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지식청년 상산하향전말에 관한 연구 = Chinese Educated Youth went to the Countryside for a Book Study of Vision
《중국 지식청년 상산하향전말》에 관한 연구
Chinese Educated Youth went to the Countryside for a Book Study of Vision
중어중문학과 팽 가 명
지 도 교 수 김 소 현
20세기중기, 중국 도시와 농촌에서 발생한 지식청년 상산하향은 공화국의 역사상 큰 사건이었다. 그 것은 한 세대의 마음속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 역사는 50년대에서 80년대까지, 27년 동안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공화국의 힘겨운 발걸음과 함께 다양한 과정을 거쳤다. 그 시기동안, 사람들은 가장 늘게 받는 것은 "문화대혁명"기간의 상산하향 운동이었다. 많은 하향인구와 광범한 영향, 사회적인 파급효과 등은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중국 지식청년 상산하향은 50년대 중기부터 시작되었다. 그 것은 도시와 농촌에서 날로 증대되는 취업 압력과 농업합작화운동이 왕성하게 일어나는 사회적 조건하에 제출되었다. 그 기본적인 동기는 도시와 농촌의 실업 문제 해결과 낙후된 농업 생산 상황의 개선을 서로 결합해서 중국 도시와 농촌의 취업 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탐색하는 것이었다. 먼저, 도시와 농촌의 지식청년이 농촌으로 가야하는 이론적인 근거이다. 민주혁명시기 또는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시기를 막론하고 모택동은 언제나 노동자농민과 서로 결합하는 길을 걷는 것은, 지식인의 사상개조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이고, 또한 무산계급 지식인이 성장하는 기본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신 중국이 성립된 후에, 당과 정부가 도시와 농촌의 지식청년들이 귀향하여 농업에 종사할 것을 제창한 것은, 그리고 그 후에 상산하향 할 것을 제창한 것은 모택동 동지의 이러한 일관된 지도사상과 분리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일찍이 1939년 5월 4일, 모택동은 연안(延安)의 청년대중이 "5·4운동" 20주년을 기념 하는 대회에서 연설 할 때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중국의 반제반봉건의 인민대오 중에는, 중국 지식청년과 학생 청년으로 구성된 군대가 있다. 이 군대는 규모가 상당히 크고, 죽은 자를 포함하지 않고도 현재 수백만에 이룬다. 이 수백만의 군대는 반제반봉건의 방면군(方面軍)이며, 또한 중요한 방면군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방면군만을 의지하기에는 아직 불충분하다. 이 방면군만을 의지하면 적을 이기지 못할 것인데 왜냐하면 그 들은 아직 비주력군대이기 때문이다. 주력군대는 누구인가? 바로 노동자농민대중이다. 중국의 지식청년과 학생 청년들은, 반드시 노동자농민대중 속으로 들어가서 전국 인구의 90%를 차지하는 노동자농민대중을 동원하고 조직해야한 주력군대가 없이, 오직 지식청년과 학생 청년들로 구성된 군대에 의지하여, 반제반봉건의 승리를 달성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전국의 지식청년과 학생 청년들은 반드시 광범한 노동자농민대중과 서로 결합하고, 그 들과 일체가 되어야 강력한 군대를 구성할 수 있다".
모택동은 당시에 노동자농민대중과 결합하는 것에 반대하는 반동적인 조류를 비판한 후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며칠 전에, 나는 짧은 글 한편을 썼다(즉《5·4운동》), 그 글에서 나는 이러한 말을 했다: '혁명적 또는 비혁명적 또는 반혁명적 지식인의 최후 구분 점은 바로 그 들이 노동자·농민대중과 결합하기를 원하는가의 여부다.' 나는 여기서 하나의 표준을 제기했으며나는 그것이 유일한 표준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청년이 혁명적인지 그렇지 않은지, 무엇을 표준으로 할 것인가? 어떻게 그것을 분별할 것인가? 오직 하나의 표준만이 있다. 바로 그가 광범한 노동자농민대중과 서로 결합하기를 바라는지, 그리고 그것을 실행하였는지를 보아야 한다."
1945년 4월 24일, 모택동은 중국공산당 제7차 전국대표대회의 정치보고에서, 다음과 같이 요구했다. "중국의 광범한 혁명지식인들은 당연히 자신과 농민이 서로 결합해야할 필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농민은 그 들을 요구하며, 그 들의 원조를 기다리고 있다. 그 들은 마땅히 열정적으로 농촌으로 가서, 교복을 벗고 농민의 옷으로 갈아 없어야하며, 어떠한 작은 일을 시작하더라도 안타깝게 생각하지 말아야한다. 그것으로부터 농민의 요구를 이해하고, 농민을 각성시키고 조직시키는 것은 중국민주혁명의 완성을 위한 중에 매우 중요한 일, 즉 농촌의 민주혁명과 분투이다."
모택동이 제출한 지식인은 반드시 노동자농민과 서로 결합해야 한다는 사상은, 중국 민주혁명 운동의 과정에서 철되었을 뿐만 아니라, 신 중국 성립 후의 수십 년 동안 사람들 가운데서 광범하고 지속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지식청년 상산하향을 창도한 이론적 근거와 정치적 구호가 되었다.
다음에, 모택동이 농촌으로 가는 호소를 발표하다. 1955년, 모택동이 지도하고 동원한 농업합작화운동은 드높은 기세로, 공전의 규모와 빠른 속도로 발전했으며, 가는 곳마다 전체 마을의 농민이 단체로 농업합작사에 가입을 신청하는 상황이 나타났다. 합작사의 총수는 1955년 6월의 60만 개로부터 연말에는 190만 개로 급증했으며, 농업합작사에 가입한 농가가 전국 농가의 총수에서 차지한 비율은 14.2%부터 63.3%로 급증했다. 농업합작화가 신속하게 실현되는 결정적인 순간에, 농업합작화 과정에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모택동은 직접《중국 농촌의 사회주의 고조》라는 책을 주관하고 편집했으며, 또한 그 중에서 많은 문장에 부연 설명을 달았다. 이 책을 편집한 목적은, 첫째 농업합작화운동을 통해 각 전선에서의 우경(右傾) 보수적 사상을 비판하는 것으로, 모택동은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현재의 문제는 원래 노력을 통해서 달성할 수 있는 일을,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달성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둘째 어떻게 농업사를 잘 해결하는가를 통해 “합작사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합작사를 운영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합작사를 어떻게 운영하는가에 있어서 당시에 많은 문제에 직면했고, 그 중 보편적인 문제는 바로 회계원과 작업량을 기록하는 인원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모택동 동지는《농업합작사의 변론과 현재의 계급투쟁》이라는 문장 중에 다음과 같이 부연 설명하였다:" 전국의 합작사에서 몇 백만의 회계원이 필요한데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사실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수만은 초등학교의 졸업생과 중학교의 졸업생을 동원하여 회계원으로 일하게 하면 된다"라고 말하였다.
그는 하남(河南)성 겹현(郏縣) 이씨 집성촌의《한 향에서 합작화계획 진행한 경험》이라는 문장을 본 후에 매우 기뻐했다. 이 마을은 농업사를 조직할 때, "중견(中堅)을 다투고 글자를 아은 사람을 쟁탈하는" 상황이 나타났으며, 향 정부는 통일적으로 계획하여, 그때까지 진학 하지 못한 7명의 중학교 졸업생과 25명의 초등학교 졸업생을 각 합작사에 합리적으로 분배하여, 회계원과 작업량을 가록하는 인원이 부족한 문제를 해결하였다. 이에 대해 모택동 동지는 다음과 같이 부연 설명을 썼다.
"그 중에 중학생과 초등학교의 졸업생을 조직하여 합작화에 참가시킬 것을 제출한데 각별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 농촌으로 가서 일을 할 수 있는 모든 지식인은, 반드시 즐겁게 그곳으로 가야 한다. 농촌은 광활한 대지이며, 그곳에서 충분히 능력을 발휘할 여지가 있다."
모택동의 이 부연 설명은 널리 지속될만한 호소력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은 지식청년 상산하향을 전국범위로 실시하는 것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그 이후 20여 년간 각지 정부가 지식청년 상산하향을 조직하고 동원하는 지도사상이 되었고, 또한 수많은 도시와 농촌의 지식청년 상산하향을 격려하는 정신적 동력이 되었다.
주요어: 중국 현대사, 문화대혁명, 상산하향 운동, 농업합작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정신적
분석정보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 주요 개정내역 | 변경 사유 |
|---|---|
| · 수탁업체 콘소시엄 기관명 및 위탁기간 명시 | · 제6조(개인정보 처리업무의 위탁) 구체화 |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은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제1조(개인정보의 처리 목적)
제2조(개인정보의 처리 및 보유 기간)
제3조(처리하는 개인정보의 항목)
제4조(개인정보파일 등록 현황)
제5조(개인정보의 제3자 제공)
제6조(개인정보 처리업무의 위탁)
제7조(개인정보의 파기 절차 및 방법)
제8조(정보주체와 법정대리인의 권리·의무 및 그 행사 방법)
제9조(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제10조(개인정보 자동 수집 장치의 설치·운영 및 거부)
제11조(개인정보 보호책임자)
제12조(개인정보의 열람청구를 접수·처리하는 부서)
제13조(정보주체의 권익침해에 대한 구제방법)
제14조(추가적 이용·제공 판단기준)
제15조(개인정보 처리방침의 변경)
제1조(개인정보의 처리 목적)
제2조(개인정보의 처리 및 보유 기간)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
제3조(처리하는 개인정보의 항목)
제4조(개인정보파일 등록 현황)
개인정보파일 검색(privacy.go.kr)| 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정보추제 동의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
제5조(개인정보의 제3자 제공)
제6조(개인정보 처리업무의 위탁)
제7조(개인정보의 파기 절차 및 방법)
제8조(정보주체와 법정대리인의 권리·의무 및 그 행사 방법)
제9조(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제10조(개인정보 자동 수집 장치의 설치·운영 및 거부)
제11조(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안재호 |
- 이메일 : jinuk@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58 - 팩스번호 : 053-714-0195 |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송진욱 |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교육학술데이터본부 정광훈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제12조(개인정보의 열람청구를 접수·처리하는 부서)
제13조(정보주체의 권익침해에 대한 구제방법)
제14조(추가적인 이용ㆍ제공 판단기준)
제15조(개인정보 처리방침의 변경)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