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송유수관도인 이인문 연구
This paper studies the life of Yi, Yinmun(古松流水觀道人), his art works and the influence that his art made to the history of painting. As a court painter Yi was one of the leading artists of the late Chosun dynasty, producing notable works such as Kangsanmoojndokwon(江山無盡圖卷). Whereas Kim, Hongdo, one of Yi's contemporary artists in late 18th and early 19th centuries, drew much attention, Yi has not be studied much enough to be recognized.
Hence, by looking at his life and art works, this paper evaluated his contributions in the history painting. In particular, recent discoveries of some art works, Seoknonghwawon, Yookpilbon and Hangangjooyouaheokdochub(石農畵苑, 肉筆本), helped understand Yi's art work especially in landscape paintings.
Yi was selected as one of the court painter in 1783 and retired in 1821, serving the position for 38 years. Yi took part in various official events and was recognized for his painting journal, Rokchoejae(祿取才). He visited Beijing as one of the official visitors in both 1795 and 1796. He was evaluated one of the best royal court painters during the reign the period of King Jeongjo. However, he was under-evaluated during the period of King Injo. Yi met his colleague painters at Kyujanggak(奎章閣). Nam, Gongchul(南公轍), Hong, Euiyoung(洪儀泳), Yoo, Hanji(兪漢芝), Sim, Snagkyu(沈象奎) and etc are his co-painters at Kyujanggak and they favored and collected Western Paintings. They worked together with Yi and collected his paintings and other art works. Yi created art works in the favors of their artistic preferences. Yi also worked together with the court art collectors, Kyujanggak deputy Yoo, Jaegun(劉在建), Park Yoonmook(朴允默), Im, Deukmyoung(林得明).
Amongst all the colleagues, Kim, Hongdo(金弘道) was one of the closest coworkers and Yi and Kim influenced each other's paintings. They commented on each other's art works and wrote a critic journal of each other's art works. They delivered similar theme in their paintings. Yi also worked closely with the renowned artists such as Kim, Eunghwan(金應煥), Park, Yoosung(朴維城) and Kim, Deukshin(金得臣).
Suknonghwawon(石農畵苑) reveals that Sim(沈師正) played a mentor role to Yi. Yi learned various styles and techniques of paintings and created his own art world. Yi's art works can be identified either as early works or late works by looking at the painting styles. Gosongyousoochub(古松流水帖)located at the National Central Museum, shows Yi's early styles. Yi drew various topics and tried different techniques in his paintings. This early style played a foundation of his art works and affecting to the late years. Together with his unique expression and traditional techniques, he completed his own world of art. One of his late works, Hanjoongcheongsangcheop(閒中淸賞帖) and Kosongyusookwandoinjikjeokcheob(古松流水館道人眞蹟帖), showed not only his early styles in techniques but also his liberal expression.
Many art works that exist still now are landscape paintings. Poem and literature are his favored topics. His landscape paintings delivered not only the contemporary painting styles but also his unique way of understanding of the landscapes. Painted in 1811, Hangangjooyouaheokdocheob(漢江舟遊雅會圖帖) were created as a group painting of Yi, Kim D., and Kim, Y. This painting portrayed a trip to Han river by the scholars in 19th century in Chosun dynasty. Kim, D. expressed the real landscape in detail yet, Yi interpreted the view in a poetic way. Yi valued his own understanding and interpretation rather than presentation of subject. In addition, Yi had an outstanding understanding of structure and gentle brushstroke. His works shows close relation with snow landscape paintings.
This paper also talks about Yi's finest work, Kangsanmoojindojeon(江山無盡圖卷). This painting differs from Chinese landscape paintings. He used long landscape painting style to deliver gigantic nature and various people's lives. Kandsanmoonjindokeon delivers his wish of peace and flourish of Chosun Dynasty. This painting shows the completeness of his paintings.
Unique aspect of Yi's portraits is that he emphasized more on background of person than person itself. Some of his portraits are based on poem and literatures, and some are based on stories of Buddhist or Taoism. In addition, Yi adopted then new western painting styles such as cubic effect and fine effect into his paintings in late 18 century and early 19 century. In spite of small number of paintings, Yi's work laid a bridge between his age and late 19 century paintings.
Yi's professionalism can be found in his bird paintings, which shows a style of liberal arts. His bird painting has poetic and vivid touches in his paintings with the context, sometimes which takes bigger parts of the paintings than birds themselves. In his animal paintings, exotics animals such as horse, deer and even imaginary animals appeared.
Yi's contribution on various paintings, not limited to landscape painting, to the later part of Chosun Dynasty is invaluable. Having studied under Shim, Sajeong, Yi developed a unique painting style. Serving as a royal court painter helped Yi to develop various types of painting. Yi used scientific approach in composing the paintings yet also pursued emotional world in his paintings. Because of such balance and combination, Yi's paintings grasped attention and comprehension from art collectors in his time. In addition, Yi's painting style made significant influence both to contemporary and later painters. Yi showed extensive works in topics and styles of painting during the later part of Chosun Dynasty. In short, Yi was one of the top notch painters in late 18 century and early 19 century.
본 논문은 고송유수관도인 이인문의 생애와 회화세계, 그리고 그의 회화가 끼친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한 것이다. 궁중화가로서 다양한 활동을 한 이인문은 《강산무진도권》과 같은 완성도 높은 산수화 작품들을 남기며 조선후기 화단에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화가이다. 하지만 18세기 후반 19세기 초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친구이자 동료인 김홍도가 받은 높은 평가에 비해 이인문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연구는 부족했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생애를 포함하여 이인문 전반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전체적이고 종합적인 고찰을 통해 이인문의 화단에서의 위치와 회화사적 의의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였다. 특히 최근 발굴된 金光國의 『石農畵苑』肉筆本의 기록과 《한강주유아회도첩》과 같은 새로운 자료를 통해 화풍의 형성에 대한 단서와 실경산수화의 제작양상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이인문은 도화서의 화원이 된 후 1783년 奎章閣 差備待令畵員으로 선발되어 1821년까지 38년을 규장각에서 근무하였다. 이인문은 궁중화원으로서 정조연간 여러 차례 국가 공식 繪事에 참여하였고, 祿取才에서 뛰어난 성적을 받으며 상위의 평가를 받았다. 그러면서 冬至使의 수행화원으로 1795년과 1796년 두 차례 북경을 다녀왔다. 그러나 정조대 최고의 궁중화원으로서 활약하던 이인문은 순조대에 낮은 평가와 외직으로 고생을 하는 등 정국의 변화로 시련을 겪기도 했다. 이인문은 38년간 몸담았던 규장각에서 다양한 그룹의 인물들과 교유하였다. 규장각에서 만난 南公轍, 洪儀泳, 兪漢芝, 沈象奎 등은 당대 서화애호가이며 서화의 수집과 수장, 감식에도 일가견이 있었던 이들이었다. 이들은 이인문과 교유하면서 그의 작품을 수장하고 남긴 제화시나 제발문, 화평 등을 통해 자신의 서화애호취미와 문인취향을 드러냈으며, 이인문 또한 그들의 취향에 맞는 작품들을 제작함으로써 심미적인 문인취향에 경도되었다. 규장각 서리로 근무하던 劉在建이나 朴允默, 林得明 등 옥계시사의 인물들과도 어울렸고, 마성린이나 김광국 등 수장가들과의 관계도 빼놓을 수 없다. 동료 화원화가 가운데 김홍도는 동갑내기이면서 매우 가까운 사이로, 서로의 그림에 觀畵記를 쓰거나 제시를 다는 등 인간적인 교류와 회화작업에도 영향을 주고받았다. 이인문과 김홍도가 활동하던 공적인 영역은 달랐지만 같은 교유범위 내에서 비슷한 주제의 작품을 제작하는 등 무척 친밀한 교유를 하였다. 이외에 선배화원인 金應煥을 비롯하여 朴維城, 金得臣 등 당대 화단의 주요 화원화가들과 함께 활동하였다.
이인문과 심사정은 金光國의 『石農畵苑』肉筆本을 통해 사승관계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인문은 심사정에게서 다양한 화법들을 익히며 화풍을 이룩하였다. 이러한 이인문의 화업은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 전기와 후기에 제작된 주요 화첩을 통해 이인문의 화풍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전기의 화풍을 볼 수 있는 화첩은 국립중앙박물관소장 《古松流水帖》으로, 다양한 주제와 소재를 다루면서 여러 가지 시도를 통해 이룩한 복합적인 절충화풍을 구사하고 있다. 이는 후기까지 꾸준히 이인문 화풍의 근간이 되며, 기법적인 완성도에 입각한 개성적인 표현과 원숙한 기량으로 그만의 화풍을 완성하였다. 후기작으로 생각되는 《閒中淸賞帖》과 《古松流水館道人眞蹟帖》은 전기에 사용되었던 화면구성방식은 주제나 소재에 따라 자의적인 해석을 통한 자유로운 표현을 보여준다.
이인문의 현존하는 작품 중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산수화는 실경산수를 포함하여 이상적인 자연을 표현한 사의산수화가 주를 이룬다. 주제선택에 있어서 시나 문학작품을 소재로 한 것들이 많은데 이 때문에 비슷한 주제들을 유형별로 묶어 山靜日長圖, 四季山水圖 등으로 분류해 논의를 진행하였다. 같은 소재와 주제는 구도나 경물의 표현에서 하나의 유형을 갖기 때문에 이러한 이인문의 회화양식에는 일관성이 찾아진다. 실경산수화는 당대 화단의 경향을 반영하면서도 그만의 방식으로 실경을 대하는 면모를 보인다. 1811년에 제작된 《한강주유아회도첩》은 이인문 외에 김득신과 김영면의 작품이 포함되어 있는데, 관직에 있는 문인관료들이 한강주변을 유람한 것을 일정에 따라 각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이 화첩의 의의는 19세기 초 문인들의 한강유람의 하나의 형태와 이를 형상화한 실경산수의 표현방식을 보여주는데 있다. 함께 화첩제작에 참여한 김득신의 경우 실경을 충실하게 표현하지만, 이인문은 이를 사의적으로 해석하는 면모를 보인다. 대상의 재현보다는 자신의 해석과 감흥을 중시하여 이를 표현한 것이다. 이 외에 뛰어난 구도감각과 부드러운 필묵법, 선염을 통한 대기원근법이나 담채 효과 등을 특색으로 하는 그의 다른 작품들은 18-19세기 실경산수화의 흐름과 많은 연관성을 보여준다.
이와 함께 이인문 화풍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江山無盡圖卷》의 형식과 내용, 성격과 관련해 살펴보았다. 이인문의 《강산무진도권》은 중국이나 다른 여타의 산수장권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특히 장권이라는 형식에, 거대한 자연과 다양한 인간의 삶의 모습을 통해 이인문이 무엇을 담아내고자 했는지 생각해볼 수 있다. 요컨대 그가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이 장권의 주제는 왕조의 번영과 평안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는 理想을 그린 작품이며, 철저한 조형의식과 구도감각을 토대로 치밀한 계획을 가지고 다양한 준법을 총 망라해 제작된 《강산무진도권》은 이인문 회화의 종합적 완성을 보여준다.
이인문의 인물화의 특징으로는 단독으로 그려지는 인물상과, 인물보다는 배경이 되는 산수에 많은 비중을 두는 경우가 나타난다. 고사인물화의 경우 주로 漢詩나 문학을 소재로 제작한 것들로, 이는 녹취재의 화제로 자주 출제되는 주제이기도 하였다. 또한 이인문은 도교나 불교적 소재와 산수화가 결합된 독특한 형식의 도석화를 구현해내었다. 사인풍속화의 하나인 아회․아집도는 이인문이 초기부터 꾸준히 제작하였던 것으로, 이상적인 아회장면을 창출하기 위해 전형적인 고사인물상을 차용하는 등 이인문만의 독자적인 방식이 눈에 띈다. 더불어 인물을 그리는 방식에는 서양화법의 입체감이나 명암법 등에서 새로운 화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이처럼 이인문의 인물화는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전반 다양한 주제와 새로운 기법을 사용한 독특한 화풍을 보여주었다. 작품의 양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업은 당대 화단의 경향과 함께 하며 다음 세대인 19세기 중후반 인물화의 맥을 이어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전문화가로서의 이인문의 폭넓은 기량은 화조․영모화 등에서도 확인된다. 이인문의 화조화는 다분히 문인취향의 사의적인 화풍을 띠고 있다. 수묵과 은은한 담채를 가한 그의 화조화는 가벼운 운필로 즉흥적이면서 시정넘치는 생동감이 돋보이며, 화조를 주제로 하면서 공간적으로 확대되어 화조를 포용하는 배경으로서의 산수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기도 한다. 동물 그림에는 말이나 사슴, 낙타와 같은 이국적인 소재도 있으며, 상상의 동물인 운룡도도 있다.
산수화뿐만 아니라 여러 화목에 있어서 이인문이 쌓은 업적은 조선후기 회화에 있어서 더없이 소중하다. 이인문은 심사정과의 사승관계를 통해 화단의 다양한 화풍을 종합하여 독자적 산수화풍을 만들어 내었으며, 이후 자신의 종합적이고 절충적인 산수화풍을 다듬어 가면서 개성적인 문인화풍을 구사하였다. 화원화가로서의 삶은 기법적인 완성도에 입각하여 모든 화법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었다. 그는 화면을 구성하는데 있어 대단히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방법들을 통한 이성적인 그림을 그렸으나, 자신의 호처럼 고송과 유수를 곁들여 풍류를 표현하면서 감성적인 세계를 지향하기도 하였다. 격조가 높고 아취 넘치는 작품이지만 그 안에 사실주의적인 면모와 기법적 완성을 담아내고 있었기 때문에 이인문의 회화는 왕을 비롯한 당대 문인들과 예술애호가들의 높은 평가와 주목을 받았다. 또한 이인문의 화풍은 동시대와 후대 화가들에 하나의 전형으로써 영향을 미쳤다. 조선후기 화단의 다양한 경향 속에서 고전적 화풍을 견지한 이인문은 완성도 높은 작품을 제작하고, 철저한 직업화가로서 다룰 수 있는 모든 주제와 소재들을 섭렵하였다. 분명, 이인문은 뛰어난 화업과 예술적 성취로 18세기 후반 19세기 초 화단의 선두에 섰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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