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剛山 관련 文學作品에 나타난 儒家的 思惟 硏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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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사항
서울 : 高麗大學校 大學院, 2012
학위논문사항
발행연도
2012
작성언어
한국어
주제어
발행국(도시)
서울
형태사항
ii, 324 p. ; 26 cm
일반주기명
지도교수: 朴性奎
참고문헌(p. 269-296)과 부록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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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기관
금강산 관련 문학작품에 나타난 유가적 사유를 고찰하였는데 본고는 금강산을 주제로 생산된 문학작품을 통해 문학에서는 명소를 문학적으로 어떻게 형상화하였는지를 살펴보고, 나아가서는 한국문학사의 지형도를 그려보고자 하는 의미에서 출발하였다. 이에 역사적 전개 과정 속에서 거시적인 금강산 문학작품이 지닌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미시적으로 신라, 고려, 조선 전기, 조선 중기, 조선 후기, 개화기로 나누어 분석ㆍ검토함으로써 각 시대별로 나타나는 특징을 고찰하였다.
본래 금강산 관련 문학작품은 신라시대 최치원부터 시작되었으나 본격으로 작품이 창작된 시기는 고려 후기를 거쳐 조선조에 들어와서 많이 창작되어, 627여 명이 문학작품을 남긴 것을 알 수 있었다. 한시 작품은 13,019여 수 이고, 산문 작품은 422여 편이다.
山名이 신라시대에는 상악, 개골산으로 불렀으나, 금강산이란 용어가 쓰인 기록은 󰡔화엄경󰡕에 처음으로 나오고, 동진시대 법기보살이 금강산으로 왔다는 설이 있고, 그 뒤로 민지, 최혜, 이곡 등이 금강산이라는 명칭을 기문, 서문, 비문에 사용하였으며, 당나라 때의 징관도 󰡔화엄경소󰡕에 금강산이라 명칭을 사용한 것을 알 수 있으니 금강산이란 명칭을 사용한 연대는 1350년 이전으로 소급하여 올라갈 수 있다. 그런데 저울 바탕에 “金剛山長安寺”란 명문의 새겨져 있으니 그 연대는 1350년이다.
또한 동진시대 법기보살이 금강산으로 온 기록에 대해서는 민지, 이곡, 당나라 때 사람인 징관은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삼국유사󰡕에서 불교 신앙의 상징물이 인도에서 신라로 직접 전해졌다는 설화가 있는데 이는 불교가 전래되기 전의 일이라고 一然은 附記했다고 했다. 그런데 이에 대하여 조선조 율곡 이이는 부정적으로 보고 있으므로, 서로 주장을 달리하는 두 학설이 있다.
고려 말 성리학의 수용과 함께 주희나 장식 등의 산수유기도 수용되면서 사대부의 전형적인 자연관이 나타났는데 산수 경물의 관찰을 통해 이치의 형태를 살피고 이의 감수를 통해서 심신을 수양하는 것이 그것이다. 또한 여말 사대부들이 지은 산수유기를 통해 불교와의 사상적 갈등 속에서 성리학이 수용되고 발전되는 양상을 엿볼 수 있었으며, 사대부의 자존 의식도 엿볼 수 있었다.
조선 초기의 유교 이념의 사회에서 사대부들은 불교를 배타적으로 보지 않는 성향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이는 아직 유교 이념이 확고한 뿌리를 내리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굳이 불교와 대결 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여말 선초의 사대부들은 강호를 벗하면서 유유자적하고 만족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이는 자연과 정치현실이 조화로운 연속체로 파악되며, 그 배후에 깔린 집권사대부층의 현실긍정과 낙관주의의 연장선상에 놓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성리학적 학문세계가 완숙되는 조선 중기에는 성리학적 이치와 연결하면서 금강산을 깨달음의 대상, 또는 道의 본원으로 금강산을 인식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이념 우위의 인식은 금강산의 명소를 두고 창작한 시문을 유가 사상적으로 연결시켜 이해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유가적 사유양태와 시문학적 형상화에서는 퇴계와 율곡의 기행시와 산수유기를 통해 유가의 문학적 논리를 살펴보았는데 눈으로 금강산의 아름다운 경치만 보지 말고 山水之趣, 즉 산수에서 흥취를 느끼고 도체를 인식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념 우위의 위치에 있는 사대부들은 금강산을 시문학적으로 어떻게 묘사하였는지를 살펴보았는데 16, 17세기에는 산수 자연의 경물을 관찰하여 만물의 이치를 궁구하였다. 퇴계 이황은 이기이원론을 주장하였고 율곡 이이는 이기일원론을 주장하면서 만물의 이치를 궁구하였다. 이것은 김창협과 김창흡에 이르러 인물성동론과 성범심동론으로 연결시켰으며, 국토 재발견으로 확대되어 금강산으로 많은 문인들이 유람하게 되었다. 유가 문인들은 금강산의 경계가 아름답고 청정하여 인간세계와 다른 仙境의 세계로 인식하였다. 티끌을 씻어내는 장소로서는 봉래산 보다 더 좋은 곳은 없는 것으로 생각하여 왔기 때문에 금강산으로 유람하여 마음을 청정하게 하고 그 眞境에서의 감회를 仙趣詩로 묘사하였다. 불교적 낙토로 금강산을 시적으로 형상화한 것을 살펴보았다. 여기서는 승려들이 창작한 시문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유가적 사대부로서 불가적 색채가 비교적 짙은 김창흡과 최창대, 그리고 이덕수를 위주로 살펴보았다. 불교 색채가 짙은 유가문인들은 금강산과 그 사찰에 대하여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17, 18세기에 있어서 금강산을 묘사하는 이론적 기반은 무엇이고 금강산을 형상화하는 시적 논리는 무엇인지를 살펴보았다. 낙론계에서는 인물성동론을 주장하고 성범심동론을 주장하였는데 사람과 사물의 본성이 같다고 한 데서 사람만을 대상으로 궁구하던 단계에서 탈피하여 자연에 관심을 돌려 우주만물을 탐구의 대상으로 삼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이같이 사람과 사물의 본성이 같고 성인과 일반인의 본심이 같다고 하는 사상으로 인하여 낙론계에서는 중인ㆍ서리나 여항문인들과도 교유를 하게 되었다. 요컨대 조선의 자연, 인물과 풍물, 풍속 등의 시어를 사용하여 문학과 예술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사실주의적 예술이 꽃피게 되었다. 금강산의 문학적 형상화 방법을 살펴보았는데 장유ㆍ김수증ㆍ김창협ㆍ김창흡 등과 그 문하를 중심으로 창작된 작품을 통해 문학적 논리를 살펴보았다. 그들의 시문론의 핵심적 용어는 天眞, 天機, 自然 등으로 요약됨을 알 수 있었다. 시인의 내면에서 천기가 표출되어 사실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 좋은 시란 뜻이다.
낙론계 그룹의 작가와 주요 작품을 살피고 농암 김창협의 시를 예로 들어 검토해 보았다. 이에 앞의 문학적 논리에 어긋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리의 산천이나 속어를 시어로 활용하여 고유한 산천경계를 묘사함으로써 조선적 시풍으로 형상화하였음을 김창협의 천기가 발현된 작품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眞境에서 형사와 신정으로 作詩한 진시이다. 김창흡과 그 문하의 작품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김창협의 <구룡연>에서는 첫째 못에서부터 아홉째 못까지 묘사하였는데 못의 특징별로 여실히 묘사하였다. 대표적으로 첫째 못 1수만 시 형식을 분석하여 보았는데 黏이 맞지 않아 고체시로 보아야 함을 알 수 있었는데 시를 비평할 때에 성조의 높고 낮음과 字句의 工拙을 논하지 않고 境界를 진실하게 묘사하고 정서를 충실하게 표현한 시를 천하의 좋은 시라고 보는 것이 이 시기의 작시 경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형사와 신정으로 비평의 기준으로 삼고 인물성동론과 성범심동론으로 그들의 이념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에는 민우수ㆍ박윤원ㆍ황경원 등의 금강산 관련 문학작품을 통해 심미적으로 산수 자연을 이해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심미적 자연 묘사는 17세기 말 18세기 초에 이르러서는 중국의 성리학을 완전히 이해한 바탕 위에서 산수 자연에 대한 인식도 바뀌게 되었다. 이와 같은 심미적으로 자연을 이해하는 관점은 18세기 후반으로 이어졌다. 18세기 초의 김창협과 김창흡 등의 낙론 학맥의 계보와 사상적 동향은 낙론계 학맥의 주류를 이루었던 이재ㆍ홍계희ㆍ임성주ㆍ김원행ㆍ황윤석ㆍ박윤원ㆍ홍대용ㆍ박지원ㆍ민우수ㆍ김종후ㆍ김종수ㆍ김양행 등의 북학파로 이어진다. 그 뒤에는 이익과 정약용 등의 실학사상으로 이어진다.
산수 유람의 확산과 탈이념화에서는 3개의 절로 나누어 살폈는데, 홍대용과 박지원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조선 후기로 내려오면 한시에 나타난 산수유람의 의미는 이념적 색채가 탈색되면서 자연 역시 우주만물의 원리를 궁구하는 道體로서가 아니라 遊賞의 공간, 놀이의 공간으로서의 성격이 강해져서 세밀한 사실적 묘사를 하려는 의미가 강했다. 이러한 기행한시에 나타난 성격 변화는 자연스레 작품의 내용과 형식의 변화를 끌어내게 되어, 북학파 또는 실학파의 한시는 그 이전 시기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되었다. 박지원이나 정약용 등의 작품에서 그러한 사실을 엿볼 수 있다. 박지원 문하의 북학파들은 장편시를 창작하였다. 박지원과 유득공, 박제가 등이 그들이다. 박지원은 70구의 장편시는 그의 득의작이라고 할 수 있으며, 박제가와 유득공도 50운 100구라는 장편시를 창작하였다. 이렇게 장편으로 이루어진 것은 19세기 금강산 기행시가 개인적 체험을 중시한 경향이 있기 때문에 작품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사상적 움직임은 박지원과 홍대용의 단계에서는 아직 조선사상계의 일각을 점할 뿐이었으나 그들을 뒤이은 이서구ㆍ남공철ㆍ서유구ㆍ김정희 등이 활동하는 19세기 전반에는 서울의 경화사족 사이에 크게 유행하기에 이르렀다. 북학파는 조선의 문화건설 방향을 둘러싼 당시의 시대적 고민에 대한 하나의 포괄적 해법으로 제시된 것인데 이러한 정치의식 위에 전통적인 것과 새로운 것의 조화와 융합을 주장하였다. 변화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시대적 대응으로써 북학론이 고창되고 여기에 새로운 物論과 人間論을 갖춘 사회사상 그리고 경제지학을 중시하는 학문론과 법고창신의 새로운 시문풍이 결합되어 이들의 사상을 이루었다
한편 소론 경화사족들은 북학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서학에서 시대적 고민의 해법을 찾았던 남인 일각의 사상적 모색이나 양명학적 지향을 북학으로 연장시켜 갔다. 조선 후기 실학파의 문인들은 낙론계 그룹 문인들이 형사와 신정으로 物을 묘사하되 형사와 신정의 비중을 대등하게 하거나 신정에 좀 더 비중을 두고 있는 것과 달리 실학파들은 형사와 신정으로 物을 묘사함에 있어서 형사 쪽으로 비중이 경도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作詩한 것이 마치 作畵한 것과 같이 외면의 형상화에 치중하였는데 이것은 바로 시화일치적인 사유이며 실학적으로 관찰하는 자세이다.
유상ㆍ체험의 공간으로 자연을 이해하였는데 19세기 이전의 기행시는 개인적인 기행 체험의 성실한 보고 보다는 여행의 흥취를 표출하는 도구로서의 성격이 강하였다. 그래서 여정이나 경물 등에 대해 서술을 하는 경우에도 작품의 전체적인 흐름과 조화를 깨지 않는 정도에서 이루어졌다. 반면에 체험 기록에 충실한 작품들은 자신의 감흥이나 감회를 드러내고자 하는 목적보다는 금강산에 가 보지 못한 이들에게 간접 여행을 체험하게 하려는 의도가 강하게 작용하였다. 따라서 출발에서 回程까지의 여정뿐만 아니라, 여행 중에 견문한 것을 상세하게 기록하는 것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국토에 대한 긍지와 민족의 정서 발현에 대해 살펴보았는데 19세기 사대부 문인들이 전통적인 유람 풍속 속에서 국토와 민족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였다면 육당과 춘원은 국토 순례나 민정 사찰을 통해 민족혼과 국가 의식을 고취하였다. 즉 주체적 민족의식에 눈뜬 전통사상으로서의 조선 후기 실학사상이 개화사상으로 피어났고, 이 개화사상을 이어받은 육당과 춘원이 문화적 민족주의, 민족적 계몽주의로 확대 심화하였다.
금강산 관련 문학작품의 미적 특질을 살피기 위해 단편시와 장편시, 산문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문학작품에 나타난 미적 특질이 단편시의 경우, 특히 절구에서는 대상과 작가가 합일되어 무아지경을 이루는 것이 전편에서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반면에 장편시나 산문에서는 자연 사물의 대상에 대해서 작자의 시상이나 정서가 유아지경으로 전개되다가 어느 시점에 가서 흥취가 고조되면 대상과 작자가 합일되어 혼연일체가 되어 무아지경을 이루니, 문장에서 부분적으로 무아지경이 나타남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이 장편시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수사적인 측면과 내용적인 측면을 보면, 시대적인 이념이 반영됨을 알 수 있었다. 짧은 시보다는 긴 장편시나 산문에서 좀 더 자세히 유가적 사유를 언급한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17, 18세기 이후로 내려오면 한시나 한문산문, 한글산문, 또는 기행가사에서 대부분 장편을 이루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우리의 국토지리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작품을 기록할 때 우리의 역사, 풍속, 고적, 설화, 풍물, 민속, 언어 등의 전반적인 문화를 자세히 묘사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의 동인은 문학적 측면, 정치적 측면, 사상적 측면, 종교적인 측면, 문화적 측면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문학적 측면에서 보면 국외적으로는 명대 이래 중국에서 많은 산수유기가 창작되고 방대한 選集으로 편찬되었다는 점이고, 국내적으로는 명말 청초의 인물인 원굉도나 왕사임의 소품체 산수유기가 유입되어 18세기 조선에서 각광을 받았다는 점이다.
정치적인 측면에서 보면 국외적으로는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서서 정권이 교체되었으며, 이에 국내에서는 숭명배청의 이념을 견지한 조선 사대부들이 중국을 오랑캐의 나라가 되어 버렸다고 멸시하게 되면서 자국의 고유문화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사상적 측면에서는 신라시대의 신선사상과 고려시대의 불교사상, 조선시대의 성리학 사상, 호락논쟁, 개화사상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특히 조선 중기에는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의 철학 사상은 18세기로 오면 성범동이론과과 인물성동이론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인식이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로 내려오면 북학과 실학으로 연결되었다. 또 실학사상은 개화사상으로 피어났고, 이 계화사상을 이어받은 이광수와 최남선은 문화적 민족주의, 민족적 계몽주의로 확대 심화시켜 ‘朝鮮主義’로 응결시켰다.
종교적인 측면에서는 금강산의 명칭에서도 확인 되는 바 금강산에는 유교, 불교, 선교사상이 공존하여 유불선 삼교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금강산은 佛國土나 樂土로 인식되어 종교인, 사대부, 시인, 묵객, 일반민중, 국외인 등등 수많은 사람들이 순례하면서 많은 문학작품을 생산하였다.
문화적 측면으로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이후에 조선 고유문화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었다. 이는 국토지리의 재발견으로 연결되면서 많은 문인들이 산수유람을 통해 특별한 체험을 하였다. 이처럼 금강산에서 문학작품의 창작이 성행하게 된 의미와 요인은 시대마다 차이가 있으며 상당히 복합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금강산 관련 문학의 창작이 성행한 것은 일찍이 공자가 말했던 ‘樂山樂水’의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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