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호남지역 僧塔과 石匠 연구
저자
발행사항
서울 : 명지대학교 대학원, 2012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석사) -- 명지대학교 대학원 일반대학원 , 미술사학과 , 2012. 2
발행연도
2012
작성언어
한국어
주제어
DDC
709.51 판사항(21)
발행국(도시)
서울
기타서명
(A) Study on Monk- Stupa and Stonemason of Honam province in the Late Joseon dynasty
형태사항
v, 101 p. : 삽도 ; 26 cm.
일반주기명
명지대학교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지도교수 : 이태호.
참고문헌 : p.80-87
소장기관
The number of monk’s stone-stupa, built in the late Joseon dynasty, is over 2000. The regulation that only eminent monks, such as King’s Teacher(國師) and National Priest(王師), were allowed to build a stone stupa for commemorating their achievements, appeared to be faded in the late Joseon dynasty. As a result, building stone stupa for worshipping monk genealogy became common in this period. These phenomena seem to be triggered by Confucian authentic genealogy as well as ancestral worshiping rituals.
Stone stupas, built in the late Joseon dynasty, can be classified to three types, Stone Building Style(殿閣形), Stone Bell-shaped Style(石鐘形) and Stone Ball Shape Style(球形). These variations are based on the presence of roof stones as well as the body shape of stone stupas. Stone Building Style seem to be influenced by 16 National Priest stupas in Songkwang-Temple(松廣寺), Suncheon, Jeollanamdo. With 16 National Priest stone stupas’ influence, Building Style’s body is elongated, and the size of basements is abated in the 17th century. In 18th Century, an octagonal shape of body as well as roof stone gradually changed to a square form. This shape shifting can be related to royal tombs’ stone lanterns’appearance. 18th century’s Stone lanterns in royal tombs were altered to a square form.
Stone Bell-shaped Style was popular in the late 17th century. The initial examples appear to copy exact shape of the bell of the Buddhist temple. In order to this, artist meticulously carved the actual ornamental elements of the bell of the Buddhist temple to stone stupas’body. This Bell-shape stupa had maintained a stable appearance till 17th century. However, after 1700, Bell-shaped body’s lower part dimension was gradually dwindled, and the middle part dimension swelled out. As a result, Bell-shape turned to be an egg shape, and ornamental elements, which were used to be carved on the surface of the stupas, also disappeared.
Stone Ball Shape Style mainly built after the late 18th century, and since 19th century majority of stone stupas has followed this style. This style presented various variations in basement. Although Ball shaped body and octagonal roof maintained its original appearance, the basement varied with around, rectangular and octagonal shapes. Inaddition, small animal figures also attached to this basement in order to provide idiosyncratic identity to each stone stupa.
In the late Joseon dynasty, we can find written records of stone sculptors. In Honam province, the activities of three stone sculptors, Yu Ilrip (劉一立), Kim Haeseon(金海先), Seo Maksang(徐莫尙), are noteworthy. Yu Ilrip built three steles in 17th century. He mainly followed a traditional stele rendering style, in which a stele consists of t urtle base of a stone monument and the head of stele. However, his ability was not sophisticated enough to carve a lifelike quality of animal figures. He merely made a simplified and brief image. It seems to reflect the late Joseon dynasty’s stele style, falling into a mannerism stage.
Kim Haeseon’s works are found in Mihwangsa(美黃寺) and Daegeungsa(大興寺), all of whom locate in Haenam, Jeollanam-do. He modified the octagonal shape of Building style's body as well as roof stone to a rectangular form. In addition he also crated various figural images such as turtle, crab, bird, lotus flower images to stone stupa’s basements. Kim Haeseon also made steles, but it showed a certain degree of variation from traditional shape. Although Kim Haeseon carved a turtle base of a stone monument, stele’s head part was replaced by roof stone.
Seo Maksang organized in a stone stupa and stele building project with in Mihwangsa’s three monk sculptors. He built one building style and one bell shape style stupa. Like Kim Haeseon, Seo Maksang also inserted various animal and botanic images to the basement, but Seo Maksang’s image seem to contain more strong pictorial quality than Kim Haeseon’s. Seo Maksang also made steles, but its shape is totally different from traditional format. A turtle base of a stone monument was replaced by a square shape basement, and a stele’s head part also simple became roof stone shape.
조선후기에 건립된 승탑은 전국적으로 2,000여기에 이른다. 국사나 왕사의 예우를 받던 고승에 한해 승탑을 조성하던 전통적인 규범이 무너지고 승탑 건립이 일반화된 것이다. 이는 유교의 영향으로 법통설과 상장례의 변화가 주된 이유로 꼽힌다.
조선후기에 건립된 승탑은 탑신의 형태와 옥개석의 유무에 따라 전각형, 석종형, 구형으로 분류된다. 전각형은 17세기에 송광사 출신 16국사 승탑의 영향을 받아 탑신이 길어지고 기단부가 약화된 모습으로 제작되었다. 18세기에는 팔각의 탑신과 옥개석이 방형 평면으로 변화하였다. 이는 비슷한 시기 팔각에서 사각으로 평면의 형태가 변화한 왕릉의 장명등과 관련지어 볼 수 있다.
석종형은 17세기 후반에 많이 세워졌다. 초반에는 범종의 형태를 충실히 모방하여 유곽과 유두가 표현되었다. 하대가 넓고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안정감을 가지고 있던 석종형 승탑은 1700년을 전후로 변화가 나타난다. 탑신의 하대가 좁아지고 중앙부가 볼록해진 계란형으로 변화하여 안정감이 무너졌으며 표면의 조각도 사라졌다.
구형 승탑은 18세기 후반부터 건립이 증가하여 19세기에는 가장 많이 조성되었다. 구형 승탑은 특히 기단부가 다양한 변주를 보인다. 구형의 탑신과 팔각의 옥개석은 거의 변화를 보이지 않는 반면, 기단부는 평면이 원형, 사각, 팔각으로 다양화되었다. 또한 여러 가지 동식물상이 배치되어 단조로움을 피했다.
조선후기 호남지역에서는 석장 유일립, 김해선, 서막상이 두드러진 활동을 하였다. 유일립은 17세기 후반에 3기의 석비를 제작하였다. 유일립은 귀부와 이수를 결구한 전통방식의 석비를 건립하였다. 하지만 표현에 생동감이 많이 떨어지고 치석이 정교하지 못한 점은 점차 간략화․단순화 되어가는 시대적 흐름으로 보인다.
김해선은 해남 미황사와 대흥사에서 주로 활동하였다. 그는 전각형 승탑의 탑신과 옥개석을 팔각에서 사각으로 변형시켜 제작하였다. 그리고 기단부에 거북이, 게, 새, 연꽃과 같은 다양한 동·식물상을 입체감 있게 조각하였다. 그가 건립한 석비는 귀부를 가지고 있으나 이수가 개석으로 바뀌어 간략화 되어가는 형식을 보여준다.
서막상은 18세기 후반 해남 미황사에서 고승 세 명의 승탑과 석비 건립을 주도한다. 그가 제작한 승탑은 전각형 1기, 석종형 1기가 남아있다. 서막상 또한 기단부에 다양한 동·식물상을 조각하는데, 김해선에 비해 회화적인 요소가 훨씬 강하다. 그가 조성한 석비는 귀부가 방형의 기단으로, 이수가 옥개석으로 바뀌어 완전히 간략화 된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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