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前期 朱子學的 風水地理 認識의 形成과 展開
저자
발행사항
서울 :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2011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석사) --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 역사교육전공 , 2011. 2
발행연도
2011
작성언어
한국어
주제어
DDC
902 판사항(22)
발행국(도시)
서울
기타서명
Formation and development of awareness of Fengshui-Jiri in the aspect of the doctrines of Chu-tzu in the early Joseon Dynasty
형태사항
iii, 69 p. : 삽도 ; 26 cm
일반주기명
경희대학교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지도교수: 구만옥
참고문헌: p. 63-66
소장기관
삶의 터전인 땅을 이해하고 관리하는 사상인 풍수지리설은 시대와 사회를 관통하여 한민족의 자연인식체계를 이루었다. 풍수지리설의 사회적 기능이나 역할은 시대에 따라 변하였지만 삶의 공간을 선택하고,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사람들은 풍수지리설에 의거하였다.
고려시대의 풍수지리설은 주로 도읍을 옮기거나 새로 정하려는 정도사상이 가장 큰 특징이었다. 또한 삼경제를 정하는 것과 같이 도참과 결부된 풍수사상이 고려시대를 관통하여 나타나게 되었다. 이처럼 풍수도참사상이 천도론과 결합하여 지속적으로 전개된 것은 고려시대의 특징적 현상이었다. 이러한 고려시대의 풍수지리설은 국가적으로 신앙되는 대표적 신념체계였다. 하지만 고려 말 주자학이 도입되고 신진사대부를 중심으로 음양지술에 대한 비판적 의식이 확대되면서 점차로 풍수도참에 대한 반대가 거세지게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주자학이 지배이념으로 자리하면서 풍수지리설도 잡술로 배척되었지만 선령을 편히 모시기 위한 묘 자리를 잡는 기술로서의 필요성을 유지하였다. 아울러 무엇보다도 역성혁명을 통하여 개창된 조선왕조로서는 고려시대의 구체제로부터 탈피할 필요가 있었다는 점이 풍수지리 인식의 전환에서 중요하다. 풍수지리설에 대한 인식과 방법론에서도 변화가 요구되었던 것이다. 본 논문은 조선전기 주자학적 사유체계 안에서 변용된 풍수지리설이 어떠한 내용과 특징을 지니고 있었고, 주자학적 풍수지리 인식이 역사적 전개 과정 속에서 어떻게 발현되었는지를 분석한 것이다.
조선시대 풍수지리 인식에서 지침이 된 것은 선유들이 제시한 풍수담론이었다. 주자학이 지배적인 사상으로 작용하고 있었던 만큼 정자와 주자의 풍수담론은 풍수에 대한 일종의 지침서 역할을 했다. 풍수는 사설이므로 버려야 하는 것이었지만, 신유학자들이 전통적으로 풍수를 논의했던 바 또한 무시할 수는 없었다. 풍수지리설을 대체할 만한 다른 지리기술이 없는 상황에서 풍수지리의 사용을 폐할 수도 없었다. 그러므로 선유들이 말한 효자지심, 땅의 미추, 안장을 고려하는 수준에서 풍수의 효용성이 고려되어야 했다.
풍수지리설이 주자학적 사유체계 안에서 변용되는 가운데 조선전기 지식인들이 지닌 풍수에 대한 태도는 중층적이었다는데 그 특성이 있다. 한편으로는 풍수 이론에 따른 상지로 인해 토목의 역사를 일으키고 불필요한 논쟁을 야기한다는 면에서 풍수를 잡술이라고 공격하는 태도를 보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수를 폐할 수 없으니 선유들의 지침 안에서 풍수를 사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주자학적 지배제체를 확립하는 데 풍수지리설이 이용되기도 했다. 풍수지리설은 주자학적 입장에서는 잡술이었지만, 불교를 억제하고 조선의 지배질서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는 어용 논리로 이용되었다. 하지만 풍수지리설이 주자학적 질서를 어지럽히게 될 때는 배척되었다. 다만 풍수지리설을 비판하거나 수용하는 태도는 정국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기도 했다. 또한 개인적인 삶의 차원과 공식적 인식의 차원에서 중층적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즉, 일반적으로는 풍수지리설이 잡술이지만 사용한지 오래되었고, 때문에 주자와 정자가 규정한 한계 내에서 사용해야 한다는 인식이 공유되었다. 하지만 개인적인 삶에서는 풍수지리설에 의지하려 하기도 했고, 풍수지리설을 허망한 설로 비판하지만 어용 논리로 이용하기도 하는 인식의 측면이 전개 양상에서 나타났다. 이처럼 조선전기에 풍수지리설은 단선적 존재양태가 아니라 중층적 인식의 모습으로 다양하게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Fengshui-Jiri is an idea to understand and manage the land as the base of life and has been penetrated through ages and societies, and has formed the nature recognition system of Korean. Even if social functions and roles of Fengshui-Jiri have been changed over times, people were in accordance with Fengshui-Jiri upon the choice of space for life and the views of looking at nature.
In Goryeo Dynasty, Fengshui-Jiri had the most interesting feature which was an idea of the choice of the capital by which the capital was moved or newly chosen. In addition, Fengshui-Jiri coupled with DoCham emerged such as three capital system through the era of Goryeo Dynasty. Accordingly, idea of Fengshui-DoCham associated with argument of movement of a capital was continuously deployed and it’s one of characteristics in the period of Goryeo Dynasty. This Fengshui-Jiri was typical religious belief system in Goryeo Dynasty. But with the introduction of the doctrines of Chu-tzu in the late Goryeo Dynasty, a critical awareness about divination of ying and yang was expanded by rising nobility and the opposition against Fengshui-DoCham gradually had risen.
In Joseon Dynasty, as the doctrines of Chu-tzu was set as the ruling philosophy, Fengshui-Jiri was rejected as a trickery, but was maintained as a necessary technique to choose the location of tomb in order to comfort the late ancestors. Above all, Joseon Dynasty was established through a dynastic revolution and needed to break from the old regime of Goryeo Dynasty. It’s the most important point in the transition of awareness about Fengshui-Jiri. The change in awareness and methodology about Fengshui-Jiri was required.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contents and characteristics of transformed Fengshui-Jiri under the thinking systems of the doctrines of Chu-tzu in early Joseon Dynasty and investigate what the awareness of the Fengshui-Jiri expressed in aspects of the doctrines of Chu-tzu in the process of historical evolution.
The guidelines in awareness of Fengshui-Jiri in Joseon Dynasty were the discourse of Fengshui presented by Confucians of earlier generation. Since the doctrines of Chu-tzu was the dominant ideology, the discourse of Fengshui presented by Chung-Tzu and Chu-Tzu played a role as a guideline. Since Fengshui was private, it should be thrown away. But neo-Confucians have traditionally been discussing about Fengshui and therefore it couldn’t be ignored. The use of Fengshui-Jiri couldn’t be prohibited under the situation of the absence of alternative geographic technologies to Fengshui-Jiri. Therefore, efficiency of the Fengshui should be considered at the level in which the mind of devoted son, the beauty and ugliness of land and comfort burial could be considered.
While Fengshui-Jiri had been transformed under the thinking systems of the doctrines of Chu-tzu, the intellectuals in early Joseon Dynasty had dual attitudes about Fengshui and it’s the characteristics of this era. They criticized that Fengshui was a trickery, since public works were sometimes started due to Sangji (determine whether it’s fortune or misfortune according to the shape of land) and unnecessary controversy could be caused. In other hands, it’s claimed that nevertheless it couldn’t be eliminated and we must use Fengshui under the guidelines of Confucians in earlier generation.
Fengshui-Jiri was used to establish the ruling system of the doctrines of Chu-tzu. Fengshui-Jiri was trickery in view of the doctrines of Chu-tzu, but it was used as a government-controlled logic to suppress the Buddhism and consolidate the ruling system of Joseon Dynasty. However, whenever Fengshui-Jiri confused the system of the doctrines of Chu-tzu, it was rejected. Attitudes to criticize or accept Fengshui-Jiri could be variable according to the change of the political situations. In addition, dual attitudes were shown in terms of the personal life or the official awareness. In other words, it’s generally considered as trickery, but the idea had been shared that Fengshui-Jiri could be used within the limits prescribed by Chung-tzu and Chu-tzu since it had been used for a long time. But personal life has often tried to rely on the Fengshui-Jiri and it’s sometimes criticized as a false idea. Also it has been used as a government-controlled logic. It showed the dual sides of awareness. Thus, Fengshui-Jiri was present not as a single side of awareness, but was variously deployed as dual sided features of awareness.
분석정보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 주요 개정내역 | 변경 사유 |
|---|---|
| · 개인정보 처리 목적, 항목 및 법적 근거 수정 · 본인대상정보전송요구권 행사 방법 안내 · 개인정보 보호수준 평가 결과 추가 |
|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은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목 차
제1조(개인정보의 처리 목적)
제2조(개인정보의 처리 및 보유 기간)
제3조(처리하는 개인정보의 항목)
제4조(개인정보파일 등록 현황)
제5조(개인정보의 제3자 제공)
제6조(개인정보 처리업무의 위탁)
제7조(개인정보의 파기 절차 및 방법)
제8조(정보주체와 법정대리인의 권리·의무 및 그 행사 방법)
제9조(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제10조(개인정보 자동 수집 장치의 설치·운영 및 거부)
제11조(개인정보 보호책임자)
제12조(개인정보의 열람청구를 접수·처리하는 부서)
제13조(정보주체의 권익침해에 대한 구제방법)
제14조(추가적 이용·제공 판단기준)
제15조(개인정보 보호수준 평가 결과)
제16조(개인정보 처리방침의 변경)
제1조(개인정보의 처리 목적)
제2조(개인정보의 처리 및 보유 기간)
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제3조(처리하는 개인정보의 항목)
제4조(개인정보파일 등록 현황)
개인정보파일 검색(privacy.go.kr)| 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수집·이용 근거 | 수집·이용 목적 | 수집·이용 항목 | 보유·이용기간 |
|---|---|---|---|---|
| [학술연구정보 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
「개인정보 보호법」 제15조 제1항 제4호(계약 이행) |
회원 서비스 운영 |
ID, 비밀번호, 이름,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보호자 성명(어린이회원), 보호자 이메일(어린이회원) |
회원탈퇴시 까지 |
|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 제6조 및 같은 법 시행령 제6조 |
주문 및 결제 처리 |
ID, 비밀번호, 이름, 주소 |
5년 |
제5조(개인정보의 제3자 제공)
제6조(개인정보 처리업무의 위탁)
제7조(개인정보의 파기 절차 및 방법)
제8조(정보주체와 법정대리인의 권리·의무 및 그 행사 방법)
제9조(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제10조(개인정보 자동 수집 장치의 설치·운영 및 거부)
제11조(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안재호 |
- 이메일 : jinuk@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58 - 팩스번호 : 053-714-0195 |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송진욱 |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교육학술데이터본부 정광훈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제12조(개인정보의 열람청구를 접수·처리하는 부서)
제13조(정보주체의 권익침해에 대한 구제방법)
제14조(추가적인 이용ㆍ제공 판단기준)
제15조(개인정보 보호수준 평가 결과)
제16조(개인정보 처리방침의 변경)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