雪松 崔圭祥의 書藝 硏究 = A Study on Sul-Song Choi Kyu-Sang’s Calligraphy
저자
발행사항
익산 : 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 2012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석사) -- 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 , 서예문화학과 , 2012. 8
발행연도
2012
작성언어
한국어
발행국(도시)
전북특별자치도
형태사항
P99 ; 26cm
소장기관
This study is aimed to look through the works and life of Choi Kyu-Sang (Sul-song) who had brilliant talent for painting․calligraphy․seal cutting and left a significant mark in modern history of calligraphy. There, however, has been very few researches about his works. His clan originally came from Jeon-Ju. His nick name is Bak-Sim, pen name is Chun-gok․Sul-song and bynames are 'the lord of Nohadang and 'the lord of Chwimukheon'. As the 22nd generation of the Duke of Munseong, the originator of Jeon-ju Choi family, Choi Kyu-Sang was born on May 19, 1891, in Gosari Seokchi village, Iinbong Myen, Gimjegun. Choi Bo-Yeol is his father who was a Confucianist and a leader of Museong Seowon. Lee. Chio his second son of five children. Choi was married to a daughter of Kang Jae-Myeong at the age of 16 and had four sons (Byeong-Ho, Tae-Ho, Wan-Ho, Chung-Ho in a raw) and three daughters. The father of Choi was good at poem․painting․calligraphy as a Confucianist and scholar and made his son learn the regular script , one of the calligraphic styles of Chinese characters, using albums of excellent calligraphic works of Ouyang Xun and Yang Iin-Kyung to improve his skills for poem․painting․calligraphy. Choi also learned semi-cursive script through albums of Dong Qichang and the clerical script by a gold-bearing rock rubbing from Han Dynasty, the cursive script through a scrapbook of Bomukheon and posthumous works of Sir Mi-Nam. He began to show outstanding ability in his childhood when studying under Seok-Jeong. His father encouraged him to learn poem․painting․calligraphy, making him one of pupils of Seok-Jung who was a Confucian scholar at that time. Choi developed the skills for poem․painting․calligraphy with eagerness under Seok-Jeong and studied seal script․clerical script ․seal cutting under Kim Tae-Suk (Sung-Jae) whose fame spreaded throughout the China as a lead figure of seal cutting. Choi finally became a master in history of engraving after this. He devoted himself to calligraphy with a resolute attitude even under the disturbed social conditions and started to study at a surveying school at Gunsan to learn the modern learning after the Eulsa Treaty and death of his teacher, Seok-Jung.
He shortly served in Gimje county office in 1920 and trained the young learners after building Seokkyo school at Baksan Myen, Gimjegun in 1920. He valued virtue and practice in his education. In 1924, he became a head of Baksan district office and did the government service for seven years but moved to Jeonju. He resigned at the age of 30 and ran Haedong Inn. This was the time when he met Kim Tae-Suk who once stayed at the inn and learned seal script․ clerical script․seal cutting from him. About that time, he was taught drawing by Seo Beyong-Oh (Seok Jae). One of Choi's pupils is Bak Hong-Gi (Hak Jung) and he taught so hard his pupil painting․calligraphy․seal cutting that Bak took his place among great artists. Choi's calligraphy was accepted for the Josun art exhibition but this was the last time he sent his work to an art exhibition. On the other hand, he was working hard for the drawing and calligraphy having exhibitions in Jeonju, Kwangju and Daegu as well as art fairs with artists from all parts of the country. He also founded Hanmuk assembly, attended Emuk assemby which was led by Kim Eun-Ho and took part in Daedong Hanmuk assembly which is a grouping of master calligraphers all over the country. In 1946, he became a member of the Korean Academy and the Republic of Korea Academy of Arts. He was treated as a master calligrapher as showing a impromptu drawing when the Former President Rhee Syng-man visited Jeonju.
He was a good friend of Kim Tae-Seok (Sung Jae)․Oh Se-Chang (Wi Chang)․Byeon GwanSik (So Jung)․Ko Hui-Dong (Chun Gok)․Son Jae-Hyeng (So Jeon) ․Kim Eun-Ho (Yi Dang)․Kim Gi-Chang (Woon Bo)・Huh Bak-Ryeon(Ui Jae)・ Lee Sang-Bum(Chung Jeon)․Song Seong-Yong (Gang Am)・An Jong-Won (Seok Jeong)․Jeong In-Bo (Wee Dang)・ Min Hyeng-Sik (Woo Ha)․Kim Yong-Jin (Yong Woon). Choi was a man of integrity who had sturdy shape as his character.
He passed away in Jongdong, Jeonju at the age of 66 on July 25, 1956, having made a great contribution to the development of callilgraphy nearly half of his life. Even though he left great works of clerical script and seal cutting with his own creative way reflecting the traditions as a prominent seal cutter in the Honam district, his achievements have not been adequately appreciated in reality. I hope that Choi Gyu-Sang should be reevaluated as pivotal figure in history of calligraphy in Jeonbuk by seeking the hidden resources related his works.
설송 최규상은 서 ・ 화 ・ 각에 능통하고 근 ・ 현대사의 서예발전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지만 아직은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연구가 거의 되어있지 않아 그의 삶과 작품 세계를 조명하고자 한다. 설송 최규상의 본관은 전주이다. 자는 백심이고 아호는 춘곡 ・ 설송이며 당호는 노하당 주인 ・ 취묵헌 주인이다. 그는 전주 최씨의 시조 문성공의 22세 손으로서 당대 유학자이며 무성서원 도내장의를 지낸 운정 최보열과 광주 이씨 사이에서 1891년 5월 19일 김제군 진봉면 고사리 석치 마을에서 태어났다. 보열의 자는 국명이고 호는 운정 인데 설송은 그의 오형제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6세 되던 해에 진주 강씨인 강재명의 딸과 혼인하여 장남 병호 ・ 차남 태호 ・ 삼남 완호 ・ 사남 충호 등 사남 삼녀를 두었다. 설송의 부친 운정은 유학자이며 선비로서, 학문적으로는 가학을 이어 받아 시 ・ 서 ・ 화에 능하였다. 그는 설송에게 시 ・ 서 ・ 화의 고양을 위해 구양순과 안진경의 서첩으로 해서를 익히게 하였고 동기창의 서첩으로는 행서를, 한나라 예서의 금석탁본으로는 예서를, 보묵헌장첩과 미남궁유묵으로는 초서를 공부하게 하였다. 그가 천부적인 필재를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석정의 문하에서 사사하던 소년 시절 부터였는데 부친은 그를 어려서부터 당대의 성리학자인 석정 이정직 문하에 입문케 하여 학문과 시 ・ 서 ・ 화에 대한 길을 열어 주었다. 설송은 이정직 문하에서 시 ・ 서 ・ 화를 열심히 갈고 닦은 후에 전각의 대가로 중국 대륙에까지 명성을 떨친 성재 김태석을 사사하여 전서 ・ 예서 ・ 전각을 공부한 끝에 전각사의 거봉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그는 당시 어려운 세태 속에서도 의연한 몸가짐으로 서예에 정진했으나 치욕적인 을사늑약이 이루어지고 의지하였던 스승인 석정도 타계하자 신학문을 익히기 위하여 군산 측량학교에 들어가 공부하였다. 1920년에는 김제 군청에서 잠시 근무 하였다. 1923년에는 김제군 백산면 석교에서 석교학교를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고 덕행과 실천을 교육목표로 삼았다. 1924년에는 백산 면장에 취임하여 7년 동안 관직에 몸을 담았으나 30세 되던 해에 사표를 내고 전주로 이사하여 해동여관을 운영하였다. 이때에 성재 김태석이 이 여관에 투숙한 것이 인연이 되어 그에게서 전서와 예서 그리고 전각을 배우게 되었다. 이 무렵 석재 서병오로부터 그림을 지도 받기 시작했다. 그의 후학으로는 학정 백홍기가 있는데 그는 제자인 백홍기에게 서 ・ 화 ・ 전각을 성심으로 지도하여 대가의 반열에 오르게 하였다. 그의 입상 경력은 조선미술전람회 서예부에서 예서로 입선하였으나 그 후로는 선전에 다시 출품하지 않았다. 그러나 서화 활동은 활발하게 하여 전주와 광주 ・ 대구 등에서 전시회를 가졌으며 전국 서화인들과 박람회도 가졌다. 또한 전주에 한묵회를 창설하였으며 이당 김은호 주관의 이묵회에 참여하였고 전국 서예 대가 모임인 대동 한묵회에서도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1946년에는 학술원과 예술원 회원이 되었으며 전 이승만 대통령이 전주에 왔을 때 즉석 휘호를 하여 명필 대접을 받았다. 그가 친교 하던 서예가로는 성재 김태석 ・ 위창 오세창 ・ 소정 변관식 ・ 춘곡 고희동 ・ 소전 손재형 ・ 이당 김은호 ・ 운보 김기창 ・ 의재 허백련 ・ 청전 이상범 ・ 강암 송성용 ・ 석정 안종원 ・ 위당 정인보 ・ 우하 민형식 ・ 영운 김용진 등이 있다. 그는 외모만큼 성격도 강직하고 청렴하였으며 반평생을 서예문화 발달에 이바지하다가 1956년 7월 25일 66세의 나이로 전주시 종동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작품세계는 자신만의 법고창신을 이룩하여 전서와 전각에 뛰어난 작품을 남겼으며 특히 호남에서는 손꼽히는 전각가로 알려져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그의 업적이 드러나지 않아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이 지역의 묻혀진 자료를 찾아 전북 서예사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던 설송에 대한 재조명이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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