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수 시에 나타난 주체와 타자의 관계 양상 연구
저자
발행사항
서울 : 고려대학교 대학원, 2012
학위논문사항
발행연도
2012
작성언어
한국어
주제어
발행국(도시)
서울
형태사항
206 p. ; 26 cm
일반주기명
지도교수: 최동호
참고문헌: p. 196-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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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기관
이 논문은 김춘수의 시에 나타나는 다양한 시적 변화를 주체와 타자의 관계 방식을 통해 해명하는데 목적을 두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김춘수 시 연구가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초기시나 중기시와 달리 후기시가 상대적으로 연구되지 못했다는 문제의식 아래, 이 논문은 김춘수 시 전체를 연구의 대상으로 삼아 주체가 타자와 어떠한 방식으로 관계하는가를 유형화하고 김춘수 시에 나타나는 단절적이거나 대립적인 시적 경향이 형성된 근본기제를 추적하였다. 특히 타자 인식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이 논문은 김춘수 시에 나타나는 시적 주체를 고립적이고 폐쇄적인 주체로 제한시키지 않고 보다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에서 접근해 김춘수 텍스트 속에 내재된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인식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정립되고 변화되었는지를 밝히고자 했다.
2장에서는 김춘수의 초기시에 나타나는 주체와 타자의 관계 양상을 살펴보았다. 1절에서는 그동안 감상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시어의 빈번한 출현과 자연 풍경의 소묘라는 점을 이유로 시적으로 미숙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김춘수의 초기시집을 위주로 다루었다. 이러한 김춘수 초기시의 특성은 보다 적극적인 시각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춘수는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진 20세기 전반기를 모든 가치가 해체된 시대로 인식하고, 시에서의 해체 현상을 문제시한 시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시작 초기부터 시의 해체현상을 진지하게 사유하며 시의 형식(태)에 대한 중요성을 자각했고, 전통을 바로 찾아 시의 현대적인 형태를 세우고자 노력했다. 전통에 입각한 시의 현대적 형태는 김춘수의 초기시에서 소묘의 형식과 전통적인 시어, 정서 등으로 모색되었는데, 이는 진보적이고 합리적인 20세기의 세계관을 회의하고 반성하는 주체를 통해서 이루어진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황폐해진 역사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뚫고 나아가기 위해 김춘수는 잡담, 호기심, 애매함이라는 타자성에 물들지 않고 침묵의 소리를 듣는 주체의 모습을 발견하고 있었다. 2절에서는 전쟁체험을 통해 ‘죽음’이라는 현실적인 상황에 직면한 주체가 유한자로서 경험하는 불안과 고독을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살펴보았다. 죽음은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각자의 것인데, 이 ‘죽음’이라는 사건 속에서 ‘그들’, ‘이웃’으로 불리는 타자들은 이해되며, 필연적이거나 특정한 계기 없이도 언제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보편적이고도 익명적인 존재들로 다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경우의 시들에 나타나는 타자들은 인격적인 관계로 주체와 관계하기보다는 ‘죽음’의 문제 속에서 언제나 “나”의 실존의 근본적인 구조틀로서 기능했다. 3절에서는 사물의 이름을 언어로 명명하고 호명하는 주체를 분석하였다. ‘죽음’을 통해 자기 실존의 문제를 절감하면서 존재의 본래적 의미를 찾고자 한 주체의 관심이 언어, 곧 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 것은 시의 본질을 밝히는 일은 존재의 빛을 밝히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일상적으로 타성화된 언어가 아닌 사물의 본질을 열어 밝힐 수 있는 언어를 추구한 주체는 그러나 언어의 이중성을 자각하게 되면서 언어가 미처 다 포섭하지 못하는 비가시적 세계를 인식하고 언어의 한계성에 절망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김춘수가 ‘관념’에 절망하게 되는 계기로 작동하며, 김춘수의 시세계를 다른 방향으로 전환하게 만들었다.
관념과 의미에 대한 절망과 한계는 김춘수의 시를 다른 방향으로 옮겨가게 만든 요인이었다. 3장에서는 이러한 시적 변화가 나타난 김춘수의 중기시를 대상으로 그의 시에 나타나는 해체적이고 전위적인 특성을 주체와 타자의 관점에서 접근했다. 1절에서는 시집 󰡔타령조․기타󰡕를 중심으로 ‘리듬’과 ‘이미지’에 경도된 시들을 살펴보았다. 먼저 「타령조」 연작에서는 ‘사랑’의 불가능성, 즉 타자의 상실로 인해 주체가 겪는 균열을 확인할 수 있었다. 타자를 상실한 주체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균열을 일으키게 되는데, 그것은 시에서 ‘타령’이라는 전통의 가락을 빌려 주체의 한(恨)과 절망감을 흥얼거리는 형식으로 표출되었다. 시적 주체의 ‘넋두리’는 일정한 의미보다는 ‘리듬’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것은 마침표가 없이 쉼표를 사용하고 서로 다른 의미와 속도를 보여주는 술어들을 교차하거나 반복하는 방법을 통해 미완의 되풀이 구조로 구체화되었다. 한편, 시의 의미나 주제, 대상에 대한 집중이 현저히 약화된 이미지 중심의 시들도 확인해볼 수 있었다. 이 경우 주체는 시의 배면으로 점차 사라지는 경향을 드러냈다. 이 같은 이미지 중심의 시는 타자와 역사현실이 배제된 ‘무의미시’를 예비한 실험적 면모를 보여주었다. 2절에서는 ‘무의미시’로 명명된 시들을 주로 분석하였다. 주체와 타자의 관점에서 볼 때, 이 ‘무의미시’는 타자가 배제된 세계이며, 인격적이거나 이성적인 주체가 소멸된 세계로 이해할 수 있었다. 비인칭적이거나 비인격적인 주체의 모습은 파편적이고 이질적인 이미지들을 생산하고 결합, 배치하는 과정을 통해 추적해볼 수 있었다. 이러한 주체의 소멸된 형식은 언어를 자음과 모음으로까지 해체시켜 동물의 소리처럼 울부짖는 방식으로까지 심화되었다. 3절에서는 ‘무의미시’를 대표하는 ‘처용’ 연작 이후에 등장한 이중섭과 예수라는 인물에 주목하였다. 왜 그들이 반복되어 나타나는가라는 문제의식 아래, ‘처용’, ‘이중섭’, ‘예수’의 반복적 출현이 동일성의 원리에 내포된 유사성의 규칙에 의거한 것이 아니라 그들 사이에 내재된 ‘차이’가 반복을 이루어내고 있음을 분석했다. ‘처용’, ‘이중섭’, ‘예수’ 등의 인물들이 김춘수와는 다른 시․공간 속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김춘수가 사후적으로 유사관계에 놓이게 되는 것은 그들이 김춘수의 과거 유년시절 체험과 ‘공명’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와 과거의 공명이 비자발적으로 김춘수의 잠재된 사건들을 우연히 상기하도록 만들며 ‘이중섭’이나 ‘예수’의 모습으로 위장되어 출현했던 것이다. 그로 인해 현실의 고통과 고독감, 그것을 인내한 ‘이중섭’, ‘예수’의 모습에는 김춘수의 목소리가 겹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자유간접화법과 같은 문체로 확인해볼 수 있었다.
김춘수는 ‘무의미시’를 통해 의미, 관념을 배격하고자 했다. 그것은 역사현실에 대한 회의와 부정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예수’ 시편을 창작하면서 변화하기 시작했다. 특히 산문을 수용하면서 김춘수의 시세계는 중기시와는 다른 방향으로 또 한 번 굴절하게 되었다. 4장은 이러한 후기시의 시적 변화를 주체와 타자의 관계 방식으로 규명하였다. 후기시는 그 동안 크게 연구의 대상이 되지 못했는데, 후기시를 주체와 타자의 관계 방식으로 접근함으로써 김춘수 시세계 전체를 조망해보고 특히 타자나 역사현실의 인식 변화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살펴볼 수 있었다. 1절에서는 먼저 김춘수가 시와 산문을 대립적으로 파악하지 않고 시에 산문의 언어를 수용한 것의 의미를 밝혔다. 󰡔라틴점묘․기타󰡕가 보여준 기행시들은 이러한 산문적 언어를 잘 보여주었다. 그 과정에서 발견하게 된 고통 받는 타자의 모습은 윤리적 주체의 출현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초기시나 중기시와 비교해 볼 때, 이러한 주체의 출현은 그 동안 타자나 역사현실을 의도적으로 외면한 김춘수 자신에 대한 반성과 비판을 수반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춘수의 후기시에서 주체의 윤리성 문제는 노동의 현장이나 핍박받는 타자들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전면화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그보다는 인간으로서 가져야할 보편적 모럴의 가치와 중요성이 강조되었는데, 이점을 2절에서 살펴보았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속 인물들을 편지의 형식으로 서로 대화하게 만듦으로써 김춘수는 주체와 타자의 내면이 서로 교환되고 소통하도록 유도했다. 그 과정 속에서 김춘수는 절대선이나 절대악이 무엇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으며 다른 무엇보다 스스로 ‘양심’을 지키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자각했다. 이는 김춘수가 추구하는 역사의 모습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서 김춘수는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논리 아래,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억압하는 ‘역사’가 아니라 고통 받는 타자를 위해 죄책감과 책임감을 갖고 타자를 ‘사랑’으로 감싸 안으면서도, 그러한 실천적 ‘사랑’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잘 알고 나약하고 힘없는 존재들을 이해할 줄 아는 ‘역사’를 진정한 역사로 이해했던 것이다. 이는 기존의 폭력적인 역사나 이데올로기에 대한 회의와 비판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3절에서는 ‘아내’의 죽음으로 인한 타자 인식과 죽음의 문제를 다루었다. ‘아내’의 죽음은 김춘수의 후기시를 장악하고 있는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아내’의 ‘죽음’은 그의 시에서 ‘아내’의 빈 자리를 통해 더욱 크게 인식되었다. 죽은 ‘아내’는 시에서 ‘천사’나 ‘시’의 모습으로 형상화되었는데 그 모습은 김춘수 후기시의 주체를 언제나 윤리적으로 살도록 달리 말해, 양심적으로 살 것을 명령하는 ‘천사의 눈’, 즉 시선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이렇게 ‘아내’의 죽음은 김춘수에게 삶과 죽음이 완전히 대별되는 것이 아니며, 죽음이 삶의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는 하나의 과정임을 자각하게 해주는 계기로 작동했다.
이렇게 김춘수의 시에 나타나는 타자 인식의 변화과정을 추적해봄으로써, 이 논문은 김춘수 시의 주체를 고립적이고 폐쇄적으로 제한하지 않고 보다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이 논문은 김춘수의 문학에 내재된 선명한 역사의식을 확인해볼 수 있었다.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새로운 문학에 대한 관심과 열망이 강렬했던 당시 한국문단의 풍토 속에서 다른 시인들과 달리, 김춘수는 시의 언어를 보다 진지하게 고민하고 성찰하는 방법을 스스로 ‘선택’함으로써 문학의 새로움을 모색했다. 그는 일관되게 역사와 현실, 이데올로기와 같은 것으로부터 시의 언어를 가능한 한 멀리 위치시키고자 했다. 그것이야말로 폭력적인 역사현실을 부정하고 저항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김춘수의 그 같은 ‘선택’은 그 동안 순수문학과 참여문학이 팽팽하게 맞섰던 담론 속에서 자기 체험에만 기반한 안이하고 수동적인 현실인식 또는 반역사주의라는 비판적 평가를 받아 왔다. 그러나 이 논문에서는 김춘수 시에 나타나는 반역사주의적 특성이 철저하게 역사현실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이해로부터 산출된 것이라고 보았다. 김춘수는 역사현실 속에 위치하면서 누구보다도 자신이 ‘선택’한 도피의 시적․적극적 의의를 잘 아는 시인이었기 때문이다. 이점은 김춘수가 추구한 문학이 내장한 ‘참여’적 성격과 맞닿아 있으며, 김춘수의 문학을 순수시와 참여시라는 이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나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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