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반공영화 생산과 소비에 관한 연구 : 정책적 동인에 따른 재현 방식의 변화 = A study on the production and consumtion of anti-communist fils in 1970s : changes in the way of representation by the political motive
저자
발행사항
서울 : 서울대학교, 2014
학위논문사항
발행연도
2014
작성언어
한국어
KDC
331.0911 판사항(6)
DDC
301.09519 판사항(23)
발행국(도시)
서울
형태사항
x, 219 p. : 삽화, 도표 ; 26 cm
일반주기명
참고문헌: p. 197-214
DOI식별코드
소장기관
이 연구는 1970년대 반공영화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질문에 답함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점을 논의의 중심에 두었다. 첫째, 반공영화는 작품 경향에 의해서가 아니라 생산과 소비에 이르는 관련 행위자들의 실천에 의해 이해될 수 있는 대상이다. 둘째, 반공영화라는 이름은 역사적인 실체이며 당대적 의미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생산-소비 과정과 관련하여 정부가 가장 중요한 실천 주체였기 때문에 반공영화는 선전영화와 동일시되어 왔고 따라서 반공영화의 정의 역시 이에 준하여 이해되어 왔다. 하지만 1970년대 한국의 반공영화는 선전영화라는 개념을 통해 이해되기엔 지나치게 다양한 변이들을 가지고 있었다. 정부의 정치적 이해(interest), 기획 의도, 자원 동원과 관련되어 온전히 선전영화적 특성을 가진 반공영화들이 존재했는가 하면, 간섭과 통제의 정도는 높았지만 실재 정부 영향력 외곽에서 제작되거나 소비된 반공영화들 역시 존재했다.
반공영화 생산과 소비에 관련한 일련의 실천들을 분석한 결과 반공영화를 선전(propaganda) 도구 혹은 캠페인 도구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은 1970년대 정부의 반공영화 관련 실천이 가졌던 역동성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반공영화는 반공주의에 관련한 정보를 전달하고 강제적 동의를 이끌어내는 반공 선전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영역에서 펼쳐진 상징정치의 극단적 사례이며 영화예술의 가치체계와 의미체계의 형성에 있어서 국가 권력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대한 일반적 작동방식을 드러내는 일반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1950-70년대에 이르기까지 반공영화의 정의를 두고 영화예술가와 정부는 지속적으로 대립했다. <피아골>(이강천, 1955), <7인의 여포로>(이만희, 1965)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낙동강은 흐르는가>(임권택, 1976)는 이것이 과연 반공영화인가라는 점을 두고 영화예술가와 검열 당국이 치열하게 대립한 사례이다. 이러한 대립은 영화예술가를 국가 권력의 통제 하에 놓기 위한 정부의 실천 때문에 발생했으며 동시에 반공주의의 영화적 재현 그 자체에 대한 상이한 관점이 존재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정부와 영화예술가들이 반공주의와 탈반공주의라는 구도에서 대립했다기보다는 하나의 반공주의와 또 다른 반공주의라는 구도에서 대립했다.
반공영화에 관한 정부의 통제력은 1950-70년대를 관통하여 전반적으로 강력한 것이었지만 1970년대에 들어와 더한층 재고된 모습을 보였다. <피아골>, <7인의 여포로> 사례의 경우 정부의 억압적 조치에 대해 적어도 영화예술가들은 공개적으로 정부의 견해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었지만 <낙동강은 흐르는가>의 경우 대립은 검열 절차 속에 은폐되어 공론되지 못했다. 이는 1970년대에 이르러 국가 권력이 반공영화에 대한 배타적 통제력을 획득하기 시작했다는 징후라 할 수 있다.
둘째, 반공영화에 대한 국가 권력의 영향력 강화는 영화 일반에 관한 국가 권력의 영향력 증가 속에서 이루어졌다. 1960년대 초반까지 호황을 누리던 한국 영화 산업은 제작과 흥행 양자에서 1960년대 후반 정점을 기록한 후 1970년대 내내 쇠퇴했다. 쇠퇴의 가장 큰 징후는 관객 감소로 대표되는 영화 시장의 불황이었다. 더더구나 급격히 성장하고 있던 방송 산업과의 경쟁 관계 속에서 영화 산업의 입지는 더욱더 좁아졌다.
자본의 측면에서 허약했던 한국 영화 자본은 독립적인 해결책을 강구할 역량이 낮았기 때문에 당시 극장 요금 관련 고시요금제와 우수영화보상제 등의 강력한 시장 통제 장치를 가지고 있던 정부에 의존적인 방식으로 이에 대처하려 했다. 영화 자본의 정부의존성 심화는 국산영화 생산기반의 지속적 약화를 가져왔으며 이에 따라 영화예술가들의 영화에 대한 권한 역시 약화되었다. 이는 상대적으로 영화에 대한 국가 권력의 영향력을 증대시켰는데 정부는 영화산업 진흥을 위한 계획을 수립함에 있어서 반공영화 관련 정책을 계획의 중심에 두었다.
정부의 진흥 사업의 중심에 반공영화 생산 정책이 놓인 이유를 설명함에 있어서, 당시 헤게모니 약화를 경험한 권위주의 국가가 반공영화 생산 강제를 통해 헤게모니 재강화를 의도했다는 점은 부인될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점과 더불어 반공영화라는 기호가 가진 가치와 의미가 재조명되어야 한다. 영세 자본에 의해 생산된 한국 영화의 저급성이 시장 불황의 원인으로 지적되었기 때문에 진흥 사업의 키워드는 우수영화였다. 무엇이 우수한 영화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방식에 따라 진흥 사업의 큰 방향이 결정되었다. 약화된 영화자본과 영화예술가들이 이 질문에 우선적으로 답을 제시할 가능성은 낮았다. 정부는 이 질문에 대해 독점적으로 답을 제시했는데 그 답이 반공영화였다. 따라서 반공영화라는 기호는 외연적으로는 우수한 영화를 의미했으면 내포적으로는 정치 선전 도구로 활용가능한 영화를 의미하게 되었다.
한편, 전후 세대의 성장은 반공영화를 매개로 한 국가 권력과 영화 산업의 비자발적 공조를 가능케 한 공통 요인이었다. 1970년대야말로 인구학적으로 보았을 때 적어도 도시 지역에서 전후 세대가 가장 중요한 노동력이자 정치 대중이자 영화 관객으로 성장하는 시기이다. 전후 세대의 성장은 한편으로는 전쟁 경험에 근거한 반공주의 관련 기존 담론의 약화를 가져왔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근대화의 진척에 따른 새로운 욕망의 성장을 가져왔다. 1970년대 한국 영화시장의 불황은 허리우드 영화의 세계 시장 석권과 방송 산업의 약진이라는 요인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새롭게 성장한 청년 관객 집단의 욕망이 기존의 한국 영화로는 관리되지 않기 시작했다는 점에 기인한다. 따라서 반공영화는 전후 세대라는 새로운 대중 집단에 대한 새로운 정치 자원을 확보하는 실천과 새로운 욕망 관리 방식을 도입하는 실천의 접경에 놓여 있었다.
셋째, 반공영화 생산에 관련한 국가 권력의 실천은 이중적 성격을 가졌다. 정부는 강제와 유인을 통해 이것의 생산 규모를 확장하려 함과 동시에 정부의 통제를 벗어난 경우 이를 제한했다. 검열 제도를 통한 반공영화의 명명 과정은 이러한 이중성을 명확히 드러낸다. 검열 당국의 반공영화에 대한 통제는 자의적이고 강압적이었다. 하지만 비록 파편화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 권력의 반공영화 통제는 반공영화 작품군에 방향성을 부여했다. 이 때 주목해야 할 점은 이 방향성이 국가 권력에 의해 영화에 이식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 권력의 금지와 그에 대한 영화예술가의 위반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어 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197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화해 불가능성의 영화적 구형 방식이 반공영화 개별 작품 속에 정형화되는데 이러한 정형화는 다수의 반공영화와 반공영화 후보 작품들에 대한 검열 당국의 금지 규정과 그에 대한 영화예술가의 대응의 결과가 응축됨으로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상과 같은 발견들을 토대로 이 논문은 반공영화 생산과 소비에 있어서 국가 권력이 보인 실천의 성격을 생산 유인 혹은 생산 강제라는 점에 국한해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을 결론으로 제시한다. 국가 권력의 실천은 반공영화의 생산을 강제-유인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제한하고 변형시키는 것을 포함한 포괄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이것은 반공영화에 대한 통제와 관리라는 개념에서 이해될 성격을 가진다.
그렇다면 국가 권력에 의해 통제-관리되어 특정한 형태적 특징을 가지게 된 반공영화가 한국 사회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반공영화와 관객 간 접점의 규모를 고려해야 한다. 반공영화 소비에 있어서 기존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강제 관람의 형태를 통해 반공영화와 관객 대중 간 넓은 접점이 형성되어 있다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정부에 의해 획일화된 재미없는 반공영화가 관객 대중에 의해 거부됨으로써 극히 좁은 접점을 형성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관객 수 통계와 각종 무료관람 형태에 관한 기록 등을 통해 판단해 보건대, 반공영화와 관객 대중 간 접점은 좁았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좁은 접점이 반공영화가 다른 범주의 영화와 비교했을 때 무의미하다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정부의 의도가 더 잘 관철된 반공영화일수록 더 좁은 접점을 형성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러한 사실은 반공영화를 정치 선전 도구로 보는 관점의 전환을 일정 정도 요구한다. 관객에게 보여지지 않은 영화를 정치 선전 도구로 파악할 수 있을까? 국가 권력의 이해관계가 더 잘 반영된 영화일수록 관객에 대한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당시 영화 산업 전반을 장악할 수 있을 정도의 강한 정책적 수단을 가진 정부가 소비에 있어서 제한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러한 의문들은 1970년대 국가 권력의 반공영화 관련 실천의 새로운 측면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국가 권력은 적어도 반공영화 관련 실천에 있어서는 반공주체를 이원화하려 했다. 관객 대중을 반공주체로서 동질화하려 했다기보다 반공주체를 능동적 반공주체와 수동적 반공주체로 분리하려 했다. 이러한 분리 속에서 국가 권력을 유일한 능동적 반공주체로 자리매김함으로써 반공주의 세계관의 영화적 재현 형태를 특수한 형태로 완성시키는 것이 이 실천의 내적 맥락이었다.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 주요 개정내역 | 변경 사유 |
|---|---|
| · 수탁업체 콘소시엄 기관명 및 위탁기간 명시 | · 제6조(개인정보 처리업무의 위탁) 구체화 |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은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제1조(개인정보의 처리 목적)
제2조(개인정보의 처리 및 보유 기간)
제3조(처리하는 개인정보의 항목)
제4조(개인정보파일 등록 현황)
제5조(개인정보의 제3자 제공)
제6조(개인정보 처리업무의 위탁)
제7조(개인정보의 파기 절차 및 방법)
제8조(정보주체와 법정대리인의 권리·의무 및 그 행사 방법)
제9조(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제10조(개인정보 자동 수집 장치의 설치·운영 및 거부)
제11조(개인정보 보호책임자)
제12조(개인정보의 열람청구를 접수·처리하는 부서)
제13조(정보주체의 권익침해에 대한 구제방법)
제14조(추가적 이용·제공 판단기준)
제15조(개인정보 처리방침의 변경)
제1조(개인정보의 처리 목적)
제2조(개인정보의 처리 및 보유 기간)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
제3조(처리하는 개인정보의 항목)
제4조(개인정보파일 등록 현황)
개인정보파일 검색(privacy.go.kr)| 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정보추제 동의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
제5조(개인정보의 제3자 제공)
제6조(개인정보 처리업무의 위탁)
제7조(개인정보의 파기 절차 및 방법)
제8조(정보주체와 법정대리인의 권리·의무 및 그 행사 방법)
제9조(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제10조(개인정보 자동 수집 장치의 설치·운영 및 거부)
제11조(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안재호 |
- 이메일 : jinuk@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58 - 팩스번호 : 053-714-0195 |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송진욱 |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교육학술데이터본부 정광훈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제12조(개인정보의 열람청구를 접수·처리하는 부서)
제13조(정보주체의 권익침해에 대한 구제방법)
제14조(추가적인 이용ㆍ제공 판단기준)
제15조(개인정보 처리방침의 변경)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