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기 양계 통치체제 연구 = (A) study on the management system of Yanggyae during the Goryeo dynasty
저자
발행사항
서울 : 숙명여자대학교, 2012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박사) --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 사학과 한국사전공 , 2012
발행연도
2012
작성언어
한국어
KDC
911.1 판사항(5)
DDC
951.901 판사항(21)
발행국(도시)
서울
형태사항
vii, 207 p. : 삽화, 도표 ; 26 cm
일반주기명
참고문헌: p. 171-177
소장기관
This Study deals with a process that the Goryeo Dynasty manage Yanggyae(兩界). I explained the management of northern region before be fromed Yanggyae and the management of there after be fromed Yanggyae.
Though that didn’t take possession of the land -north of Cheongcheongang(淸川江)-, King Taejo(太祖) expressed his determination about territorial expansion. Since then, a castles was consecrated in north of Cheongcheongang and northeast. Jindu(鎭頭) defend new territory, supply material and human resources there. King Taejo's exploration of northern region have an object in view, that new territory manage stable.
The place the Jindu were assigned to military and geographical location, also there was a strategic location for clear a passage to north of Cheongcheongang. Jindu is the beginning of local official. These experiences served as the impetus for send many kinds of local official(外官).
Yanggyae was formed before Byeongmasa(兵馬使) established the 8th year of King Sungjong(成宗)'s reign. We have to think two time about 'Yanggyae was completely formed' and 'separate 'Yanggyae was realized'. In this sense We can check the term 'the northwest(西北)'in the 1th year of King Sungjong(成宗)'s reign. In other words Yanggyae was formed the 2th year of King Sungjong(成宗)'s reign, that the local government system begin.
Ju(州)․Jin(鎭)․Heon(縣) of Yanggyae was formed in the 14th year of King Sungjong(成宗)'s reign and the 9th year of King Heonjong(顯宗)'s reign. Bukgyae(北界, northern border) was formed Ju․Jin․Heon with Dohobu(都護府) as the center, Donggyae(東界, eastern border) was formed Ju․Sokheon(主·屬縣) system.
I introduced Byeongmasa system to Yanggyae manage more effectively. Byeongmasa system is Byeongmasa hold a high rank, suryeong(守令) hold a low rank. Also Gamchangsa(監倉使) and Bundojanggun(分道將軍) was sent for supplement and observation of Byeongmasa system.
Byeongmasa have a great[enormous] power and a heavy workload, because the Goryeo Dynasty try centralization of power. Yanggyae was the only a border area, it mean the only a line of defense. So Yanggyae need subordinative command system, need fast response and right action.
Byeongmasa system change to invasion of Mongol. The Mongol established Ssangsungchonggounbu(雙城摠管府) in Donggyae(東界, eastern border, Dongnyeongbu(東寧府) in Bukgyae(北界, northern border). So part of Yanggyae lost. Ssangsungchonggounbu keep 100 years, but the sphere[extent] of jurisdiction was north of Hwaju(和州).
So Anjibsa(安集使) and Jonmusa(存撫使) manage south of Hwaju. Dongnyeongbu restitute to the 16th year of King chungryeol(忠烈)'s reign, since then Dojihwisa(都指揮使) and Jonmusa(存撫使) manage there.
이 논문에서는 고려가 다양한 외관을 통해 양계를 통치하는 과정을 양계가 성립되기 이전 북방지역의 통치와 양계가 성립된 후 병마사체제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통치 형태로 설명하였다.
태조는 순행·축성·설진으로 이어지는 성공적인 북방개척을 통해 청천강 이남에 한정되기는 하였으나 영토 확장에 대한 의지를 표출하였다. 이후 정종·광종·경종대에는 청천강 이북으로의 축성과 동북쪽으로의 축성도 진행되었다. 태조대 북방개척을 안정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파견된 진두는 새로운 영토의 방어는 물론이고 물적·인적 자원의 보급에도 상당한 역할을 하였다. 이는 태조의 북방개척이 물리적인 영토 확장에만 급급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미 확보한 영토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유지하는 데에 목적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진두가 파견된 지역은 군사적인 요충지이면서 개경과 서경을 연결하는 지리적인 중심지였고, 향후 북진을 염두해 두었을 때에 청천강 이북으로 진출할 수 있는 주요 통로였다. 진두는 양계에 파견된 외관의 시초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경험들은 양계가 성립하고 다양한 종류의 외관을 파견할 수 있었던 동력이 되었다. 성종 8년 동서북면에 병마사가 설치되었다는 기록을 통해 양계 성립을 그 이전으로 설정할 수 있는데, ‘양계’가 제도적으로 완전하게 성립하는 시점과 ‘양계’를 분리하여 인식하고 있었던 시점을 나누어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곧 성종 이전 북방개척이 활발히 진행되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고려가 어느 지역보다 먼저 이 지역을 관할하고 통제하고자 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의도는 성종 원년 ‘서북’이라는 직접적인 용어로 확인할 수 있으며, 전국의 지방제도 개편이 본격화되었던 성종 2년을 기점으로 하여 양계가 성립되었을 것이다.
양계의 주진현은 전국적인 군현개편 시기와 맞물려 성종 14년과 현종 9년에 州단위의 읍격 확보와 주·속현체계의 확립 등의 편제 과정을 겪었다. 성종·현종대에 걸쳐 완성된 양계 주진현의 구조는 북계는 안북대도호부를 중심으로 그 주위로 주진현이 둘러싸여 있고, 동계는 안변도호부를 중심으로 위아래로 길게 늘어져있다. 북계는 도호부를 중심으로 일정한 거리에 주진현이 편성되어 있어 관리가 용이하였고 동계는 도호부와의 거리가 먼 지역들은 주·속현체계가 반영되어 있다. 동계가 남북으로 긴 구조로 형성되어 있는 이유는 태백산맥이라는 지리적인 요인과 동해안으로의 동여진 침입 때문으로 생각할 수 있다.
양계 주진현 구조를 바탕으로 이 지역을 효과적으로 운영·통치하는 방식으로 병마사체제를 상정하였다. 병마사체제는 병마사를 정점으로 하는 구조로, 그 아래에 수령들이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병마사 조직의 기능을 일면 보완하고 일면 감시하게 위해 파견되었던 감창사와 분도장군도 양계 통치에 중요한 요소였음은 물론이다. 이처럼 고려가 양계를 통치해 가는 과정에서 병마사에게 과중한 업무뿐만 아니라 막강한 권한을 주었던 이유는 역시 중앙집권화를 신속히 이룰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병마사에게 주어진 막대한 권한으로 인한 위험 인자들을 감수해야 하는 어려운 결정이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통치체제를 고려 전 시기에 걸쳐 활용한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명확한 이유는 양계라는 특수한 지리적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 양계는 고려의 유일한 국경지대로, 이 지역을 방어하는 것은 국가의 안보와도 직결되는 문제이다. 곧 빠른 중앙집권화와 더불어 해당 지역에서의 일률적인 명령체계가 필요하였을 것이다. 국경지역의 특성 때문에 위험하고 돌발적인 상황이 발발하게 되었을 때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적절한 조치를 가장 빠르게 처리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던 것이다.
병마사체제가 중심이 되어 움직이던 양계 통치체제는 몽고의 침입으로 변화를 겪게 되었다. 몽고는 동북면 일부에 쌍성총관부를, 서북면에 동녕부를 설치하여 통치 대상인 양계지역 일부가 소멸되었고, 양계 통치체제였던 병마사체제도 붕괴되었다. 그러나 양계가 몽고에 의해서만 통치되었던 것은 아니다. 동북면의 쌍성총관부는 공민왕이 이 지역을 수복할 때까지 100여 년간 존속하였지만, 쌍성의 관할 범위가 화주 이북의 15주였으므로 화주 이남 지역인 현재 강원도 지역은 고려의 통치 아래 있었다. 곧 동북면은 쌍성총관부를 제외한 강릉도만이 동계로 인식되었다. 이 지역을 통치하기 위해 병마사 대신 동계안집사와 강릉도존무사가 파견되었다. 또한 서북면의 동녕부는 그 관할 범위가 이전보다 훨씬 넓었지만, 충렬왕 16년에 고려에 반환되었으므로, 이후에는 고려가 이 지역을 통치하였다. 서북면은 동녕부의 반환으로 물리적인 영역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주진현의 수가 급감하는 상황에서 동녕부처럼 서경을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동북면처럼 서북면도 병마사 대신에 서북면도지휘사와 평양도존무사가 파견되어 이 지역의 통치를 담당하였다.
이후 공민왕이 영토를 수복하면서 병마사체제가 다시 부활하였지만, 그 체제가 오래 존속하지 못하고 위상도 이전과 같지 않았다. 그러나 기존 양계 통치체제를 부활하려고 한 시도와 노력은 오랫동안 탄탄하게 다져진 병마사체제에 대한 신뢰와 자신감의 표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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