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史 金正喜의 師第關係에 對한 濟州敎育史的 意味
저자
발행사항
제주 : 濟州大學校, 2012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석사) -- 濟州大學校 敎育大學院 , 敎育行政專攻 , 2012
발행연도
2012
작성언어
한국어
KDC
370.911 판사항(5)
DDC
370.9519 판사항(21)
발행국(도시)
제주특별자치도
형태사항
iv, 71장 ; 30 cm
일반주기명
참고문헌: 장 66-69
소장기관
This study was conducted to consider teacher-pupil relationships in teaching and learning activities that Chusa Kim, Jeong-Hee formed while living in exile in Jeju Island for eight years and three months after he was involved in death of Yoon, Sang-Do in prison, focusing on the migrants and people living in Jeju Island. Then, it investigated educational and historical contexts of teacher-pupil relationships of Chusa Kim, Jeong-Hee that have received attention again, and the effects of his Shilsagushi(Seek Truth from Facts) learning which is scientific, on modern learning in Jeju Island.
Chusa constantly kept a passion for reading and an academic posture even during his banishment, and put devoted efforts into fostering the next generation in Jeju Island. He practiced ceaseless endeavors for learning throughout his entire life, selflessness was the root of his mental force to get over hardships, 'LearningㆍQuestioningㆍThinkingㆍDistinguishingㆍPracticing' were how he learned within the broad teacher-pupil relationships, and shared everything, based on grand homogeneity which exceeds nation, and friend or foe, and distinguished between right and wrong in forming personal connections.
Although his banishment life was a misfortune for himself, people in Jeju Island who had learned Tonggam, The Analects and Mencius only, were able to learn not only Saseo-Ogyeong, but calligraphy, astronomy and even arithmetics from him. As the result, he had a huge impact on modern learning of Jeju Island, as Confucian scholars of Jeju Island of the times could learn scientific Shilsagushi(Seek Truth from Facts) learning from him, at last.
As Chusa Kim, Jeong-Hee was exiled to Daejeonghyun, his students living far away and near studied following their teacher, and his wide knowledge and upright and clean character gave his pupils a big impression and influence. Therefore, it was an opportunity to establish the foundation of learning and culture in Jeju Island where was backward relatively, and it is obvious that as an educator and a man of self-realization that highly influenced the educational history of Jeju Island, he made a big contribution to learning improvement and cultural development of the region.
Chusa taught and learned, forming a lot of teacher-student relationships during his banishment in Jeju Island. The followings are teacher-pupil relationships and colleagueships he made during his activities.
Firstly, Chusa looked for ways of adapting to the exile, controling his mind with books and paintings and calligraphic works and on the other hand, put a lot of efforts into finding solutions with a special interest in education for people in Jeju Island.
Secondly, Chusa could bring a turning point in learning and art and be immersed in dignified artistic achievement in Jeju Island that he lived in exile, thanks to Choeuisunsa, Sochi and especially, his pupil, Lee, Sang-Jeok.
Thirdly, he strived hard to improve education of Jeju Island and to brush up his studies, getting over the disadvantages of living in the region and expecting a better tomorrow, despite the poor environment. Moreover, he spread high-quality culture and left unique banishment culture heritages doing remarkable teaching and learning activities in Jeju Island where was in a poor circumstance and behind in learning and political activities, maintaining a variety of relationships with students.
Chusa Kim, Jeong-Hee's civilized teaching and learning activities have educational and historical significance in the way that they presented a specific prospect of modern education in Jeju Island. These findings imply that academic achievement and chance of consciousness of exiles and regional scholars occurring during banishment are in an interactive relationship, not an one-sided relationship between "the center and the surroundings".
본 논문은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윤상도 옥사에 연루되어 8년 3개월 간 제주도에서 유배생활하는 동안 제주교학활동에서 나타나는 사제관계를 내도인과 제주인을 중심으로 고찰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재조명된 추사 김정희의 사제관계의 제주교육사적 맥락과 추사 김정희의 과학적인 실사구시 학문을 접한 제주도의 근대 학문에 끼친 의의를 규명해 보고자 한 것이다.
추사는 유배기간에도 끊임없는 독서열과 학문적 자세를 견지하고 실행하였으며, 제주에서도 후진 양성을 위해 지극한 정성을 쏟았다. 추사의 생애에 나타난 학문의 길은 자강불식(自强不息)의 실행이었고, 고난을 극복한 정신적 힘의 근원은 무사(無私)와 통하며, 광범위한 사제관계에서 이루어진 학문 방식은 ‘學ㆍ問ㆍ思ㆍ辨ㆍ行’ 이었으며, 인맥의 본질은 나라와 피아(彼我)를 초월한 원대한 동질성이 바탕을 이룬 공유와 옳고 그름을 따지어 밝히는 자세로 나타났다.
그의 유배생활은 추사 김정희 자신에게는 생애의 불행이었지만 제주도민들은 痛鑑ㆍ論語ㆍ孟子 등을 학습하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추사에게서 사서오경(四書五經)은 물론 서도(書道)와 천문(天文) 및 산수학(算數學)까지도 교육을 받음으로써 당시 제주도 유생(儒生)들은 비로소 과학적인 실사구시의 학문을 접하게 되어 제주도의 근대 학문에 지대한 영향을 받게 되었다.
추사 김정희가 대정현에 적거하게 되자 원ㆍ근에 학도들이 스승을 따라 수학하였고, 추사의 해박한 학문과 강직 공명한 성품은 제자들에게 큰 감명과 감화를 주어 상대적으로 낙후된 제주지역에 학문과 문화의 기틀을 마련할 기회가 되었으며, 제주지역 교육사에 큰 영향을 미치게 한 교육자 또는 자기완성자로, 현지의 학문향상과 문화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처럼 추사는 제주유배 기간에 많은 사제관계를 맺으며 교학활동을 하는데 그의 활동 속에 나타나는 師弟, 師友관계 내용을 요약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추사는 한편으로는 서책(書冊)과 서화(書畵)를 통해 자신의 심기를 다스려서 유배지의 생활에 적응해 나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또 한편으로는 제주지역민들의 교육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 주력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둘째, 추사가 유배지인 고도(孤島)에서 학문과 예술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 격조 높은 예술의 경지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초의선사, 소치, 그리고 특히 그의 제자 이상적이 있었기에 실현가능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셋째,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제주지역민과의 생활에서 시대의 불리함을 딛고 후일을 기약하며 교육과 학문연마에 힘썼다. 또한 당시 시대상황과 학문, 정치활동에 미흡한 제주지역에서 다양한 사제관계를 유지하면서 두드러진 교학활동은 제주 유배지에 수준 높은 문화전파와 함께 독특한 유배문화유산을 남기기도 하였다.
유배과정에서 수반되는 유배객 및 지방학인의 학문성취와 의식전환이 “중앙~주변”의 일방적인 관계가 아닌 쌍방향적으로 이루어지는 동태의 관계임을 시사한다.
추사 김정희의 개화교학활동은 다른 무엇보다 제주도 근대교육의 구체적 전망을 열었다는 점에서 교육사적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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