장편의 분량에 영웅 개인의 일생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므로 영웅의 입공을 드러내는 군담의 비중이 중요하게 부각되는 작품군이다. 그 중에서도 군담의 편폭이 가장 크고 서사적 흥미가 강화된 작품으로 <남정팔난기>와 <옥루몽>을 들 수 있다. <남정팔난기>는 소설 창작의 목적 중 하나가 군담에 있는 작품이다. <남정팔난기>에 등장하는 복수 영웅들은 거의 전적으로 전쟁에서의 활약상을 통해 형상화되는데, 이는 <삼국지연의>의 적극적인 수용ㆍ변용과도 밀접한 연관을 지닌다. 특히 <남정팔난기>는 이전 장편가문소설들과 달리 <삼국지연의>의 요소들 중 흥미롭다고 생각되는 화소들을 자유롭게 끌어들여 작품의 상황에 맞게 변용함으로써 군담의 서사적 흥미성을 크게 강조하였다. 즉 <남정팔난기>의 작가는 <삼국지연의>를 토대로 하여 군담이 흥미진진하게 진행되는 소설을 만들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옥루몽>의 군담에 대해서는 <삼국지연의>와의 관련성, 군담의 구성적ㆍ표현적 특징 등이 거듭 논의된 바 있을 정도로 그 성취가 뛰어난 것으로 파악되어 왔다. 특히 <옥루몽>의 군담은 戰場인 남만의 이국적 면모를 구체적으로 그림으로써 양창곡과 강남홍의 애정담을 더욱 곡진하게 드러내는 한편, 강남홍의 개성적 형상, 장면의 섬세하고 화려한 묘사를 통해 군담의 흥미성과 긴장감을 부각시키고 있다. 요컨대 <옥루몽>은 군담이 전일한 창작 목적은 아니되, 작가 개인의 뛰어난 창작능력과 筆致가 군담의 수준을 격상시킨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영웅소설에서는 황제구출 화소의 활용과 대결구도의 일원화를 통해 한정된 분량 속에서 군담의 확장을 꾀하고 그 흥미성을 강조하고 있다. 먼저 황제구출 화소는 <설인귀전>에서 수용된 것이다. 본고에서는 그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최초로 수용한 <소대성전>의 소설사적 위상을 재검토함으로써 황제구출 화소의 유전에 있어 중요한 것은 원작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자국의 문화적 기반도 함께 고려해야 함을 밝히고자 하였다. 한편 황제구출화소가 유전되는 과정에서 이를 다양하게 활용함으로써 군담의 흥미성을 높이는 작품들이 있는 바, <월왕전>과 <현수문전>이 그러한 활용의 사례에 해당한다.
특히 주목할 것은 대결 구도의 일원화이다. 영웅의 고난과 극복, 그리고 군담의 흥미가 강조될수록 적대자가 주인공과 여러 측면에서 얽히고, 그러한 중첩된 갈등이 군담을 통해 일시에 해소되는 양상이 나타난다. 이러한 흐름은 <장백전>과 <최현전>으로부터 출발했으되, 어느 특정 작품의 영향이라기보다는 계속된 실험과 반복되는 관습 속에서 차츰 발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실험의 과정에서 군담의 통속적 흥미가 강조된 작품들이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조웅전>과 <유충렬전>이다. <조웅전>과 <유충렬전>의 서사는 주인공과 적대자의 대결 구도를 중심축으로 하여 서사를 구성하였고, 그 대립의 국면을 부각하기 위해 군담을 강조한 작품이다. 그러면서도 양자는 사뭇 대조적이다. 먼저 <조웅전>이 과제수행담의 형태를 통해 조웅의 단계적인 성장을 그리고 있다면, <유충렬전>에서는 적대자에 의한 고난의 양상을 유충렬 외의 다른 인물들로 확대시켜 양자의 갈등을 심화시킨 후 군담에서 일거에 해소하는 방식을 띤다. 또한 군담의 상황에서도 <조웅전>은 조웅의 영웅적 활약과 이두병의 점차적인 몰락을 교차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서사적 긴장감을 획득하고 있다면, <유충렬전>에서는 이와 달리 철저하게 유충렬의 관점에서 전쟁을 그림으로써 서사적 몰입을 강조하고 있다.
Ⅵ장 소설사적 위상에서는 장편가문소설에서 나타난 군담이 서사를 위한 기능을 중심으로 등장하면서 점차 서사적 흥미성이 부각되고, 그것이 장편영웅소설에 이르러 크게 확대된 것으로 파악하였다. 이어 그러한 서사적 흥미가 더욱 통속화되어 영웅소설의 서사 전략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음을 검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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