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선감의록>의 교화적 성격과 작가의식
본고는 <창선감의록>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지향과 이들이 벌이는 갈등 양상을 중심으로 작품의 교화적 성격과 작가의식을 드러내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창선감의록>에 대한 선행연구는 주로 17세기에 등장한 가문(가정)소설 및 가문의식과의 연관 속에서 이루어져 왔다. 그 결과 <창선감의록>은 유교적 도덕관념의 교화와 가문의 유지·창달 등 당시 사대부들의 정치이념과 욕망이 반영된 작품이라는 점이 비교적 소상하게 밝혀진 상태이다.
그러나 선행연구는 대체로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보다는 가문소설의 형성과 발전이라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작가의식 및 작품의 유형 등을 고찰하였다. 그 결과 작품 자체에 대한 면밀한 분석은 다소 미흡한 편이다. 본고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주요 등장인물의 지향과 교화적 성격, 갈등의 양상과 사회적 현실, 갈등의 해결방식과 인물의 형상에 나타난 작가의식 등에 초점을 맞춰 작품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였다. 따라서 본고는 <창선감의록>에 대한 본격적인 작품론이라고 할 수 있다.
Ⅱ장에서는 17세기 교화담론의 형성과정과 <창선감의록>의 연관성을 살펴보았다. 17세기 지배층의 일원이었던 사림파 문인들이 성리학적 이념과 가부장적 종법체제를 바탕으로 가문의 위계질서를 정립하고자 했는데, 이것은 당시 사대부 가문이 봉착한 현실적인 문제와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 거듭된 당쟁으로 인해 사대부 가문들은 언제 어떻게 몰락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에 쌓여 있었으며, 또 임병양란의 여파로 각 가문들은 물적 토대가 크게 약화된 상태였다. 이에 사대부 가문들은 다른 가문과의 친인척 관계를 형성하여 가문의 위력을 확대하고, 약화된 물적 토대나마 유지하기 위하여 재산을 오로지 장자에게 상속할 필요성이 절실했다.
그런데 장자 중심의 종법체제는 기존의 가족제도와 충돌하면서 가족 내부의 갈등을 야기하였으며, 이것이 사회적 문제로 비화되었다. 위기의식을 절감한 사대부들은 『삼강행실도』와 『소학』 등 유교적 교훈서를 통해 이념 교육을 더욱 강화했지만, 노력만큼의 실효를 거둘 수 없었다. 이를 자각한 사대부 문인들이 새롭게 주목한 것이 소설의 감화력과 전파력이었다. <창선감의록>과 <사씨남정기> 등은 이를 활용하여 성리학적 이념과 제도를 더욱 효과적으로 교화할 목적으로 창작된 작품이다. 이들 작품이 사대부 가문 내부에서 문제가 되었을 법한 형제갈등이나 처첩갈등을 중심으로 사건을 구성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또한 당시 사림파 문인들은 교화의 대상을 사대부 부녀자에서 평민에까지 확장시키기 위해 작품의 서사성과 통속성을 강화하였다. 특히 <창선감의록>은 악인의 분화, 갈등의 낭만적 해결, 다양한 인물군상과 개성적인 인물의 창출, 청춘남녀의 애정 묘사, 흥미진진한 군담 등을 통해 작품의 서사성과 통속성을 강화하였는데, 이들 요소들은 독자들을 매료시킴으로써 ‘창선감의(彰善感義)’를 더욱 은밀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실현하는 데 기여하였다.
Ⅲ장에서는 <창선감의록>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의 지향과 거기에 내포되어 있는 교화적 성격을 분석하였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모두 유교적 도덕관념인 효(孝)·제(悌)·열(烈) 등을 충실하게 실천한다. 그러나 각 인물마다 이 가운데 특별히 중시하는 덕목이 있으며, 그 덕목은 인물이 처한 상황과 긴밀한 연관 속에서 구현된다. 이로 인해 주요 인물의 지향과 실천은 하나의 사례나 본보기로서의 역할을 한다.
화진은 효제를 철저하게 실천하는 인물이다. 그는 자기에게 온갖 핍박을 가하는 큰어머니 심씨와 이복형인 화춘에게 목숨마저도 기꺼이 바치려고 하는데, 이는 순임금의 효제를 구현한 것이라고 하겠다. 또한 그는 내면·육화된 효제의 실천을 추구한다. 남채봉은 ‘부모라 이름하는 모두’에게 효를 실천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보은과 예의적 차원에서 실천하던 효를 성심으로 실천하게 되는 변모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진정한 효녀·효부 되기의 전범을 구현한다. 윤옥화는 제를 중시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본래 남이었던 남채봉과 자매의 연을 맺은 이후 친자매 이상으로 아끼며, 함께 화진을 남편으로 섬기면서 순임금을 보필했던 아황과 여형의 모습을 구현한다. 진채경은 효와 절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효를 선택한다. 그러나 기지를 발휘하여 절개를 잃지 않으며, 정혼자를 위해 혐의를 무릅쓰고 중매를 성사시키는 등 절을 구현한다.
Ⅳ장에서는 <창선감의록>의 갈등양상을 당대의 사회적 현실과 관련지어 살펴보고, 갈등의 해결 방식과 인물의 형상을 중심으로 작가의식을 고찰하였다.
화씨 가문 내부의 갈등은 당시 장자 중심의 종법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던 현실적 상황을 매우 사실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종통계승의 문제를 두고 벌어진 화진과 화춘의 형제갈등, 출가외인인 성부인과 종부인 심씨 사이의 갈등 등이 그것이다. 우리나라의 국속(國俗)은 혈연적 동질성을 중시한 까닭에 형제 사이에는 남녀는 물론 적계(嫡系)와 방계(傍系)의 구분 없이 대등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제사도 형제들이 번갈아가면서 지냈으며, 재산상속도 형제들 사이에서는 남녀 구분 없이 균분되었던 것이다. 조선의 지배층은 개국 초부터 성리학적 이념을 바탕으로 이러한 국속을 종법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국속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임병양란 이후의 정치·사회적 혼란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배층은 장자 중심의 종법체제를 확고하게 정착시키려고 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제사권과 재산상속권을 두고 형제들 사이에 분쟁이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17세기 말까지도 지속되어 사회적인 문제로 비화되기도 하였는데, <창선감의록>에는 당시의 사대부 가문 내부에서 벌어졌을 법한 문제적 상황이 잘 나타나 있다. 화욱과 화춘의 갈등 및 화진과 화춘의 갈등은 가부장과 적자, 적자와 적자가 아닌 자녀들 사이에서 발생한 것으로, 이는 가문의 종통계승 및 재산상속의 문제 등과 관련되어 있다. 심씨와 성부인의 갈등도 기존의 가족질서가 종법으로 전환되어 가는 과도기적인 양상을 보인다. 출가외인인 성부인이 가권을 장악하고 있는데, 심씨가 종부임을 내세워 성부인을 화씨 집안에서 몰아내려고 한다. 이러한 점들은 <창선감의록>이 장자 중심의 종법체제가 강화되는 과정에서 일어났을 법한 사대부 가문 내부의 문제들을 서사의 주요 갈등으로 설정하였음을 보여준다.
한편, <창선감의록>에서 등장인물이 벌이는 갈등은 당대의 현실 문제를 사실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갈등은 결국 효·제·열과 같은 유교적 도덕관념을 철저하게 실천함으로써 해결된다. 화진은 내면·육화된 효제를 실천함으로써 위기에 처한 가문을 구하고, 악행을 저지르던 심씨 모자마저 개과시킨다. 남채봉, 윤옥화옥, 진채경 등은 여러 가지 질곡과 고난을 극복하고 효·제·열을 실천하여 가문을 화락하게 만드는데 일조한다. 그 결과 이들은 당대 최고의 부귀공명을 누린다. 즉 <창선감의록>에는 유교적 도덕관념을 철저하게 실천하면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될 뿐만 아니라 개인적 욕망마저도 최대한 실현되는 것으로 귀결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창선감의록>은 여러 주인공들이 각각의 상황과 처지에 따라 효·제·열을 실천함으로써 고난을 극복하고, 마침내 부귀공명을 누리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창선감의록>의 작자는 ‘효자·열녀전’ 등에 나타나는 전기적(傳記的) 사례들을 흥미진진한 사건으로 서사화함으로써 독자들이 성리학적 이념과 도덕관념에 감화되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작가는 유교적 이념의 절대화, 가부장적 종법체제의 옹호, 여성의 개성과 주체성 부정, 여성의 쟁총에 대한 경계, 효와 절을 겸비한 여성상의 추구와 같은 의식을 드러낸다.
이상의 논의는 기존의 연구 성과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되 작품 자체의 분석을 통해 얻어진 결과이다. 따라서 본고는 <창선감의록>의 교화적 성격과 작가의식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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