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삼국의 《帝鑑圖說》 版本과 繪畵 연구 = (A) study on the editions and paintings of Dijiantushuo in East Asia
저자
발행사항
서울 : 弘益大學校 大學院, 2013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석사) -- 弘益大學校 大學院 , 美術史學科 東洋美術史 專攻 , 2013. 2
발행연도
2013
작성언어
한국어
DDC
759.95 판사항(22)
발행국(도시)
서울
형태사항
iii, 190 p. : 삽도 ; 26 cm.
일반주기명
국영문초록수록
지도교수: 韓正熙
참고문헌(p. 149-156) 수록
DOI식별코드
소장기관
≪帝鑑圖說≫은 중국의 歷代 帝王들에 관한 故事를 그림과 글로 엮은 책이다. 1572년에 어린 나이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 萬曆帝(1572~1620 재위)를 위해 당시 內閣大學士였던 張居正(1525~1582)과 禮部尙書 呂調陽(1516~1580)이 편찬한 이 책에는 역대 제왕들의 善行과 惡行에 관한 그림과 글 117점이 수록되어 있다. 중국에서는 이 책이 황제를 訓育하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된 반면, 한국과 일본의 爲政者들에게 전래된 ≪제감도설≫은 각국의 정치, 사회적 상황 및 歷代帝王故事圖의 제작 전통에 따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수용되었다. 본고는 명말 ≪제감도설≫이 편찬된 이후 동아시아 삼국에서 이 책을 수용하는 양상의 차이에 주목하였으며 그러한 양상의 배경과 구체적인 면모를 美術史의 관점에서 파악해보고자 한다.
≪제감도설≫이 동아시아에서 수용되는 양상을 살펴보면, 중국에서 ≪제감도설≫은 明末부터 淸末까지 8종 이상의 판본이 궁궐 안팎에서 제작 되었으며, 주요 판화 생산지이자 상업 출판의 중심지였던 南京과 徽州, 上海 등지에서 출판된 ≪제감도설≫ 판본들은 해당 지역 판화의 양식적 특징과 인쇄 기술을 반영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선조대부터 고종대까지 적어도 6종 이상의 판본이 조선왕실에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경기도박물관 소장의 ≪君王左右銘≫과 장서각 소장의 ≪圖解歷代君鑑≫은 萬曆元年刻本(A형)을 바탕으로 19세기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며, 본래 하나였던 것이 분질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문헌기록을 통해 영조가 ≪제감도설≫에 관심을 보였던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영조의 御訓書 간행과 관련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일본에서는 ≪제감도설≫이 전래되자 마자 에도 막부(江戶幕府, 1600~1868)와 사찰, 민간의 주도로 4종 이상의 飜刻本이 제작되었다. 일본어로 번역된 판본의 간행은 에도 시대 상업 출판 시장에서 가나(?名)로 쓰인 계몽적 내용의 통속문학 및 삽화책의 유행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본에서는 제작된 飜刻本 중 히데요리본(秀賴版)을 바탕으로 20여점의 帝鑑圖가 제작되었다. 帝鑑圖의 회화사적 의의와 관련하여서는 명대 판화가 에도 시대에 회화로 제작된 측면과 감계적 성격의 그림에 풍속화의 요소가 부가되거나 변용된 측면, 그리고 도쿠가와 막부(德川幕府)의 정치적인 의도가 반영된 측면 등에서 접근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회화사나 판화사의 관점에서 보면, 동아시아에서 ≪제감도설≫의 영향력이 가장 컸던 곳은 일본이라 할 수 있다. 중국과 한국에 비해 일본이 ≪제감도설≫에 적극적인 반응을 보인 이유는 일본이 주자학을 수용하는 시점과 모모야마 시대 이래 일본에서 중국의 고사 인물이나 중국의 풍속을 주제로 한 그림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복합적으로 맞물렸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중국 황실에서는 ≪제감도설≫이 본래의 목적에 부합하게 황제나 황태자의 교육용 교재로서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궁궐 밖에서 이 책이 상업적으로 출판된 것은 명말 상업 출판 시장에서 통속문학이 발달한 것이나 삽화서적이 유행한 것에 기반하고 있다.
한편 한국에서는 ≪제감도설≫이 왕실을 중심으로 수용된 것으로 보이지만, 조선왕실에서 이 책을 번각한 기록이나 회화 작품을 제작하였다는 확실한 정황은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는 ≪養正圖解≫가 영조의 명으로 조선왕실에서 다시 간행되거나 여러 養正圖가 제작된 것과는 차이를 보이는데, 그 배경에는 편찬자인 장거정에 대한 조선 내 인식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시대에 ≪제감도설≫이 지닌 감계의 기능에 주목하여 왕실을 중심으로 수용된 면모는 중국에서 이 책이 민간의 수요에 맞춰 출판된 것이나 일본에서 궁정풍속화 등 다수의 회화 작품에 이 책을 활용한 것과는 다른 조선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제감도설》이 동아시아에서 수용되는 양상을 살펴보면, 중국에서 《제감도설》은 明末부터 淸末까지 8종 이상의 판본이 궁궐 안팎에서 제작 되었으며, 주요 판화 생산지이자 상업 출판의 중심지였던 南京과 徽州, 上海 등지에서 출판된 《제감도설》 판본들은 해당 지역 판화의 양식적 특징과 인쇄 기술을 반영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선조대부터 고종대까지 적어도 6종 이상의 판본이 조선왕실에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경기도박물관 소장의 《君王左右銘》과 장서각 소장의 《圖解歷代君鑑》은 萬曆元年刻本(A형)을 바탕으로 19세기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며, 본래 하나였던 것이 분질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문헌기록을 통해 영조가 《제감도설》에 관심을 보였던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영조의 御訓書 간행과 관련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일본에서는 《제감도설》이 전래되자 마자 에도 막부(江戶幕府, 1600~1868)와 사찰, 민간의 주도로 4종 이상의 飜刻本이 제작되었다. 일본어로 번역된 판본의 간행은 에도 시대 상업 출판 시장에서 가나(?名)로 쓰인 계몽적 내용의 통속문학 및 삽화책의 유행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본에서는 제작된 飜刻本 중 히데요리본(秀賴版)을 바탕으로 20여점의 帝鑑圖가 제작되었다. 帝鑑圖의 회화사적 의의와 관련하여서는 명대 판화가 에도 시대에 회화로 제작된 측면과 감계적 성격의 그림에 풍속화의 요소가 부가되거나 변용된 측면, 그리고 도쿠가와 막부(德川幕府)의 정치적인 의도가 반영된 측면 등에서 접근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회화사나 판화사의 관점에서 보면, 동아시아에서 《제감도설》의 영향력이 가장 컸던 곳은 일본이라 할 수 있다. 중국과 한국에 비해 일본이 《제감도설》에 적극적인 반응을 보인 이유는 일본이 주자학을 수용하는 시점과 모모야마 시대 이래 일본에서 중국의 고사 인물이나 중국의 풍속을 주제로 한 그림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복합적으로 맞물렸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중국 황실에서는 《제감도설》이 본래의 목적에 부합하게 황제나 황태자의 교육용 교재로서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궁궐 밖에서 이 책이 상업적으로 출판된 것은 명말 상업 출판 시장에서 통속문학이 발달한 것이나 삽화서적이 유행한 것에 기반하고 있다.
한편 한국에서는 《제감도설》이 왕실을 중심으로 수용된 것으로 보이지만, 조선왕실에서 이 책을 번각한 기록이나 회화 작품을 제작하였다는 확실한 정황은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는 《養正圖解》가 영조의 명으로 조선왕실에서 다시 간행되거나 여러 養正圖가 제작된 것과는 차이를 보이는데, 그 배경에는 편찬자인 장거정에 대한 조선 내 인식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시대에 《제감도설》이 지닌 감계의 기능에 주목하여 왕실을 중심으로 수용된 면모는 중국에서 이 책이 민간의 수요에 맞춰 출판된 것이나 일본에서 궁정풍속화 등 다수의 회화 작품에 이 책을 활용한 것과는 다른 조선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Dijiantushuo (帝鑑圖說; The Emperor's Mirror, Illustrated and Discussed) is a book with narrative illustration (故事圖) about Chinese emperors. Edited by Zhang Juzheng (張居正, 1525~1582) and Lu Diaoyang (呂調陽, 1516~1580) for Wanli Emperor (r. 1572~1620) who ascended the throne at the age of 10, this book contains 117 stories and pictures of Chinese emperors' desirable and undesirable deeds. While Dijiantushuo was used to discipline the emperors and their heirs in Chinese court, the rulers of Japan and Korea accepted this book differently according to the political, social circumstances and the tradition of producing Paintings on Chinese Emperors (歷代帝王故事圖) in each country. This thesis focuses on the aspect of the development and the acceptance of Dijiantushuo in China, Japan, and Korea respectively since its publication in late Ming Dynasty (1368~1644). It aims to look into the detailed aspects of each country's response to this book and make inferences about the grounds of their responses from the perspective of art history.
In China, more than eight different editions of Dijiantushuo were published from late Ming Dynasty through late Qing Dynasty (1644~1912). Those editions printed in the cities renown for the wood-block printing and commercial publishing such as Nanjing (南京), Huizhou (徽州), and Shanghai (上海) indicate the reflection of each city's wood-block print styles and printing techniques.
In Korea, at least six editions of Dijiantushuo were taken to the Joseon court between King Seonjo (r. 1567~1608) and King Gojong (r. 1852~1919). Goon Wang Jwa Woo Myeong (君王左右銘, King's Motto) housed at Gyeonggi Provincial Museum and Do Hae Yeok Dae Goon Gam (圖解歷代君鑑, Illustrated Chinese Emperor's Mirror) housed at Jangseokgak are estimated to be painted after 19th century based on the 1st Year of Wanli's Reign Edition (type A) (萬曆元年刻本[A]), and it is possible that these two artworks were originally from one piece. According to the records of Joseon Dynasty, King Yeongjo (r. 1724~1776) showed his interest in Dijiantushuo, which is supposedly related to the publication of his own disciplinary books for the heirs of Joseon Dynasty.
As soon as Dijiantushuo was introduced to Edo Bakufu (江戶幕府, 1600~1868) in Japan, at least four different editions were printed by the Bakufu, monks, and commercial publishers. Dijiantushuo was translated into Japanese and published in the 17th century, which is believed to result from the high demand of popular literature on enlightenment written in Kana (?名) and of the illustration books. Especially, in Japan, more than twenty Dijiantu (帝鑑圖, Paintings of Emperor's Mirror) were produced based on Hideyori edition (秀賴版), the first publication of Dijiantushuo printed in Japan. These paintings can be interpreted in three ways; firstly, the relation between Ming prints and Edo paintings. Secondly, addition or appropriation of the genre painting features into the didactic paintings. Thirdly, reflection of Tokugawa Shogunate (德川幕府)'s political intention to Dijiantu.
From the perspective of the painting history or the print history, among three countries, Japan was influenced the most by Dijiantushuo. It is supposed that there are two factors; one is the timing of Japan's acceptance of neo-Confucianism and the other is Japanese preference to the paintings on Chinese narrative illustrations and Chinese custom since Momoyama period (1573~1615). Unlike Japanese Bakufu, Chinese court is believed to use Dijiantushuo primarily as the text book for the emperors or their heirs in accordance with its original purpose of creation. In addition, the commercial publication of this book outside of the court is based on the development of popular literature and printing industry in late Ming Dynasty. In Korea, it is presumed that Dijiantushuo was accepted mainly by the Joseon court focusing on its didactic function, however, concrete records or circumstances of producing the prints or the paintings of Dijiantushuo in Joseon court have not been found. Joseon court's response to Dijiantushuo can be compared to its response to Yangjitushuo (養正圖解) which was also introduced to Joseon court and soon reprinted and used to produce Yangjitu (養正圖) by the King's order. It is assumed that the Joseon court's reaction to Dijiantushuo is related to the assessment on Juzheng in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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