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형법의 패러다임 변화와 노동형법정책의 방향
노동형법이란 노동영역을 규율하는 형법규범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 발전 과정 속에서 정의되고 이해되어 온 노동형법의 개념을 살펴봄으로써 노동형법이 노동정책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사용자의 자유강화정책을 위해서든 혹은 근로자의 보호기획을 위해서든 형법은 그러한 노동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한 수단이 된다. 자유주의적 법패러다임에서 사용자와 근로자는 각각의 인격을 가지고 자유롭고 평등하게 근로관계를 형성한다. 즉 근로자의 근로제공과 사용자의 임금지급이 대가적 교환관계를 이루면서 당사자의 자유로운 교섭에 의하여 근로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민법 또한 이러한 원칙에 근거하여 임금 및 근로조건에 관한 결정을 사용자와 근로자에게 일임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자유주의적 노동형법은 ‘사적자치’를 원칙으로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유주의적 노동형법의 보호법익은 일반적 행동자유권으로부터 파생되는 계약자유의 원칙, 재산권과 더불어 간접적으로는 시장경제질서가 된다. 사회국가적 노동형법은 국가의 후견적 보호를 통하여 사회적 약자인 근로자 지위를 복원하고자 한다. 즉 사회국가적 노동형법은 개별적 근로관계 및 집단적 노사관계에서 근로자의 생존권 보장을 목적으로 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형법을 그 수단으로 삼는다. 그러나 이러한 근로자 보호기획은 이미 그 자체 이데올로기적 편향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는 형법의 법치국가적 기본원칙을 형해화한다. 이처럼 자유주의적 노동형법이 사용자/근로자의 이분법적 분리라는 사회적 결과(실질적 불평등)에 무력하였던 반면, 사회국가적 노동형법은 실제로 사용자의 행위를 조종하거나 그를 통하여 근로자 보호라는 목적을 제대로 달성할 수 없고, 결국에는 사회적 통합과 법적 통합 모두를 그르치게 된다. 그렇다고 자유주의적 노동형법으로 회귀하는 것은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며, 근로자 보호에 역기능을 초래한 사회국가적 노동형법에 머무르는 것도 힘들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노동형법은 절차화의 단계로 나아가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절차주의적 노동형법이란 사회국가적 노동형법과는 달리 노동영역을 규율하는 (형)법이 사용자와 근로자의 개별적 근로관계 및 집단적 노사관계의 구체적 내용을 ‘직접’ 형성하거나 사용자나 근로자의 의무위반행위를 ‘직접’ 조종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즉 당사자들의 협상과 타협 등에 의해 자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절차’나 ‘조직’ 그리고 ‘조종권한의 분배’ 등에 관해서만 규율하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한다. 현행 노동형법은 ① 사회적 근로조건의 유지, ② 노동시장의 사회국가적 질서의 유지, ③ 사회안정체계의 재정적 견고함의 유지를 목적으로 한 법률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현행 노동형법은 주로 사용자에게 의무를 지우고, 이러한 의무와 마찬가지로 (민사적・형사적) 제재 또한 사용자 지위에 연결하고 있다. 즉 부당해고나 임금체불 등과 같이 개별적 근로관계를 규율하는 형법이나 부당노동행위 등과 같이 집단적 노사관계를 규율하는 형법은 사용자 처벌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현행 노동형법을 사용자 형법이라고 할 수 있다. 사용자 형법은 이와 같이 권리와 의무를 비대칭적으로 분배하고 형사처벌을 예정함으로써 근로자 보호기획을 개별적 근로관계 및 집단적 노사관계에 실현하려고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현행 노동형법은 사회국가적 노동형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시장의 사회・경제적 환경변화에 따라 노동영역을 규율하는 형법에 대한 비범죄화 논의가 활성화되고 있다. 이러한 비범죄화 논의는 사회국가적 노동형법의 규제의 타당성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시작된다. 즉 한편으로는 노동영역에서 발생하는 일탈행위를 과연 형사적 제재로 규율하는 것이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영역에서의 일탈행위의 규제기준이 헌법질서 속에서 형법의 법치국가적 기본원칙을 형해화하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의문이다. 이러한 의문으로부터 개별적 근로관계 영역에서는 ① 포괄적 부당해고죄, ② 해고예고의무위반죄, ③ 포괄적 임금체불죄, ④ 체당금 부정수급죄 등이 사회국가적 노동형법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러한 구조 속에서 이들 범죄유형들을 형벌로 규율하는 것이 어떠한 한계에 직면했는지를 살펴보고 새로운 대안으로써 절차주의적 노동형법으로 나아가는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그리고 집단적 노사관계 영역에서는 ① 사용자에게만 의무를 부담하고 형사책임을 예정하는 부당노동행위와 ② 헌법상의 기본권인 단체행동권을 제약하는 수단으로서 형법전상 위력업무방해죄를 노동조합의 쟁의행위에 적용하는 노동현실을 비판하고, 이를 통하여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 대표적인 ‘분쟁조정법’으로서 어떠한 구조로 설계되어야 하는지를 논의하고자 한다. 그러나 절차화의 개별적 근로관계 및 집단적 노사관계로의 실현이. 노동영역에서의 자유주의적 법패러다임이나 사회국가적 법패러다임을 완전히 해체시키는 것은 아니다. 노동영역에서는 자유주의적 법패러다임 혹은 사회국가적 법패러다임이 관철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인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절차화를 실현시키고자 하는 방안이 자유주의적 혹은 사회국가적 법패러다임을 해체시키는 것이 아닌 오히려 변증해 나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할 경우에만 장래의 합리적인 노동형법정책의 방향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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