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현존재의 본래적 자기성
본 논문은 불안을 통해 탈은폐되는 인간 현존재의 본래적 자기성을 다룬다.『존재와 시간』에 나타난 본래적 불안과『형이사학이란 무엇인가?』에 나타난 근원적 불안이 탈은폐하고 있는 사태는 인간 현존재의 본래적 자기성인 존재가능으로서의 거기-있음이다. 필자는 이런 현존재의 본래적 자기성은 전통적인 주체적 자아와는 다른 의미인 탈자적 변증법적 과정을 겪는 본래적 자기, 즉 단독적 자기라는 것을 드러내었다. 전통 형이상학의 표상적 자아인 주체적 자아가 현존재의 비본래적 실존범주인 함께 있음으로서의 그들-자아와 연결되어 인간을 포함하여 존재자 전체를 부품으로 만들어 버리는 기술의 도구로 까지 전락하였다는 것을 고찰하였다. 환언하자면 현존재의 비본래적 자기성이기도 하며 주체적 자아이기도 한 이런 자아가 보편적으로 균일화 되어 오늘날의 현대 기술의 도구로까지 전락하게 되었다. 하이데거가 말하고 있는 현존재의 본래적 자기는 그동안 전통 형이상학에서 말하는 주체적 자아로의 회귀인가? 그가 말하는 현존재의 본래적 자기는 어떻게 전통 형이상학 특히 근대의 주체적 자아와 다른가? 하이데거가 전통 형이상학의 용어를 사용하고 그 사유의 틀 속에 있지만 그는 분명 그것들과 다르다. 필자는 그가 말하고 있는 인간 현존재의 본래적 자기성이 어떻게 전통 형이상학 특히 근대와 다른지를 고찰한다. 현존재의 존재론적 처해 있음의 존재자적 기분은 현존재를 개시하는 고유한 존재방식이다. 기분 중에 근본기분이 불안이다. 불안이란 무엇이고 무슨 역할을 하는가? 불안을 통해 드러나는 다양한 사태들, 즉, 무,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가? 불안이 탈은폐하는 이런 사태들은 결국 무엇을 의미하는가? 필자는 결국 불안이 주체적 자아와는 다른 현존재의 본래적 자기성을 드러낸다는 것을 제시하였다. 인간 현존재의 자기성은 우선은 비본래적 자기성의 형태로 일상성 속에서 그들-자아로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인간 현존재의 본래적 자기성은 본래적 자기이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현존재의 본래적 자기는 어떤 자기인가? 현존재의 본래적 자기성은 전통 철학의 주체적 자아와는 다르다. 어떻게 다른가? 전통 형이상학에 따르면 인간의 자기성은 사유하는 실체, 주체, 자기의식, 이성적 동물등으로 규정되었다. 이로 인해 근대를 정점으로 존재자가 현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자들은 자기 앞에 세워지는 표상(Vorstellen)을 통해 대상화시키고 대상화가 된다. 다시 말하면 지배하는 대상화를 통해 존재자는 무제한적으로 문초받고 문초하는 닦달하고 닦달을 요구받는 자아가 된다. 이런 의미의 주체적 자아는 비록 그것이 근원적 현상들 중에 하나이며 실존범주인 거기-있음의 긍정인 그들-자와 다를지라도 본래적 자기와 구별된다는 점에서 평균적 일상성 속에 있는 그들-자아이다. 그들-자아는 일상성 속에서 모두가 그들이기에 아무런 책임도 없고 익명의 자아로 편안함만을 추구하며 분주하게 살아가는 자기 아닌 자아(비자아)이며, 타인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과의 차이를 극복하고 부족하면 채우고 뛰어나면 굴림하고 굴복시키며 대립하는 거리감이 평균성이 되어 내재성에 안에 갇힌 고립된 자아이며 자아주체이다. 이런 자아는 모든 것을 표상화시키어 인간을 포함해 지구 전체를 자신의 제국주의로 만들고 존재자 전체를 도발적 요청으로 몰아세움으로써 부품으로 변모시켰으며, 모두가 이 같은 똑 같은 형태의 자아로 균일화(균일성) 되었다. 비본래적 자아의 이런 보편화된 균일성이 현대 기술의 도구로 사용된다. 현존재의 본래적 자기성은 이런 고립된 자아나 표상된 자아와 다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인간 현존재의 본래적 자기성은 획득되는가? 현존재의 본래적 자기성은 자신의 있음을 위해 그 있음이 열리는 곳에 계속해서 가능성으로 내존할 수 있는 실존의 탈자적 본질을 가진다. 현존재의 본질은 실존이다. 실존의 본질은 탈자이다. 시간성은 탈자이다. 따라서 현존재의 실존은 탈자이다. 인간 현존재의 본래적 자기성은 탈자적 시간성의 변증법적 형태를 가진다. 현존재의 자기성은 시간성의 탈자적 특징과 같이 자신 밖에서 자신의 존재가능에로 향해 있고(다가감), 자신의 내던져져 있음에로 되돌아오며(있어왔음), 어떤 상황 속에서 무엇인가를 만나 손안의 것에 머물 있다.(마주함) 인간 현존재의 본래적 자기성은 과거와 미래가 현재와 단절되었다는 생각이나 현재의 입장에서 과거와 미래를 해석하여 현재성만 강조하는 입장이 아니라 시간을 의식이나 정신의 영역에서 다루는 것처럼 현재, 과거, 미래가 지금으로 통합된 전체성이라는 점과 동일하게 자신의 본래적 자기성을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밖으로 펼쳐감으로 자신을 시간화한다. 현존재의 본래적 전체존재는 단지 하나의 구성요소 예를 들면 빠져 있음만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고 통일된 복합적 순간들, 즉 실존, 현사실성, 그리고 빠져 있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현존재의 본래적 전체존재가 가능한 것은 다름 아닌 통일된 자기로 구성된 단독적 자기 때문이다. 자신의 존재에 관심을 갖는 염려 속에서의 통일된 자기는 서로 환원되지 않는 다양한 순간이나 마주함이 통일성으로 유지된다. 처해 있음의 기분은 인간의 거기-있음의 방식이다. 인간 현존재의 본래적 자기성은 이런 처해 있음의 근본기분 중에 하나인 불안이 탈은폐한다. 불안은 일상적 현존재의 자기성인 함께 있음의 그들-자아에서 본래적 자기로의 이행을 가능케 한다. 이런 불안은 본래적 불안이다. 불안은 학문의 거기-있음뿐만 아니라 인간의 거기-있음도 머물고 있는 무를 드러낸다. 무는 존재자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존재자를 넘어선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 또는 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제기한다. 이 물음에 전통 형이상학은 존재자의 토대나 근거의 문제로 답을 한다. 이것과는 다르게 이 물음의 답은 학문과 인간의 거기-있음이 머물고 있는 무 속에 있다. 이것이 학문의 가능 조건과 인간의 거기-있음인 본래적 자기성의 숙고가 가능한 이유이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무의 자리지기이다. 이런 불안은 근원적 불안이다. 본래적이고 근원적인 불안에 처해 있을 때 인간 현존재의 실존범주인 비본래적인 그들-자아는 본래적 자기를 발견한다. 이 자기는 자신의 있음의 가능성을 문제시하고 자신이 누구 이고 어떻게 있어야 하는지를 경청할 수 있는 존재가 열리는 장소인 거기-있음으로 계속 해서 나아가 서 있으려고 하는 단독적 자기이다. 단독적 자기는 타인과 세계로부터 고립된 무세계적 자아가 아니라 편안하고 친숙한 비본래적 그들-자아로부터의 구별이며 인간 현존재 자기를 세계-내-존재로서 자기 자신 앞에 놓고 있는 본래적 자기이다. 이런 본래적 자기는 본래적이고 근원적인 불안을 경험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가능성을 인식한다. 이런 존재가능성은 한 번 실현되면 끝나버리는 완전한 현실성을 추구하는 것(잠재태)이 아니라 실현의 끝은 다른 성취를 위해 나아가는 규정되지 않고 고정되어 있지 않은 가능성으로 있음이다. 현존재의 본래적 자기성인 거기-있음은 가능성으로의 있음, 즉 존재가능이다. 현존재의 본래적 자기는 존재가 열리는 자리에서 규정되거나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자아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즉 거기에 존재가능으로 있기 때문에 수동적이고 규정되지 않은 자아로 끊임없이 밖으로 나가 서 있는 존재자이다. 죽음은 인간 현존재의 자기성의 전체존재를 드러내는 있음의 방식이다. 인간 현존재의 자기성의 방식을 드러내는 죽음 앞에서는 현존재의 전체존재가 탈은폐되는 죽음을 향한 존재에서 해명된다. 현존재의 자기성인 거기-있음은 존재가능으로 있음인데, 이 존재가능을 죽음이 탈은폐한다. 왜냐하면 전체 현존재의 본래적 자기성이 죽음을 향한 존재를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거기-있음은 죽음을 향한 존재를 통해 고유한 존재가능성을 경험한다. 한편으로 죽음을 향한 존재는 아직 경험되지 않았지만 또 한편으로 거기-있음의 실존에 가장 가까이 놓여 있는 임박한 가능성의 끝이다. 죽음은 현존재의 본래적 자기성이 그 죽음을 인식하는 임박한 가능성의 종말이기 때문에 앞질러(vor) 그 자신의 죽음에 달려 갈수 있다(laufen). 이것이 인간 현존재의 자기성은 앞질러 달려가봄(Vorlaufen)의 양식 속에서 가능성으로 죽음에 처해 질 수 있는 이유이다. 인간 현존재의 자기성은 죽음을 향한 존재에서 가장 고유한 존재가능성으로 경험한다. 한편으로 아직-아님과 또 한편으로 앞질러 달려가봄인 가능성으로서의 임박한 끝을 의미하는 죽음은 죽음을 향한 존재가 현실화될 수 없는 가능성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고유한 가능성은 무한 가능성을 말해 주는 불가능성의 가능성이다. 이것이 처음부터 마지막을 의미하는 전체성이나 전체존재 안에 포함되어 있는 죽음을 향한 존재의 의미이다. 죽음은 아직 생존하는 우리에게 이미 끝이 있다는 가능성을 드러내준다. 죽음을 향한 존재는 아직-아님과 항상-이미의 존재론적 두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죽음은 아직-아님뿐만 아니라 항상-이미의 구조로 우리의 삶에 드리워져 있다. 삶을 산다는 것은 죽음을 위해 산다는 것이다. 죽음을 향한 존재인 세계-내-존재로 실존하는 인간 현존재는 삶이 다하지 않는 한 현사실적으로 끊임없이 계속해서 사망할 수 있다. 그래서 동물과 식물의 죽음은 끝나버린다(verenden)다. 인간에게 죽음은 존재자적인 생물학적 죽음을 의미하는 삶을 다함(Ableben)을 의미하지 않는다. 끝나버림과 삶을 다함과는 다르게 존재론적인 사망(Sterben)을 의미한다. 현존재 자신이 죽음 속에서 전체존재를 획득한다는 의미는 사망이라는 존재론적 차원에서 그 전체성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물은 사망하지 않는다. 사망하는 자들은 인간뿐이다. 죽음에 대한 병적 집착 때문에 자살한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죽음을 향한 존재는 이와는 반대로 자신의 존재(있음)을 위해 자신의 있음의 가능성의 끝이 앞에 닥쳐 있는 것처럼 우리의 생을 사는 것이다. 처해 있음인 근본기분 중에 하나인 본래적이고 근원적인 불안이 무와 죽음을 통해 현존재의 본래적 자기성을 드러낸다. 그러나 불안이 왔을 때 우선은 우리의 일상적 활동들을 무너뜨리며 흔들어 버린다. 인간 현존재의 자기성은 이런 불안에 영향을 받는다. 이런 이유 때문에 불안 속에서 현존재는 그 현존재가 빠져 있는 바쁜 업무와 일상적인 활동과 단절되며 무엇인가 있는 세계에서 전혀 없는 영역으로 분리된다. 하이데거는 불안의 상태를 여러 가지로 표현하고 있다. 그는 불안이 엄습해 오면 존재자 전체가 뒤로 물러나가게 하여 우리를 “괴롭힌다.” 불안의 상태는 말문을 막아버린 상태이기 때문에 정적의 상태이다. 그래서 “불안의 집과 같지 않음 속에서는 자주 그 공허한 정적”의 상태이다. 존재자 전체를 미끄러져 빠져 나가게 함으로써 붙잡을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불안 속에서 존재자 전체가 무력하고 무상해진다. 그렇다고 나약한 기분이나 흔히 일어 날 수 있는 불안과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상태는 오늘날의 일상 속에 빠져있는 분주하고 소란하고 요란한 현대인들에게 달갑지 않게 보이며 회피하고 도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하이데거에게 불안을 수용한 이후의 상태는 잃어버린 고향을 찾은 것과 같은 상태이다. 이는 불안이 인간의 거기-있음일 뿐만 아니라 학문의 거기-있음이기도 한 무 속에서 존재의 소리를 듣고 존재를 경험함으로 고향과도 같은 현존재의 본래적 자기성이 자리 잡고 있는 존재의 열림의 자리를 만나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본래적이고 근원적인 불안의 수용은 온화함이나 쾌활함을 동반하는 경이로움이다. 이런 불안은 정적이나 차분함과는 이율배반처럼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가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 불안은 고요함, 정적 또는 차분함과 반대라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불안을 존재자와는 다른 존재자의 있음, 즉 일상적 활동을 유보하는 존재의 탈은폐로서 존재론적으로가 아니라 병리학적으로 불안해하고 동요되는 심리적 상태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무와 죽음 앞에서 불안이 탈은폐하는 존재가능을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불안은 부정적이고 긍정적인 기분이나 더 높고 더 낮은 기분과 같은 심리학의 어떤 범주 속에 있는 것으로 분류될 수 없다. 이는 불안은 심리적인 사건이 아니라 존재론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불안의 상태가 현대인들의 삶과 맞지 않으며, 예외는 있겠지만 불안으로 인해 오는 득보다 실이 더 많기 때문에 그들은 불안을 회피한다. 이것이 하이데거가 우리들에게 불안의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유이다. 하이데거의 내면적 인간은 이런 차분함과 섬뜩한 정적으로 들어가기 위해 자신의 일상적인 활동을 단념하고 자신의 거기-있음으로 탈바꿈을 경험하는 사람이다. 불안은 창조적인 갈망(동경)의 쾌활함이나 온화함의 비밀스런 결속상태에 있다. 이는 불안을 통해 인간 현존재의 본래적 자기성 다시 말하면 본래적으로 있어야할 고향, 즉 있음이 열리는 자리(Lichtung)를 동경하고 갈망하는 것으로 인해 쾌활해지고 명랑해지며 불안과는 대립되는 온화함의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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