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後期 兩班層의 親族 네트워크
저자
발행사항
서울 : 성균관대학교, 2015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박사) --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 동아시아학과 , 2015. 2
발행연도
2015
작성언어
한국어
주제어
DDC
950 판사항(22)
발행국(도시)
서울
기타서명
(The) kin network of the Yangban elite of the late Joseon dynasty
형태사항
250 p. : 삽화 ; 30 cm
일반주기명
지도교수: 미야지마 히로시(宮嶋博史)
참고문헌: p. 235-247
DOI식별코드
소장기관
The elite of the Joseon(朝鮮) Dynasty, the Yangban(兩班) always must prove their leadership. This is because they did not be fully identified from their country law. Therefore, they were required to succeed in a public area in order to prove themselves as a social-moral leader. The Yangban Elite, utilized their kinship network is most useful social resources for success.
Many studies have focused on paternal kin group of the Yangban elite. Since Malthus, many social scientists have focused on the extended family of East Asia. The assumption was that the social and demographic characteristics stereotypical of East Asia derived from the extended family. Such recognition, Korean history researchers also had in the same way. However, in this study, I was approached from the perspective of network the kinship of the Yangban elite of the late Joseon Dynasty.
First, I tried to approach from a new point of view some of the elements that have been presented as evidence of strengthening the paternal kin group. Unlike the idea to record all the patrilineal members, genealogy had selectively recorded the patrilineal members. On the later genealogies, up to the 17th century, record of a child of one's daughter has decreased. However, information of the non-paternal relatives in the 19th century of the lineage, had accounted for a large specific gravity than the information of the paternal relatives.
Moreover the Bulcheonwye(不遷位) not only gather the distant relatives, also serve as a mechanism to justify the division of the patrilineal kin. To adoption that was popular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e degree of kinship between adopted child and adoptive father was important element for choice. There were several cases to select a adopted son from distant relatives in even though there are close candidate. Some of these types adoption could be understood as a family strategy by selection.
Kin network, since contains the various families, could also have a variety of political positions. Political autonomy of each family(the central Yangban, 在京兩班) living in Seoul and Gyeonggi Province, was sensitive to the power and politics. Even in the 19th century, it is understood that the patrilineal kin group had developed, there were political conflicts in a kin network. Political conflict of some of families in a same kin group(Andong Kim, Yangju Cho, Poongsan Hong), was to proceed to the extent that lead to death by attacking each other.
Political conflict has issued even within a kin group of the countryside(the local Yangban, 在地兩班). Further, some powerful families was also married with politically opposite side kin group. Even in the countryside, there was a room for political autonomy, or the selection of each family.
In the central Yangban, Several powerful kin group(閥閱) that hereditary maintain the political power appeared. However, over time, there was difference at the number of official and the social status of each family has been diverged. Thus, each family was necessary strategy to maintain social status. Kin group of the late Joseon Dyanaty did not provide material support to members for passing the civil-exam. So the family strategy of Yangban family, especially noticeable in the kin network including the marital relationship.
In such a context, I was statistically determined the impact of the kin network on the official acquisition of the individual. As a result, ancestors within two generation, regardless of the direction of kinship, gave a positive impact on the individual official acquisition. In the 19th century, while the influence of paternal has decreased, the influence of the father-in-law has increased greatly. This is to prove that the marriage and kin network was performed strategically.
Number of the principal positions of the Dosan Seowon(陶山書院), which is one of the important social resources in rural society has been limited. Therefore, competition was no addition occurs, average inauguration age gradually increased. As a result, some families who were descendants of Lee Hwang(李滉) were dismissed from the competition for the principal positions. There are competition and distribution for the principal among the members of the lineage. The continuity on becoming the principal between fathers and son from those who was born after the late 18th century obviously decreased. This was the reaction of selection and competition that exists in the sub-lineage level. The Yangban elite have utilized the kin network that covers the paternal and non paternal simultaneously for the maintenance of social status.
조선후기의 특징으로 주목받아 왔던, 부계 친족집단은 확대와 분화를 계속하여 항상적인 형태를 유지할 수 없었다. 친족집단의 이러한 특징에도 불구하고 조선후기 친족집단은 하나의 조직체라는 이미지를 얻어 왔다. 본 논문에서는 조선후기 부계와 비부계 친족들이 어떠한 모습으로 존재해 왔으며, 개인의 삶에는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했다. 이를 위해 본 논문은 친족 네트워크의 관점을 제안했다.
우선 지금까지 조선후기 부계 친족집단 강화의 기반이자 증거로 제시되어 왔던 여러 요소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해 보았다. 조선후기 대동보에서는 부계 구성원들을 모두 수록한다는 이념과 달리 사회적 위상이 낮은 구성원들에 대한 선별과 배제가 지속되었다. 조선전기와 달리 조선후기 족보는 外孫 기록이 축소되었으나, 여전히 비부계 친족 관계 정보가 부계 친족의 정보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조선후기 정착되는 종법질서는 실제 혈연 관계의 정감과 충돌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적용은 19세기까지도 여전히 논란이 되었다. 불천위는 친족이 堂內의 범위를 넘어서 확대될 수 있는 구심점을 제공했다. 하지만 불천위는 친족집단의 결집 뿐 아니라 분화를 정당화하는 기제로 작동할 수도 있었다.
조선후기 입후 관습의 정착과 계자와의 혈연 거리의 증가 양상 역시 부계 친족집단의 발달이라는 맥락에서 이해되어왔다. 실제로 혈연적으로 가까운 입후 후보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먼 친족으로부터 계자를 선택하는 사례들이 다수 확인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계자들을 추적해 본 결과 혈연을 넘어 선택된 입후는 선택과 전략으로 이해될 여지가 있었다.
친족 네트워크는 다양한 가족들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도 다양한 입장들이 나타날 수 있었다. 개별 가족들의 정치적 자율성은 서울과 경기지역에 거주하면서 중앙정치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재경 양반 가족들의 사례에서도 잘 나타났다. 17세기 초 풍천임씨 任奕의 가족의 사례나 17세기 후반 친족집단 내 노소 분기의 양상이 바로 그것이었다.
친족 네트워크가 정치적으로 통일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들은 18·19세기에도 확인된다. 18세기 연안이씨 관동파 이정신은 堂內 族叔들이나 혼인 네트워크의 정치적 경향성과 달리 소론으로서의 행보를 보였다. 19세기 안동김씨 문정공파에서는 세도가였던 김조순에게 10촌 형제인 달순을 사사하는 공격을 감행했다. 친족 내 분쟁의 양상이 극단적으로 치닫는 경우는 권력의 핵심부에 있었던 양주조씨나 풍산홍씨의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재지 양반층의 경우, 안동의 屛虎是非에 참여한 다수의 양반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속한 친족집단의 정치적 입장을 따르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동일한 친족집단 안에서 屛虎是非에 대한 정치적 입장이 갈리는 경우도 존재했다. 더 나아가 屛虎是非를 전후한 시기 주요 가족들의 혼인 관계에서는 정치적으로 성향이 반대되는 인물들과의 혼인이 발견되었다. 이는 혼인이 개별 가족의 이해관계를 반영하여 형성된 네트워크이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개별 가족의 정치적 자율성은 안동에 노론측 서원을 건설하려던 시도로 발생한 분쟁에서도 드러났다. 서원 건립을 주도한 안복준 가족은 당색의 전환을 가족전략으로서 선택했다. 풍산류씨 류기목 역시 병호시비에서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키기 위해 노론측 서원 설립을 시도했다. 이러한 양상은 친족집단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큰 향촌사회에서도 개별 가족들에게 정치적 자율성, 또는 전략적 선택의 여지가 존재했음을 말해준다.
재경‧재지를 막론하고 양반들에게 가장 선명한 성공의 기준은 科宦이었다. 서울 인근에 거주하던 재경 양반들의 사회적 위상은 과환에 집중되어 중앙정계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재지 양반들에게는 점차 과환이 끊어지게 되었고, 지역 사회 내에서의 사회적 지위의 기준이 등장하게 되었다.
재경 양반층에서는 중앙권력을 세습적으로 유지하는 閥閱이 등장했다. 하지만 벌열 가문이더라도 지파나 家系에 따라 관직자의 배출 정도가 달라지고 사회적 위상이 차이가 나게 되었다. 이 상황 속에서 개별 가족들은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이 필요했다. 하지만 친족 구성원들의 과거합격을 위해 친족집단 차원에서 물질적 노력을 기울인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다. 이들의 전략은 혼인 관계, 즉 벌열 서브 리니지 연합이라는 차원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개인의 관직 획득에 미치는 친족 네트워크의 영향을 통계적으로 확인해 본 결과 2대 이내의 선조들은 혈연의 방향과 관계없이 개인의 관직 획득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확인되었다. 부계 친족 중 방계인 삼촌의 경우에도 일정한 영향력이 나타났다. 19세기에는 부계의 영향력이 줄어든 반면, 처부의 영향력이 크게 증가하였다. 이 현상은 혼인이 전략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사회적 자원으로서 도산서원 원장직의 수는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퇴계후손들 사이에서는 경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퇴계후손들의 평균 취임연령은 점차 상승했다. 이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조건은 원장이 될 수 있는 연령까지 생존하는 것과 사회적 성취를 이루는 것이었다. 개인적 측면 이외에도 부계의 위상도 취임에 영향을 주었다. 결과적으로 퇴계후손 내에서도 도태되는 지파와 가계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지점은 친족집단 내부에 경쟁뿐 아니라 분배도 존재했다는 점이다. 18세기 후반 이후 19세기에 태어난 원장들에게서 보이는 부계적 연속성의 뚜렷한 감소현상은 친족집단 내 발생하는 이러한 경쟁과 그로 인한 집중, 도태에 대한 반동이 존재했음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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