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개성상인의 상업적 전통과 자본 축적
본 논문은 한국사에서 조선시대 중세 상인이 개항과 강점을 거치면서 근대 상인으로 전환하고 나아가 해방 이후 남한 사회에서 대자본가로 성장해 간 사례를 개성상인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본 것이다. 개성상인은 조선전기 형성되기 시작하였고 조선후기에는 국제무역 등을 통해 크게 발전하였다. 그리고 개성상인은 오랜 역사 속에서 자신들의 상업활동에 적합한 상업 관습을 발전시켰다. 이는 근대 이행기 그들이 쇠퇴하지 않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성장해 갈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개성상인은 15세기 중반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조선 건국과 한양 천도 이후 개성은 고려 수도로서의 위상을 잃었다. 당시 개성인들 가운데 일부는 한양으로 옮기거나 또는 고향으로 낙항하면서 개성을 떠났다. 그러나 끝까지 개성에 남은 사람들은 15세기 중반부터 생계수단으로 상업을 선택하였다. 개성의 상업적 기반이 서울처럼 튼튼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장사를 하기 위해 개성을 떠나서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이 무렵에는 새로운 상업방식으로 인해 시행착오를 겪었고, 이 과정을 통해 개성상인은 자신들만의 상업 관습을 형성해 갔다.
조선후기 개성상인은 조선-淸-일본 간에 이루어진 삼각무역의 핵심 상인으로 활동하면서 크게 발전하였다. 당시 조선은 인삼, 중국은 白絲, 일본은 銀이라는 확실한 수출품을 보유하고 있어서 국제무역은 활기를 띨 수 있었다. 개성상인은 삼국간 무역에서 인삼과 은을 중국에 수출하여 白絲를 수입하였고, 일본에는 인삼과 白絲를 수출하고 그 대금으로 일본 銀을 받았다. 이러한 국제무역 구조에서 개성상인은 핵심 상인으로 활동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국제무역은 18세기 중반 이후 조선의 인삼과 일본의 銀이 고갈되면서 침체에 빠졌다. 이에 개성상인은 19세기 이후 인삼의 인공 재배에 자본을 투자하기 시작하여 상업자본을 蔘業자본 전환하였다. 그들은 인공 재배한 인삼으로 紅蔘을 생산하고 이를 중국에 수출하기 시작하면서 19세기 대 중국 무역은 다시 활기를 띠었다. 특히 19세기 인삼은 사람이 경작한 것이고 홍삼은 그것을 쪄서 말린 것이다. 즉 이 시기 인삼은 개성상인이 자본을 투자하여 생산한 상품안 것이다. 홍삼을 생산하면서 개성상인은 중세상인에서 근대상인으로 전환하기 시작하였다.
개항과 일제강점기 개성상인과 개성 商權은 전혀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발전하였다. 이는 그들의 선조가 발전시킨 다양한 상업 전통에 힘입은 바 컸다. 본 논문에서는 구체적으로 상인 재생산과 관련하여 사환?지방출상, 핵심 상품으로 인삼, 신용제도로서 時邊에 대해 살펴보았다.
개성 사환은 개성상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수련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개성에서는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10대 초반까지는 기본적인 교육을 시키고 그 후에는 상점의 使喚으로 들어가서 장부를 기입하는 방법, 물건을 취급하는 방법, 고객을 응대하는 방법 등을 배웠다. 사환 생활을 통해 장사의 기초를 배운 후 20세 전후가 되면 독립하여 장사를 시작하였다. 이들 젊고 패기에 넘치는 신진 개성상인은 주로 다른 지역으로 진출하여 장사를 시작하였다. 이를 ‘地方出商’이라 한다. 젊은 상인은 자금이 부족하므로 상점 주인 등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데, 이때 자본을 빌려준 사람을 ‘主人,’ 그 자금으로 장사를 하는 젊은 상인을 ‘差人,’ 이 둘 관계를 ‘主差同事’로 불렀다. 이는 일종의 ‘파트너쉽’이다. 개성상인은 사환, 지방출상을 통해서 재생산되었다.
개성상인의 핵심 상품은 人蔘이었다. 18세기 후반 이후 인삼 재배 기술은 전국적으로 보급되었지만, 인삼 경작에는 6년간 막대한 자금을 고정시켜야 하는 문제가 있고 이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았다. 개성상인은 상당한 상업 자본을 축적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용 문제를 해결하고 19세기 이후 개성을 인삼 주산지로 만들었다. 당시 개성상인은 홍삼을 중국에 수출하고 그 대가로 중국에서 상품을 수입하여 조선에 판매하는 방식으로 큰 수입을 얻었다. 대한제국 황실과 일제는 홍삼전매제를 시행하지만, 인삼 경작까지 독점하지는 못하였다. 그래서 개성상인은 일제하에서도 인삼을 계속 재배하였고 인삼은 계속해서 그들의 핵심 상품으로 남을 수 있었다.
개성상인은 그들만의 고유하고 독특한 신용제도인 時邊을 갖고 있었다. 시변의 특징은 ①지역적으로 개성을 기반으로 하여 개성상인만이 이용할 수 있고, ②무담보 신용대출이며, ③貸借는 반드시 중개인을 통해서 하고, ④최대 대출 기간은 5개월 혹은 7개월이었으며, ⑤차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차입에 앞서 대출이 있어야 했다. 이런 특징을 보면 시변은 단기의 무담보 신용 대출로 대출 절차도 단순하여 매우 훌륭한 상업 금융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시변의 이율은 상업 동향에 따라 월별로 또 日別로 변동하였다. 대개 상업활동이 왕성한 9월-12월의 이율은 3월-7월의 이율보다 높았고, 또 같은 달 내에서도 5-6일 간격으로 이율이 점차 하락하였다. 근대적인 금융기관이 개성에 설립된 이후 시변 이율은 은행 금리의 영향을 받으면서 하락하였다. 그 결과 개성에 은행이 설립되었음에도 시변은 일제하에서 여전히 활용되었다.
개성에는 대자산가가 많았다. 이들은 일제하에서 근대적인 기업활동에 관심을 갖고 자본을 투자하거나 직접 회사를 세워 경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제하 개성상인들의 근대 기업활동은 그들의 경제력에 비하면 다소 부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개성상인들이 본격적으로 대기업을 설립한 시기는 해방 이후이다. 현재 개성 출신이 세운 기업들은 개성상인의 상업적 전통에 입각한 기업 경영으로 그들만의 독특한 기업 문화를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처럼 개성상인에 대한 연구는 중세상인이 전통을 따르면서 근대 대자본가로 전환해 간 사례로서 한국 자본주의 기원, 자본가 유형 등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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